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7a) 배낭 하나 메고 또다시 동남아로
다음은 타 프롬 템플이다. 이곳 역시 영화 <라라 크로프트>에 촬영지로서, 이 영화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다행히 이곳은 바이욘 사원과 달리 영화 속에서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타 프롬은 거대한 나무와 그 뿌리가 사원의 구조물과 뒤엉켜있어 마치 자연이 건축물을 삼킨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스펑나무와 무화과나무의 뿌리가 사원 건축물을 덮을 듯 자라고 있어 신비스러운 느낌을 준다. 우리가 앙코르와트 사진을 보면 거대한 나무뿌리가 건물을 감싸고 있는 광경을 보는데, 그곳이 바로 이곳 타 프롬 템플이다.
앙코르 유적의 다른 건물들은 모두 복원하고 있는데 비해 타 프롬 만은 일부러 복원하지 않고 발견된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자연이 인공 구조물을 어떻게 침범하는가를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타 프롬 템플은 주차장에서 꽤 많이 걸어 들어간다. 사원 입구가 보이면 그 앞으로 양쪽에 작은 연못이 보인다. 연못 가운데로 난 길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옆쪽 정원으로 나가는 길이 있다. 정원으로 나가면 돌담을 뚫고 굵은 뿌리를 내린 그 유명한 나무가 보인다. 이 나무는 스펑 나무라한다. 스펑 나무는 독특하게 공중뿌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 뿌리는 땅으로부터 양분을 흡수하기도 하지만, 공기 중의 산소도 흡수하는 기능도 한다고 한다.
스펑 나무는 앙코르와트 유적을 훼손시킬 위험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캄보디아 정부는 스펑나무가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고, 유적과 나무를 함께 보존하는 방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한다. 입구의 반대편까지 갔는데, 그 모습이 입구와 아주 흡사하다. 내가 사원 안 구경을 하면서 방향을 잃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들어올 때 입구를 찍은 시진을 찾아 지금 있는 곳과 비교를 했다. 비슷하게 생겼는데 조금 다르다. 이 사원은 좌우 대칭뿐만 아니라 앞뒤 대칭이라는 특이한 모습을 한 것 같다.
타 프롬 템플을 나오니 거의 쓰러질 지경이다. 햇빛은 무섭게 내리쬐고 있고, 온몸은 열기로 달아있다. 우선 좀 쉴 곳을 찾아야겠다. 스쿠터를 출발하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 좀 살만하다. 목적 없이 일단 달리다 보니 식당이 몇 개 모여있는 곳이 보인다. 먼저 코코넛부터 한 통 마셨다. 좀 숨이 돌아온다. 가장 무난한 파인애플 볶은밥을 주문했다. 밥을 먹고, 과일주스를 한 컵 마시니 좀 살 것 같다. 이미 온몸은 땀으로 푹 절어있다.
식당 그늘에 앉아 쉬면서 이 글을 쓴다. 한 시간쯤 쉬니 정신이 돌아온다. 이대로 돌아가기는 너무 이르다. 한 곳만 더 들렀다가 돌아가야겠다. 지금까지 거친 세 곳이 앙코르 유적의 대표적 방문지라 할 수 있다. 대개 하루 일정으로 투어를 하는 사람들은 이 세 곳과 일몰 풍경을 들린다.
안내 포스터에 있는 유적 순서대로 들리는 것이 헷갈리지 않고 좋다. 다음은 반티아이 크데이(Banteay Kdei) 사원이다.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별다른 표시 없이 소박한 석문 하나가 보인다. 앞의 세 사원과는 규모면에서도 큰 차이가 나는 것 같다. “반티아이 크데이”는 앙코르 말로 “승려의 방” 또는 “승려의 요새”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불교 사원으로 건축되었고, 건축 후 상당기간은 불교사원으로 이용되었으나, 나중에는 힌두교적인 요소가 많이 추가되었다고 한다.
반티아이 크데이 주변에는 무성한 나무 숲과 작은 연못이 있어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느낌을 준다. 그러나 거의 보전 및 복구 작업을 않고 방치해 둔 느낌이다. 역시 앞의 세 메이저 사원과 비교해서 큰 차이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계속 들어갈수록 그게 이니다. 처음에는 볼품없다고 생각했지만 들어갈수록 멋진 건물이 연이어 나온다.
거의 손을 대지 않은 듯 보이는 풍경이 오히려 오랜 역사를 그대로 품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더욱 좋았다. 앞에 본 바이욘 사원이나 타 프롬 템플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멋진 사원이다. 관광객도 그다지 많지 않아 차분히 둘러볼 수 있었다. 그러나 햇빛이 하도 강하니 지친다. 아침부터 물과 음료수를 그렇게 많이 마셨는데도 아직 소변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 아마 땀을 몇 리터는 흘린 것 같다.
그럭저럭 4시가 가까워온다. 3일권 티켓을 끊길 잘했다. 1일권을 끊어 급하게 돌아다니며 구경했다간 정말 죽었을 것 같다. 오늘은 일단 이 정도에서 돌아가자.
몸에 열이 펄펄 나는 느낌이다. 숙소에 도착하면 무엇보다 수영장에 뛰어들어 달아오른 몸을 식힐 것이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후 핸드폰만 챙겨 풀로 내려왔다. 1.5만 원짜리 싸구려 숙소이지만 수영장은 갖추고 있다. 수영장을 혼자 독차지하여 몸을 던진다. 차가운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이제 몸이 좀 식는 것 같다. 카톡을 확인하니 두 돌짜리 외손자가 첫눈을 맞으며 놀고 있는 동영상이 도착해 있다.
방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있으니 벽에 10센티 정도 길이의 도마뱀 두 마리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옛 생각이 난다. 15년 전쯤 집사람과 처음으로 태국에 골프여행을 갔다. 밤 12시가 넘어 골프장 안에 있는 골프텔에 도착하여 방을 배정받았는데, 거실이 딸린 스위트 룸이었다. 그런데 벽에 뭔가 움직인다. 맙소사 길이가 1미터도 넘어 보이는 도마뱀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한두 마리가 아니다. 월척급만 해도 네댓 마리는 되고 작은놈까지 합하면 몇십 마리는 될 것 같았다. 완전히 동물원이었다. 그런 속에서도 보름간 잘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