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 경로를 벗어났습니다

시시콜콜한 나의 이사 이야기 - 1

by 정희


PROLOGUE



몇 주 전부터 핸드폰이 GPS 인식에 실패했다. 귀찮다는 핑계로 수리를 미루는 사이, 경로를 벗어났다는 내비게이션 경고에 차츰 익숙해졌다. 늘 그랬듯 코앞에 닥친 급한 일에 떠밀려 몇 주를 보냈다. 모른 척 무시해도 당장 별일이 생기진 않았으니까.


무시는 중요한 분기점 앞에서 위기가 되어 돌아왔다. 새로운 경로가 안내될 때까지 불안하게 달려야 했다. 진작에 고치지 못한 나를 게으르다 탓하면서 말이다.


살아보니 운전만 그런 게 아니었다. 일상이 길을 놓칠 때는 얼마나 많은가. 수많은 변수가 느닷없이 끼어들고 예상 못한 난관은 순간마다 나를 시험한다.


예정된 경로대로 움직이던 일상과 예상 가능한 매일의 루틴 속으로 난데없이 ‘이사’가 끼어들었다. 나에게 그것은 물리적인 공간의 이동뿐만 아니라 어렵게 이어가던 커리어의 단절을 의미했다. 뚝 끊어진 길 앞에서 멈춰야 했고 새 길을 찾는 경고음에 마음이 지쳐 갔다. 낯선 일상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삶에 디폴트 값도 잊은 채 살다가 초기화 버튼을 눌러야 했던 그때, 인생의 출발선에 맨몸으로 다시 서야 했던 그때, 주저앉고 싶은 마음과 매일 싸웠다. 새롭게 주어진 좌표 위에서 다른 경로를 찾으려 애썼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느낀 막막함을 자유로운 탐색과 시도의 기회로 역전시키고 싶었다.


그렇게 헤매고, 찾고, 허물고, 읽으며, 새로운 경로를 만들었다. 글쓰기 속에서 마음껏 무너져보고, 숨어 사는 즐거움도 찾아낸 그 시간의 기록을 남긴다.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나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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