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9_2) 순천만 국가정원과 순천만 습지
다음 행선지는 <순천만 국가정원>이다. <순천만 국가정원>은 순천 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만들어져 있는데, 우리나라의 제1호 국가정원이라 한다. 이곳은 이전에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를 개최하면서 조성되었다고 한다. 한국정원, 외국의 정원들, 호수와 습지 등이 있는데, 생각보다는 규모가 크지는 않았다. 상당히 좋은 곳인 건 틀림없지만, “국가정원”이라는 이름에서 잔뜩 기대하고 왔는데, 기대보다는 조금 못한 것 같다. 어쨌든 이곳은 전라도 지역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라 한다.
<한국정원>으로 갔다. 왕궁의 정원을 모티브로 만든 것 같은데, 창덕궁의 비원을 연상케 하는 정원이다. 그렇지만 비원에 비하면 조금 조잡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정원 문화가 발달되지 못하였다. 그래서 왕궁을 제외한다면 전통적인 정원이라 할 만한 것을 찾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정원 문화라기보다는 마당 문화라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마당에 얽힌 에피소드 하나. 1990년에 일본 오사카에서 <국제정원박람회>라 개최되었는데, 이 박람회는 만국박람회에 버금갈 만큼 큰 박람회였다. 이 박람회에 세계 각국이 각자가 자랑하는 정원을 만들어 출품하였는데, 우리나라는 “마당”을 출품하였던 것이다. <오사카 정원박람회> 회장 한 곳에 있는 한국정원은 넓은 맨땅에다 한 켠에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 전형적인 우리나라 식 전통마당이었다. 이 작품을 출품하면서 우리나라는 이 작품의 의미를 “한국인의 여유(餘裕)와 여백(餘白)의 미(美)라는 한국인의 정서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설명을 하였다.
1993년 대전엑스포 준비를 위하여 우리나라 대전엑스포 조직위원회의 많은 직원들이 엑스포 준비를 위한 사례 답사 명목으로 오사카 정원박람회의 시찰을 위해 출장을 다녀왔다. 필자는 그때 엑스포 효과에 관한 연구에 참여하고 있어서 조직회 직원들의 오사카 정원박람회 출장보고서를 대부분 읽어보았다. 출장보고서를 보면 그들은 한국의 출품작에 대해 이런 식으로 평가하고 있다. “주최국인 일본을 비롯하여 영국, 프랑스 등 선진 각국들은 모두 자기 나라 고유의 아름다운 정원을 출품하고 있는데 비하여, 우리나라는 성의 없이 먼지가 나는 맨땅에 소나무 한 그루를 달랑 심어놓은 성의 없는 작품을 출품하여 너무나 창피스러웠다.”
작품을 만든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작품에 아무리 의미를 부여하더라도 일반 사람에게 그 의미를 전달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며, 어쩌면 작품에 대한 스스로의 의미부여는 허무한 자기도취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다음은 <순천만 습지>이다. 여기는 몇 년 전 6월 경에 한번 찾았던 일이 있는데, 그때는 더운 대낮 땡볕에 그늘 하나 없는 습지를 산책한다는 것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정문까지 왔다가 입장을 포기하였다. 벌써 낙안읍성과 국가정원을 다녀와 상당히 많이 걸었다. 거의 2만 보 가까이 걸은 것 같다. 어쨌든 습지 안으로 입장하였다. 비는 이제 완전히 그쳤지만, 하늘은 여전히 흐리다.
끝없는 개펄에 누런 황금색 갈대숲이 펼쳐져 있다. 오늘 같이 흐린 늦가을 나리 순천만 습지를 즐기기에는 제일 좋은 것 같다. 갈대밭 사이로 나무로 만든 테크 산책길이 놓여 있어 산책하기에는 그만이다. 길 중간중간에는 쉼터도 있고, 쉼터에는 벤치도 놓여 있어 아픈 다리를 쉴 수도 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데크 산책길이 조금 높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갈대 끝이 발목을 조금 넘는 정도이다. 그러다 보니 갈대숲을 내려다보며 걷게 된다. 산책길이 조금 낮아 갈대숲 속으로 걷게 하였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그렇게 할 경우 내가 생각 못한 다른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이곳 순천만 습지는 언제라도 다시 오고 싶은 곳이다.
오늘은 꽤 많이 걸었다. 요즈음 무릎 관절이 좋지 않아 걷는데 부담이 적지 않았다. 작년 봄에 의사의 권고대로 처음으로 무릎 연골주사를 맞았는데, 이후 상태가 좋다가 최근 다시 나빠지는 기미가 있었다. 며칠 전에 병원에 가서 다시 연골주사를 맞았는데, 효과가 아주 좋다. 많이 걸어도 무릎에 전혀 부담이 오지 않는다. 의사의 권고대로 앞으로는 1년에 두 번씩 빠지지 않고 연골주사를 맞도록 하여야겠다.
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순천역전시장으로 갔다. 이곳이 순천에서는 제일 큰 시장이라 한다. 시장 한쪽에 수산물시장이 있다. 이미 늦어서 그런지 파장 분위기이다. 집집마다 포장된 회를 팔고 있는데, 종류는 간제미와 서대 두 종류뿐이다. 둘 다 한 접시에 만원이라 한다. 가게 아주머니에게 어느 것이 맛있느냐고 물었더니, 간제미가 맛있다고 한다. 간제미 한 접시에 금방 깐 굴을 조금 샀다.
휴양림 숙소에 돌아와 식사를 하면서 먼저 간제미 회를 먹었다. 회 맛이 완전히 무(無) 맛이다. 아무런 맛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간제미회를 먹을 때 날로 그냥 먹지 않고, 갖은양념으로 무침을 하는 모양이다. 그래도 오돌오돌한 식감은 괜찮았다. 굴도 갓 깐 것으로 싱싱하긴 한데 향기가 적어 밋밋한 맛이다. 그래도 오늘 많이 걸은 탓인지, 맥주 한 병을 곁들이니 아주 맛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