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 자연휴양림 여행(2)

(2021-10-31b) 익산 서동공원과 왕궁리 유적

by 이재형

이번 여행 일정을 만들면서 익산에 서동공원이라는 곳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서동(薯童)이란 잘 아시다시피 백제 무왕의 어릴 적 이름으로서, 신라의 선화공주와의 로맨스가 유명하다. 그런데 왕자인 서동이라면 당연히 당시의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 즉 현재의 부여에 있어야 하는데, 이곳 익산에 웬 서동공원이라니 좀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여에는 백제 왕실의 별궁의 정원이었던 궁남지가 있고, 이 궁남지를 중심으로 한 공원의 이름이 ‘서동공원’이다. 그런데 부여에서 무려 5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익산에 서동공원이 있으리라곤 생각을 못했다.


4. 익산 서동(薯童) 공원


익산 서동공원은 익산 도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있다. 차로 공원 주차장으로 들어가니 “서동 축제”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고, 많은 조형물들이 만들어져 있다. 축제기간이라 그런지 관람객들도 상당히 많다. 조형물들이 대체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져 있어 아이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이곳에 설치된 대부분의 조형물들은 천으로 만들어졌다. 서동을 소재로 한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용을 비롯한 여러 동물 등의 조형물이 모두 천으로 된 것이다. 천으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은 진짜 제대로 된 소재로 만든 것과 전혀 구분이 가지 않는 것도 있다. 공원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니 길 양쪽에 석탑이 서있다. 아무리 봐도 진짜 돌로 만든 석탑이다. 그래도 혹시 하고 가까이 가서 유심히 살펴보았다. 암만 봐도 돌로 만든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만져보니 천이다. 정말 요즘은 무늬와 색채를 입히는 기술이 발전한 것 같다.


말을 타고 있는 서동에게 선화공주가 안겨 있고, 그 주위를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는 조형물이 보인다. 그런데 선화공주의 얼굴이 마치 그림 동화에 나오는 서양의 공주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데 서동과 선화공주의 이야기가 정말 있었던 일일까? 서동과 선화공주의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설화이다. 역사 기록에는 무왕의 왕비가 백제 최고 귀족의 딸이라고 나와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서동과 선화공주의 로맨스가 사실이든 설화에 불과하든 역사학자가 아닌 우리들이 그것을 구태여 따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런 조형물들을 지나 한참 들어가니 큰 성문이 보이고 그 성문 앞에는 역시 천으로 만든 백제 군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저 성문은 과연 돌과 기와와 나무로 만들었을까? 아니면 저것 역시 천으로 만들었을까? 아무리 기술이 좋다고 하더라도 높이가 10미터에 가까운 성문을 천으로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20211031_134442.jpg
20211031_135539.jpg
20211031_135621.jpg

공원 한쪽에 이곳 서동공원의 배경에 관한 안내판이 서있다. 읽어보니 설화에 따르면 서동이 이곳 익산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서동의 어머니는 과부였는데, 연못에 사는 용과 정을 통하여 서동을 낳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엔 용의 조형물이 많았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설화에 불과하고, 실제로 무왕은 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다만 무왕의 아버지가 법왕(29대)인지 아니면 위덕왕(27대)인지는 불분명하다고 한다. 무왕은 익산에 큰 궁궐과 사찰을 짓고 백제의 도읍을 이곳으로 옮기려 했다고도 하는데,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다.


서동공원의 중심에 있는 성문의 이름은 ‘무왕루’이다. 무왕루를 지나면 앞에 넓은 호수가 펼쳐진다. 바로 금마 저수지이다. 호수 위에는 여러 척의 모형 배가 떠있다. 무왕루 부근에 있는 단풍나무는 새빨갛게 물들어 있다. 무왕루 주위를 장식한 노랗고 빨간 국화꽃들이 가을의 정취를 더해준다. 호수 옆에는 서동정(薯童停)이라는 제법 큰 정자가 있고, 이 정자로부터 호수 위로 나무로 된 산책 보도가 설치되어 있다. 산책 보도 옆으로는 갈대밭이다. 오늘은 전형적인 가을 날씨다. 간간히 구름이 떠있는 푸른 하늘 아래서 갈대에 둘러싸인 호수 위 산책로를 걸으니 이만한 호강을 즐기기도 쉽지 않으리라.


