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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힌두교 유적 포나가르 사원

(2024-11-14a) 배낭 하나 메고 또다시 동남아로

by 이재형

배에서 내리니 택시를 타라며 삐끼들이 붙는다. 그런데 이들을 크게 경계할 필요는 없다. 바가지를 씌우지는 않는다. 그랩(동남아판 "우버")이 보편화되면서, 그랩가격이 표준가격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제시하는 요금도 그랩요금과 동일하다. 그래도 혹시 불안하다고 생각되면 미리 그랩앱을 깔아 택시를 타기 전에 그랩요금을 확인한 후 그 가격으로 해달라고 하면 대부분 승낙한다. 이젠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 오토바이 택시는 타기 싫다. 택시를 탔다.


다음 행선지는 포나가르 사원으로서, 나트랑 시 외곽에 위치하고 있다. 베트남에서 하노이와 후에를 제외한다면 사실 역사나 문화 유적은 그다지 볼 것이 없다. 큰 기대를 않았지만 특별히 갈 곳도 없어 들르기로 한 것이다. 포니가르 사원은 베트남에서는 드물게 힌두교 유적이다. 고대 이곳을 지배하였던 인도계의 참족 왕국의 유적이라 한다.


참족 왕국(Cham Kingdom)은 2세기부터 15세기에 걸쳐 베트남 중부와 남부지역에서 번성하였으며, 현재 참족의 후손들은 베트남과 캄보디아에서 소수민족으로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참족의 전성기는 7~10세기로서 이 시기 참족 왕국은 힌두교 문화의 영향을 받아 강력한 신앙과 독특한 건축 양식을 발전시켰다고 한다. 대표적인 유적지로는 다낭 근처에 있는 미선 유적지(My Son Sanctuary)와 이곳 포나가르 사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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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트랑은 아주 평평한 평지인데, 포나가르 사원은 야트막한 언덕 위에 위치해 있다. 언덕이라 해봤자 평지에 비해 10미터 조금 넘는 정도의 높이이다. 그렇지만 나트랑이 워낙 평평한 지역이다 보니 나트랑 앞바다의 전경이 눈 아래로 펼쳐진다. 아주 아름다운 경치이다.


사원은 여러 개의 넓고 나지막한 탑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적으로 황토 빛깔인데, 황토 벽돌로 만든 것인지, 아니면 돌로 쌓은 것인지 눈여겨보지 않아 모르겠다. 사원 뒤쪽으로는 작지만 아름다운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전시실에 들어가 보니, 이 유적의 발굴과 보전 과정이 사진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유적은 이전에는 황폐하게 방치되어 있었으나, 이후 정부의 지원과 시민들의 모금으로 재정비되었다 한다. 이것을 보면 결국 역사나 문화유적도 나라가 돈이 있어야 보존할 수 있다.


지도를 확인하니 호텔까지 5킬로미터 남짓이다. 택시비도 아낄 겸 해변길을 따라 걸어갈까 생각해 보았으나, 햇빛이 너무 강렬하다. 사원 아래에 강을 가로지르는 길이 약 500미터 정도의 다리가 있는데, 지금은 오후 2시, 이 땡볓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 근처에는 과일가게가 여럿 있는데, 먹고는 싶지만 껍질을 깎고 잘라먹기가 귀찮다. 익숙지 않는 과일이라 어떻게 깎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때 잘라서 포장한 과일을 파는 가게가 보이길래 파인애플을 한 팩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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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걸었더니 잠이 쏟아진다. 자다 깨다 비몽사몽, 일어나니 날이 깜깜하다. 저녁을 뭘 먹나. 어제저녁 해물 뷔페를 본 기억이 나 그곳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곳은 해물을 구워 먹는 곳이었다. 더운 날씨에 뜨거운 숯불 앞에 혼자 앉아 해물을 굽기는 싫다. 포기하고 나오다 보니 입구 근처에서 뭔가 이상한 것을 통바비큐로 굽고 있었다. 다가가 보니 그것은 구렁이였다. 길이가 3미터는 넘어 보이는 길고 굵은 구렁이를 통째로 굽고 있었다. 아마 이 음식점의 대표 요리인 것 같다.


적당한 식당을 찾다 보니 스테이크 집이 보인다. 그래, 오늘 저녁은 거창하게 먹어보자. 들어가 보니 와인바 형식의 깨끗한 식당인데, 손님은 나 혼자밖에 없다. 이 집에서 아주 비싼 편인 쇠고기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무려 22만 동, 나의 대여섯 끼 식사값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그런데 스테이크라고 해서 나온 고기가 질긴 쇠고기를 다져서 구운 것이었다. 볼품도 없는 데다 맛은 더 없었다. 베트남에서 먹은 역대 최악의 음식이었다. 손님이 나 혼자밖에 없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식당을 나와 해변으로 갔다. 나트랑에서 제일 좋은 곳, 제일 좋은 시간이다. 어젯밤에 앉았던 자리에 다시 앉아 밤바다를 바라보며 이 글을 쓴다. 하늘엔 보름달이 휘영청 떠있다. 오늘은 특별히 맥주 작은 병으로 한 병 주문했다. 눈앞에 흰 파도가 부서지고 있다. 어제보다 파도가 훨씬 가까운 곳까지 밀려온다. 달이 하늘 한복판에 떠있다. 지금이 만조 때인 것 같다.


오늘은 나트랑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내일 달랏으로 가는 버스를 예약해 두었다. 나트랑은 가족여행에 좋은 곳이다. 언젠가 손자와 함께 다시 이곳을 찾을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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