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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앙크로 유적지: 박세이 참크롱과 코끼리 테라스

(2024-11-29) 배낭 하나 메고 또다시 동남아로

by 이재형

오늘은 앙코르 유적지 탐방 마지막 날이다. 내일은 라오스의 시판돈으로 간다. 어제저녁 방콕과 시판돈 사이에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결국 시판돈을 택했다. 버스는 32불, 밴은 22불인데, 버스로 가기로 했다. 2년 전에 왔을 때는 밴이 이틀에 한 번 출발했는데, 이젠 관광객이 많이 늘어난 모양이다.


오늘은 특별한 목적지 없이 앙코르 유적지를 돌아다니다 안 가 본 곳이 보이면 들리기로 했다. 길을 가다가 유적지가 있는지 어떻게 알까? 간단하다. 달리다 주차장이나 식당이 보이면 그곳에서 멈춰 주위에서 찾으면 된다. 다만 이곳의 대부분의 유적은 출입구가 한 개만이 아니다. 출입구가 여러 개 있기 때문에 안 가 본 곳이라 생각하고 들어갔다가 이미 들렸던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앙코르와트는 앙코르 유적지의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앙코르 유적지를 가게 되면 반드시 앙코르와트 앞을 지나가게 된다. 앙코르와트를 지나 2킬로 정도 들어가면 바이욘 사원이 나온다. 바이욘 사원 가기 전에 작은 강이 흐르고, 강 위에는 여러 가지 인물 조각상이 늘어서 있는 다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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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건너기 직전 관광객들이 많이 보인다. 관광객들이 움직이는 쪽을 보니 멀리 유적이 보인다. 확인해 보니 "박세이 참크롱"(Baksei Chamkrong)이라 한다. 박세이 참크롱은 크메르 왕국 초기에 건설된 힌두교 사원이라 한다. 이 사원은 특히 힌두교의 주요 신 가운데 시바 신에게 바쳐진 것이라 한다. 건물이 시원시원하게 죽죽 뻗어있는 느낌이다. 앙코르와트나 바이욘 사원 같은 화려한 맛은 없지만, 강과 다리와 어울려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 같다.


박세이 참크롱을 둘러보고 난 뒤 바이욘 사원 쪽으로 갔다. 바이욘 사원을 돌아서 뒤쪽으로 조금 달리다 보니 도로 오른쪽에 여러 개의 첨탑이 보이고 왼쪽에는 아주 넓은 광장이 있다. 첨탑은 꼭 성의 망루처럼 보이는데, 성벽은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의 아주 넓은 광장은 잔디와 같은 짧은 풀로 덮여있으며, 나무는 광장 언저리에 몇 그루 서있을 뿐이다.


이곳은 코끼리 테라스이다. 일단 오토바이를 주차하고 코끼리 테라스 쪽으로 갔다. 넓은 광장에 나무가 거의 없어 걷기가 힘들다. 이제 오전 9시가 조금 지났을 뿐인데 벌써 햇빛이 따갑다. 광장 한쪽에 석재로 만들어진 두 개의 거대한 테라스가 있다. 넓은 공간 한쪽에는 넓은 그늘을 가진 큰 나무가 몇 그루 서있어, 사람들은 모두들 그 그늘에 들어가 있다.

두 개의 테라스 가운데 오른쪽에 있는 것은 문둥왕 테라스라 한다고 한다. 테라스에 새겨진 왕의 부조상이 문드러져 마치 문둥병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왼쪽의 테라스는 코끼리상의 기둥이 받치고 있어 코끼리 테라스라 불리고 있다. 이곳은 광장을 마주하고 있는 무대처럼 보인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곳은 앙코르 톰 왕궁 유적지로서, 두 테라스는 크메르 제국의 정치적, 군사적 중심지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곳은 왕과 고위 관리들이 군사 행렬이나 승리 행사를 관람하던 관람석이었다. 요즘 식으로 말한다면 사열대라 이해하면 될 것이다. 코끼리 테라스는 길이가 무려 350미터나 된다.


테라스 뒤쪽으로는 성벽과 성문이 이어진다. 상당히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유적지이다. 알고 보니 이곳은 크메르 왕국의 왕궁이었다고 한다. 그동안 이 앞 도로를 몇 번이나 지나가면서 탑처럼 생긴 건물들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나란히 서있는 것을 보고 무슨 건물인지 궁금했다. 아마 왕궁을 지켰던 망루인 것 같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넓은 공간이 나오고, 맨 끝에는 높고 큰 건물이 위치하고 있다. 왕궁의 메인 건물로 보인다. 이 건물의 이름은 "피미언 어까"라고 하는데, 왕궁을 수호하는 사찰이라 한다.


이곳의 모든 건물이 다 그렇지만 왕궁 건물은 특히 경사가 가파른 것 같다. 계단이 거의 수직에 가까워 경사기 80도도 넘어 보인다. 왜 이렇게 위험하게 경사를 가파르게 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경사를 고려한다면 집무나 주거 용도의 실용적 건물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코끼리 테라스에서 피미언 어까에 이르는 길은 햇빛을 막을 나무가 거의 없다. 벌써 해는 중천에 떠올랐다. 피미언 이까까지의 길은 왕복 1킬로 가까이 된다. 벌써 지치기 시작한다. 너무 더워 생수를 한통 다 마셨다.


이번에 가는 곳은 이곳에서 꽤 떨어진 앙코르 톰이다. 이곳 앙코르 유적지구는 도로가 참 좋다. 숲 속으로 말끔히 포장된 도로인데, 이렇게 햇살이 따가운 날인데도 불구하고 도로를 달리면 마치 에어컨이 잘 작동되는 은행에 들어온 기분이다. 아주 시원한 숲바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낮에는 유적이고 뭐고 하루종일 도로를 달리기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구글지도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니 갑자기 길이 나빠진다. 도로가 많이 손상되었다. 이런 길을 오토바이로 가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이런 길을 오토바이로 다녀본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도로 손상 부분이 오토바이에 어느 정도 충격을 가져오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진땀을 흘리며 지도를 따라갔다. 도로 옆에 아주 좁은 비포장 오솔길로 들어가라고 한다. 울퉁불퉁한 비포장 길이라 위험해서 들어갈까 말까 망설였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들어가기로 했다. 오솔길을 700미터쯤 들어갔다. 길이 하도 험해 진땀이 난다.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런데 숲 속에 유적은 보이지 않고 농가만 덜렁 두 채 서있다. 주인인 듯한 사람에게 물으니 여긴 그런 유적이 없다고 한다. 황당하다.


그 사람이 구글 지도에 앙코르 톰의 위치를 표시해 준다. 다시 그 표시를 향해 달렸다. 이럴 수가!! 앙코르톰은 바로 코끼리 테라스 뒤에 있던 왕궁이었다. 어이없어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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