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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Jul 27. 2024

역사의 도시 아비뇽 관광

(2024-05-20 월) 서유럽 렌터카 여행(45)

오늘은 아비뇽(Avignon)으로 간다. 호텔 지하주차장을 나가려는데 주차장 셔터가 열리지 않는다. 차에서 내려 단추를 눌러도 보고 줄을 당겨도 보았지만, 육중한 셔터는 꿈적도 않는다. 할 수 없이 리셉션으로 뛰어올라가 셔터를 여는 방법을 물으니 패스워드를 가르쳐 준다. 


그런데 이번엔 패스워드를 입력할 번호판이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헤맨 끝에 겨우 구석에 있는 번호판을 찾아내어 패스워드를 입력하였다. 그런데 차를 너무 셔터 문 가까이 두었는지, 여닫이식 셔터 문이 열리다가 차의 앞 범퍼에 걸려 더 이상 열리지 않는다. 차를 후진시킨 후 셔터 문을 더 열려고 했으나, 아무리 힘을 줘도 더 이상 열리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반쯤 열린 셔터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유럽에서는 뭔가 불편한 일이 많다.

아비뇽 성벽
아비뇽 올드타운

아비뇽은 마르세이유의 숙소에서 한 시간 거리이다. 시간 여유가 많아 프랑스의 지중해 해안인 프랑스 라비에라를 들렀다 가려고도 생각해 봤으나 그럴 경우 시간이 너무 지체될 것 같아  바로 아비뇽으로 가기로 했다.


아비뇽은 역사의 도시이다. 아비뇽에는 14세기 초부터 시작하여 거의 70년간 교황청이 소재하였다. "아비뇽 유수"로 불리는 이 사건은 당시 로마 정정의 불안과 교회에 대한 프랑스왕의 영향력 강화가 맞물려 일어났다. 13세기말부터 교황과 유럽의 군주들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발생했으며, 특히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와 교황 보니파시오 8세의 관계가 험악해졌다. 그 후 프랑스 출신의 교황 클레멘스 5세(Clement V)는 로마의 정치적 불안정과 갈등을 피하기 위해 교황청을 아비뇽으로 이전한 것이다. 


이 결과 1309년부터 약 70년간에 걸쳐 7명의 교황이 로마가 아니라 이 아비뇽에서 거처하게 된 것이다. "카놋사의 굴욕"이 왕권이 교권에 무릎을 꿇은 사건이라면, 아비뇽 유수는 반대로 교권이 왕권에 휘둘린 사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비뇽 유수 후 교회는 대분열을 일으켜 큰 혼란에 빠졌으며, 이는 결국 종교개혁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교황이 아비뇽에서 70년을 보낸 만큼, 아비뇽에는 교황청을 비롯하여 수많은 건축물이 건설되었다. 이때 지어진 건축물과 각종 예술작품들은 지금까지 보전되어 내려와, 아비뇽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아비뇽으로 가는 도중 고속도로에서 주유를 하러 휴게소에 들렀다. 이번에도 연료통 캡이 열리지 않는다. 속으로 연신 연료통 캡을 설계한 넘을 욕하며 4~5분을 그렇게 연료통 뚜껑과 씨름하고 있자니, 뒤차의 운전수가 참다못해 나와 도와준다. 캡을 열고나니 이번엔 정산기가 뭐가 잘 안 된다. 결국 카드 지불을 포기하고, 휴게소 안에 있는 캐시어를 찾아가 현금을 지불하고 겨우 주유를 했다. 주유를 할 때마다 이렇게 난리를 쳐서야....


오늘의 숙소는 아비뇽시의 중심지에 가기 전에 위치하고 있다. 아직 12시도 안 되었기 때문에 아비뇽을 관광한 후에 호텔로 가기로 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아비뇽시로 달려가니, 오른쪽은 수량이 풍부한 아름다운 강이고 왼쪽은 오래된 성벽이 나온다. 내비에 목적지를 아비뇽 교황청으로 맞추어 두었더니 성문 안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성문 안쪽은 완전히 중세도시이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알 수 없는 집들 사이로 좁은 골목길이 미로처럼 얽혀 있다. 골목길은 모두 돌로 포장되어 있다. 이제 주차할 곳을 찾아 적당히 주차하여야 한다. 골목 틈새 약간의 공간이 있는 곳에는 몇 대 정도의 주차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빈자리가 보이길레 주차를 하려다가 생각을 바꾸었다. 길이 하도 미로와 같은 골목길이라, 이런 곳에 주차를 했다간 나중에 그 장소를 도저히 찾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찾기 쉬운 주차장을 찾기 위해 내비를 끄고 시내 골목 안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성벽을 따라 길게 만들어져 있는 주차장을 발견하여, 이곳이라면 길을 잃을 염려가 없을 것이라 생각되어 주차를 했다.


