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난민(難民) 일기(6) 사흘째①

(2022-03-21 월요일 a) 오서산 자연휴양림 산책과 부여 성흥산성

by 이재형

어제 많이 돌아다닌 탓인지 늦게 일어났다. 크게 서두를 일도 없으므로 느긋하게 아침을 먹었다. 지난 이틀 동안 흐렸던 날이 오늘은 활짝 개였다. 창문을 여니 시원한 바람과 함께 새소리가 들려온다. 자연휴양림에서 지낼 때 제일 상쾌할 때가 아침에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새소리를 들을 때이다. 거기다가 계곡 물소리까지 함께라면 더욱 좋지만 이곳은 계곡물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침에 딸아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사위가 코로나에 걸렸다는 것이다. 아들에다 사위까지 한꺼번에 코로나에 걸렸다. 다행히 증세가 심하지는 않은 것 같다.


13. 오서산 자연휴양림 산책


아침을 먹고 난 후 가볍게 유양림 산책에 나섰다. “까악 깍”하는 까마귀 소리가 많이 들린다. 알고 보니 오서산은 ‘烏棲山’, 즉 까마귀가 사는 산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오서산이라는 이름은 아주 옛날에 지었을 터인데 까마귀들이 어떻게 계속 이곳에만 눌러 사는지 궁금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곳 오서산 자연휴양림의 숲은 잘 관리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보통 자연휴양림은 계획 조림 지역 내에 위치한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계획 조림을 한 흔적은 보이지 않고, 산의 나무들이 거의가 잡목이라 할 만큼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뒤섞여있다. 그러니 계획 조림지역과 달리 체계적으로 관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휴양관 뒤쪽 산 위에는 대나무 길이 조성되어 있다. 작은 대나무 숲 사이로 산책로가 나있어 대나무 숲을 즐길 수 있다. 대나무 숲은 그다지 넓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 안쪽으로 산책로가 오밀조밀하게 나있어서 면적에 비해서는 숲길을 걷는 재미가 솔솔하다. 대나무는 지름이 2-3센티 높이는 5미터 정도 되는 작은 것들이다. 몇 년 전에 담양의 죽녹원이라는 곳에 가서 굵고 키 큰 대나무 숲을 본 적이 있었으나, 우리나라는 기후가 추워서 그런지 큰 대나무 숲을 찾기는 쉽지 않다. 지름이 15센티 이상되고 키가 10-20미터나 되는 큰 대나무들이 밀집해있는 대나무 숲은 장관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곳을 찾기가 어려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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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숲이라면 일본 교토(京都)가 볼만하다. 교토 그중에서도 특히 아라시야마(嵐山) 방면으로 가면 도처에 하늘을 찌를 듯한 키 크고 굵은 대나무 숲이다. 대나무는 번식력이 아주 좋은 식물이다. 교토시는 대나무가 너무 번져 골치라고 한다. 대나무는 땅속으로 뿌리를 통해 번식하는데, 대나무 숲의 지나친 확대를 막기 위해 땅속에 철판을 매립하여 뿌리가 옆으로 뻗어 나는 것을 방지한다고 한다. 우리로서는 부러워할 만한 일이다.


14. 왕릉원(王陵院)


휴양림을 나와 먼저 부여 왕릉원으로 갔다. 왕릉원은 삼국시대 백제의 옛 무덤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3기식 두 줄로 여섯 기의 무덤이 있는데, 왕릉으로 추측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왕의 무덤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백제는 26대 성왕 때 수도를 웅진에서 이곳 부여로 옮겼다. 그래서 부여에서 사망한 백제왕은 26대 성왕에서 30대 무왕까지 5명이다. 이들의 무덤이 모두 이 왕릉원에 있다는 것은 믿기 어렵고, 여섯 기의 무덤 가운데 왕릉은 많아야 한두 개 정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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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원은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다. 왕릉원 입구를 지나면 오른쪽 언덕 위에 여섯 기의 큰 무덤이 두 줄로 놓여있다. 정비공사가 진행 중인지 무덤 한 곳은 봉분이 절단되어 흙이 드러나 있다. 이 무덤들이 옛날 그대로 내려온 것인지, 아니면 현대에 와서 다시 복원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짐작으로는 복원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관람객은 우리밖에 없다. 무덤 봉분을 지나면 넓은 솔밭이 나온다. 솔밭 역시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 사정이 나아지니까 이렇게 유적들도 잘 복원되고, 관리되는 것 같다. 경주의 대릉원에 비해서는 훨씬 작은 규모이다.


