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8a) 배낭 하나 메고 또다시 동남아로
프레 루프를 나와 다시 네악 뻬안 사원들 향해 달린다. 앙크로 유적지 내에서도 인터넷이 먹통이 되는 지역이 적지 않다. 그래서 구글 지도가 되다 안되다 한다. 네악 뻬안 사원을 목적지로 설정하고 달리는데, 이상한 곳으로 안내하는 것 같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관광객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길에 오가는 사람도 현지인뿐이다. 앙코르 유적지 내의 도로는 숲 속 길이지만 이곳은 땡볕을 그대로 받으며 달려야 한다. 이상하다고 생각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글 지도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벌써 한 시간 이상을 달리고 있다. 도로 상태도 좋지 않다. 심하게 파손된 구간이 적지 않다. 불안감을 느끼면서 얼마나 달렸을까, 다시 앙코르 유적지로 들어온 것 같다. 다시 지도를 확인해 보았다. 프레루프 사원에서 네악 뻬안 사원까지의 거리는 4킬로가 채 못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달린 거리는 거의 40~50킬로는 된다.
앙코르 유적지 도로는 다른 곳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도로의 대부분이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포장도 잘 되어있다. 얼마를 더 달리니 넓은 호수가 나오고 네악 뻬안에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뜬다. 내비가 한 시간 이상을 엉뚱한 길로 안내한 것 같다. 호수 가운데는 섬이 있고, 네악 뻬안 사원은 그 섬 안에 있다. 섬까지는 잔도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다리의 길이는 300미터 정도는 되는 것 같다. 호수 안에 놓인 다리라 그늘은 전혀 없다.
호수는 수련으로 덮여있고, 군데군데 고사목도 보인다. 땡볕을 받으며 다리를 건너야 하지만, 호수의 아름다운 경치가 더위를 잊게 한다. 네악 뻬안 사원이 얼마나 좋을지 모르겠지만, 호수 위를 걷는 이 다리만큼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호수는 인공호수이며, 사원이 위치한 곳도 인공섬이라고 한다.
네악 뻬안은 크메르어로 “뱀 둘레”라는 뜻으로 사원의 중심에 자리한 조각상 주위를 두 마리의 뱀이 감싸고 있는데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이 뱀은 힌두 신화에서 보호와 치유의 힘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사원 역시 처음에는 대승불교 의식을 위한 사원으로 건축되었으나, 나중에 힌두교적 요소도 반영되었다고 한다.
섬에 도착하면 섬 가운데 연못이 있는데, 그 안에 사원이랄까 탑이 있다. 원래 이렇게 간소한 형태의 사찰이었는지 아니면 많이 파손되어 남아있는 부분이 적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전체적인 디자인을 볼 때는 건물이 많았던 사원은 아니었던 것 같다. 연못과 그리고 섬을 감싸고 있는 호수와의 조화를 중시한 사원인 것 같다. 연못 둘레에는 산책로가 있어 산책로를 따라 한 바퀴 돌면 호수 가운데의 탑이 방향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섬은 작아서 20~30분 정도면 전체를 돌아볼 수 있다. 다행히 섬 안에는 큰 나무가 많아 그늘이 져 걷기 쉽다. 섬을 돌아본 후 근처의 벤치에 앉아 한숨을 돌린다. 매점이라도 있으면 주스나 청량음료를 사 마시겠는데 보이지 않는다. 목이 말라서라도 빨리 섬 밖으로 나가야겠다.
섬에서 나오니 더워서 지치기도 하고, 또 휴대폰 배터리도 간당간당한다. 충전도 시킬 겸 목도 추기기 위해 주차장 근처에 식당을 찾았다. 주차장 주위에는 꽤 많은 음식점과 기념품점 등이 있다. 적당한 곳에 찾아들어가 망고 주스를 마시며 쉬었다. 식사를 하는 것보다 망고 주스 한 잔을 마시는 것이 훨씬 좋다. 시원하기도 할 뿐 아니라 당분이 많기 때문에 금방 힘이 돌아온다.