이번엔 요금정산기가 속을 썩인다. 아무리 해도 주차권을 끊을 수 없다. 물어볼 사람도 없고, 비상전화도 없다. 10여분을 씨름한 끝에 겨우 방법을 찾아내었다. 잘 되는가 싶더니 주차권 발매기는 동전만 삼키고는 주차권을 주지 않는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돈은 줬으니깐 주차를 하고, 문제가 생기면 그때 가서 생각하자. 


주차를 한 후 좁은 골목길을 이리저리 꺾으며 10여분 정도 걸으니 작은 언덕에 크고 아름다운 석조건물이 보인다. 가파른 좁은 계단이 계속된다. 계단을 다 오르니, 이곳은 교황청 뒤쪽으로서, '로쉐 데 돔'이라 부르는 정원이다. 이곳 로쉐 데 돔은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하던 장소로, 여러 유적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로마 시대에도 중요한 지역이었으며, 중세 시대에는 방어 목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정원 안에는 많은 예술 작품과 조각, 그리고 아름다운 분수가 있다. '폰타나 데 돔(Fontaine des Doms)' 분수는 이곳의 랜드마크 중 하나라 한다. 

로쉐 데 돔의  한쪽에는 낮은 벽이 서있다. 그렇게 높은 위치는 아니지만 아비뇽시 자체가 평지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곳에 서면 시가지 전체가 한눈에 보인다. 왼쪽 성벽 바깥쪽에는 론강이 흐르고 있다. 별로 크지는 않지만 수량이 풍부하고 숲으로 싸인 아름다운 강이다. 성벽 안으로 오래된 집들이 촘촘히 들어서있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하나의 문화재라 할 것이다. 이곳에서는 교황청 건물의 뒷모습이 보인다.


로쉐 데 돔은 교황청 건물과 바로 연결된다.  교황청 바로 앞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이 높이 서있다. 예수상 쪽에서 건물을 바라보면, 왼쪽의 뾰족한 높은 탑이 있는 건물이 아비뇽 대성당이고, 오른쪽으로 두 개의 탑이 받치고 있는 건물이 교황청이다. 교황청 건물은 보기에 따라서는 요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건물 옆쪽을 보면 거대한 성처럼 보이기도 한다. 교황청에서 조금 내려오면 성피에르 성당이 나타난다. 이 건물은 12세기에 처음 지어져 교황청보다 거의 200년이나 앞선다. 처음에는 작은 성당이었으나. 교황청이 이전해 온 후 교황의 후원을 받아 점차 확장되었다고 한다. 이 역시 잘 지은 아름다운 건물이다. 

관광을 시작한 지 이제 거의 2시간이 가까워진다. 아무래도 주차권을 붙이지 않은 차가 마음에 걸린다. 그만 내려가기로 했다. 교황청에서 생삐에르 성당으로 내려와 성당 앞쪽의 골목길로 들어섰다. 사실 아비뇽 관광에서 교황청이나 성 삐에르 성당 같은 명소도 좋지만, 아비뇽의 진짜 즐길거리는 중세시대를 연상시키는 집과 골목을 둘러보는 일이다.


골목길을 들어서서 몇 번 방향을 꺾고 나니 어디가 어딘지 방향조차 알기 어렵다. 주차를 해 둔 곳을 짐작하여 골목길을 걸었다. 어느새 출발지로 되돌아와 버렸다. 다시 골목길로 들어간다.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얼마나 걸었는지 모른다. 눈앞에 성벽이 나타난다. 이젠 쉽다. 성벽만 따라가면 된다. 차는 아무 일 없는 듯이 주차되어 있다.


좀 이른 시간이지만 호텔로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슈퍼마켓에 들러 생수와 우유와 주스를 구입하였다. 내일은 일정이 빡빡하다. 오늘은 일찍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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