15. 부여 성흥산성


어제 천수만을 끼고 완전히 일주한 셈이므로 오늘은 더 이상 바닷가로 필요는 없다. 특히 충청도 일대의 바닷가는 일 년에도 몇 번씩 찾으므로 더더욱 그렇다. 오서산 자연휴양림에서 부여가 얼마 멀지 않으므로 오늘은 부여에 가기로 하였다. 부여도 종종 찾는 곳으로 웬만한 곳은 다 가보았지만 오늘은 그동안 가보지 않은 몇몇 곳을 찾아보아야겠다.


먼저 성흥산성(聖興山城)으로 갔다. 성흥산성은 가림성(加林城)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백제시대에 축성된 산성이다. 성흥산성은 백제 동성왕 제위 시기인 서기 501년에 축조되었다고 한다. 충청 및 전라 지역에는 많은 백제 시대의 산성들이 있는데, 대부분 그 축성 시기가 불분명하다. 성흥산성은 백제의 산성 가운데 축성 시기가 확실이 알려진 유일한 성이라고 한다.


나는 산성들을 여러 곳 가본 적이 있는데, 대부분의 산성들이 산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주차장에서 상당히 많이 걸어 올라가야 한다. 이번에도 단단히 마음을 먹고 갔다. 그런데 고맙게도 성흥산성은 주차장에서 3-4백 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런데 처음에는 평지길을 걷다가 마지막 200미터 정도는 아주 가파른 바위 계단으로 되어 있다. 바위 돌계단은 2단으로 되어 있어 100미터 정도 가파른 계단을 올라간 후 좀 평평한 터가 있고 다시 100미터 정도의 가파른 계단으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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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흥산성에서는 많은 드라마나 영화를 촬영하였다고 한다. 사극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현대물도 심심찮게 끼어 있다. 알고 보니 산성 안에는 “사랑나무”라고 알려진 잘 생긴 느티나무가 있어서 젊은 연인들이 즐겨 찾는다고 한다. 산성 아래에는 그동안 이곳에서 촬영된 영화나 드라마들의 포스터가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다.


내가 앞장을 서고 집사람은 뒤를 따르면서 가파른 바위 계단을 올라갔다. 아래쪽 바위 계단을 올라서서 평지가 나오니 집사람은 길이 가팔라 더 이상 올라가지 않겠다고 한다. 혼자서 위쪽 바위 계단을 올랐다. 드디어 산성 안으로 들어갔다. 산성이 거의 산 정상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산성 안에 들어서서도 오르막 길은 계속된다. 성 안쪽으로 들어가니 바로 오른쪽에 큰 나무가 서있다. 바로 사랑나무이다.


사랑나무는 아주 큰 느티나무이다. 가지가 균형 있게 활짝 펴져 나무 전체의 모습이 마치 하트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곳에 오르면 저 멀리 산아래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정말 볼만한 경치이다. 사랑나무는 크기도 하려니와 아주 잘생겼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연인인 듯한 젊은 남녀가 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삼발이 카메라를 설치한 후 갖은 포즈로 사진을 찍고 있는데, 내가 사진을 찍으려 옆에 서있는데도 불구하고 좀처럼 자리를 비켜주지 않는다. 거의 10여분을 기다렸는데도 도무지 끝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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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없이 성 안쪽 산 위로 올라갔다. 아래에서 보니 비석과 함께 사당처럼 생긴 조그만 건물이 보인다. 그 위로는 정자가 세워져 있다. 올라가 보니 고려의 건국공신인 유금필 장군의 추모비와 이를 지키는 사당이다. 유금필 장군은 왕건을 도와 고려의 건국에 큰 공을 세웠는데, 이 근처인 홍성에서 견훤의 후백제군에게 대승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렇게 성안 몇 곳을 둘러보고 사랑나무가 있는 곳으로 다시 내려왔는데, 사진을 찍고 있던 젊은 연인들은 지금까지 계속 사진을 찍고 있다. 아마 수백 장은 찍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또 한참을 기다렸더니 그제서야 사진을 다 찍었는지 물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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