5. 마한 박물관


서동공원 옆의 언덕 위쪽에는 <마한 박물관>이 있다. 잘 아시다시피 한반도 중남부에 마한, 진한, 변한의 국가들이 존재하던 시기를 우리는 원삼국 시대라고 부르며, 대략 기원전 3세기 정도부터 기원후 3세기 무렵까지로 알려져 있다.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서기 1세기경에 건국되었으므로, 이 시기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마한, 진한, 변한이 함께 공존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한, 진한, 변한은 각각 몇십 개의 작은 국가로 이루어진 국가 연합체였으므로, 이 시기 우리나라는 가히 열국 시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수많은 국가가 난립하였던 시대라고도 볼 수 있다.


마한 박물관에는 이 지역에서 출토된 마한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렇지만 고구려, 백제, 신라의 유물도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에 비추어보면 이 시대의 유물이 많이 남아있을 리는 없다. 전시된 유물들은 대개가 토기 파편과 같은 것들이다. 이 시대는 석기와 청동기, 그리고 초기 철기 문화가 공존하던 시대였다. 그래서 석제 검, 토기로 된 항아리 등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그 외에는 그 시대의 집터와 미니어처로 복원된 움집 등이 전시되어 있다.

20211031_141709.jpg
20211031_141758.jpg
20211031_141949.jpg
20211031_142113.jpg
20211031_142138.jpg

이 시기의 주택은 모두 움집 형태를 하고 있다. 좁은 터위에 원뿔 모습을 한 움집으로서, 벽은 짚으로 만들어져 있다. 옛사람들의 살았던 모습을 상상해본다. 어떻게 먹고살았을까? 어떤 사회 규칙이 있었을까? 이웃 마을 혹은 이웃 국가와 커뮤니케이션은 어느 정도 가능했을까? 지리적으로 상당한 거리, 예를 들면 50킬로미터 혹은 10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다른 부족들과 대화가 가능했을까? 지금 생각해봤자 아무 해답도 없는 쓸데없는 생각을 이리저리 해본다.


6. 왕궁리 유적과 오층석탑


다음 행선지는 익산의 왕궁리 유적지이다. 최근 몇십 년 동안 익산에서는 백제 왕궁지와 미륵사 등 대규모의 유적지가 발굴되었다. 잘 아시다시피 백제는 건국 후 처음 500년 동안은 지금의 서울을 도읍으로 하였고, 그 이후에 공주로 도읍을 옮긴 후 다시 부여로 도읍을 옮겼다. 그래서 백제의 도읍지는 이 세 곳으로 알려져 왔는데, 익산에서 백제 왕궁터가 발견된 것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백제 무왕 시기에 익산으로 도읍지를 옮기려는 시도가 있었거나 아니면 익산을 제2의 수도로 한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여하튼 그런 상세한 문제들은 역사학자들에게 맡기고 나는 관광객의 입장에서 왕궁리 유적을 둘러본다. 왕궁리 왕궁터는 넓은 평야 한 복판에 위치하고 있는데, 최고 높이가 평지에서 10미터도 되어 보이지 않는 낮은 구릉지에 걸쳐 있다. 말 그대로 남아있는 건물은 하나도 없으며, 건물이 있었던 터만이 보존되어 있다. 건물터는 옛날의 건물 크기를 쉽게 추정할 수 있을 정도로 뚜렷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이 왕궁리 궁터는 백제 왕궁으로서는 처음으로 발굴된 유적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공주와 부여에는 많은 백제 유적이 있으나, 왕궁 유적은 못 본 것 같다. 공주의 공산성이나 부여의 부소산성이 왕궁으로 사용되었다고도 하는데, 그것은 아마 전시(戰時)의 임시 왕궁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20211031_144934.jpg
20211031_145241.jpg

왕궁리 오층석탑은 왕궁리 유적지를 상징하는 대표적 건조물이다. 낮은 구릉으로 된 넓은 벌판에 아무런 시설물이 없는 가운데 높이가 10미터 정도 되는 오층석탑만이 이 유적지의 유일한 건축물로 우뚝 서있다. 이 오층석탑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데, 건립된 시기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는 것 같다. 백제 시대에 건립되었다는 주장과 함께 통일신라 말기에 건립되었다는 주장, 그리고 고려 초기에 건립되었다는 주장 등이 서로 충돌되고 있다고 한다. 아무튼 이 석탑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는 몰라도 아무도 돌보는 이 없는 벌판 한복판에서 용케도 1,000년이라는 세월을 지켜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왕궁리 유적지는 송산리 고분군, 부소산성, 정림사지 등과 함께 ‘백제역사유적지구’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유적지 한쪽에는 박물관을 겸한 현대식 건물이 지어져 있는데, 내부 수리공사를 하고 있어 당분간은 개방을 않는다고 한다.


keyword
이전 01화변산 자연휴양림 여행(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