다음은 반떼이 프레이이다. 가는 도중에 쁘레아 칸(Preah Khan) 사원이 보여 들렀다. 쁘레아 칸 사원은 대규모 수도원이자 불교사원으로서 종교와 학문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한 때는 약 1만 명 이상의 승려, 학자, 관리가 거주했다고 한다. 쁘레아 칸 사원은 상당히 큰 사원이었던 것 같은데, 많이 파손되어 있었다. 형체가 제대로 남아있는 건물이 거의 없었다. 이 일대는 상당히 넓은 유적지 같은데, 현재 본격적인 복구작업이 시작된 것 같다. 어제 찾았던 타 프롬과 마찬가지로 큰 나무들이 사원의 구조물 위로 자라고 있었다. 이러한 신비한 분위기로 인해 사진 촬영지로 아주 인기가 있다고 한다.
반떼이 프레이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러고 보니 반테이 프레이 사원은 산 정상에 있는 사원으로 2년 전에 다녀온 적이 있다. 앙코르 유적지에서 일몰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일몰시간이 되면 산 정상에 있는 사원은 관광객으로 넘친다. 사원까지 올라가는 데는 20분 정도 걸린다. 이미 가보았던 곳이고, 또 산을 오르는데 힘이 들어 여긴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앙코르 국립박물관에나 들렀다 가야겠다. 박물관은 씨엠립 시내에 있다. 박물관에 도착하니 벌써 오후 4시 반이다. 오후 6시에 폐관한다고 하니 1시간 반 정도의 여유가 있다. 이 정도 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그런데 박물관은 앙코르 유적지 입장권으로 들어갈 수 없으며 따로 입장권을 구입해야 한다고 한다. 입장료는 12불이다. 박물관이라지만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이전에 프놈펜에 있는 캄보디아 국립박물관에 간 적이 있었다. 전시품도 별로였으며, 전시 기법은 더욱 실망스러웠다. 그래서 이곳도 한 시간 남짓 보면 충분할 걸로 생각했다.
그런데 들어가면서부터 현대적인 건물이라 의외라 생각되었다. 전시품도 아주 좋았고 전시기법도 훌륭하다. 수준급의 박물관이다. 1시간 반의 시간으로는 도저히 제대로 관람할 수가 없었다. 직원에게 티켓이 내일까지 유효하냐고 물으니 안된단다. 할 수 없이 급한 마음에 건성건성 돌면서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 최소한 3시간 정도는 할애해야 제대로 둘러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박물관은 2007년에 건립되었는데, 크메르 제국의 역사, 예술, 종교, 건축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하여 현대식으로 설립하였다고 한다. 8개의 테마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러 언어로 오디오 가이드가 제공되고 있다.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찬찬히 전시물을 감상하였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이 없다. 그냥 빨리빨리 건성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앙코르 지역은 크메르 왕국의 수도로서, 앙코르 시대는 캄보디아가 가장 찬란한 문명을 꽃피운 시기였다고 한다. 캄보디아 역사가들은 2000년 캄보디아 역사를 3개의 시기로 구분하는데, 프리 앙코르 시대, 앙코르 시대, 포스트 앙코르 시대라 한다고 한다. 이 시대구분에서도 캄보디아 역사에서 앙코르가 갖는 의미를 알 것 같다.
그런데 앙코르 유적지와 앙코르 박물관을 보면서 한 가지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앙코르는 강성한 크메르 왕국의 수도였다. 아무리 그 시대 종교가 중요하였다고 하지만, 수도라는 공간에서 국가가 번성하다 보면 종교시설 및 종교문명 외에도 국가의 정치, 경제, 군사 등에 관한 여러 방면의 유물, 문화유물, 주민의 삶과 관련한 유물과 유적이 없을 수 없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종교 유적 및 유물을 제외한다면 단 하나의 문명과 문화 흔적도 찾을 수 없다. 너무나 이상하게 느껴진다.
숙소로 돌아왔다. 원래 앙코르 유적탐사는 오늘까지만 하려 했으나. 내일도 해야겠다. 처음에는 하루 동안만 탐방을 하려다 3일권을 끊었는데, 이틀을 지나고 보니 제대로 둘러보려면 일주일은 돌아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