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희 Nov 23. 2022

기다려 온 문장과 만나는 기쁨

<인생의 역사>를 읽고


우리는 가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어떤 시와 만난다.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문장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모른다. 어느 날 어떤 문장을 읽고 내가 기다려온 문장이 바로 이것임을 깨닫는다.’ P112     





신형철 평론가의 문장을 무척 좋아해 왔다. 이보다 더 적확할 수 없는 어휘를 집어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정도의 감도로 과장 없이 표현하는 능력에 자주 감탄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의 책을 온전히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더라는.      


‘이젠 좀 알겠다 싶으면 당신은 아직 모르는 것이고, 어쩐지 점점 더 모르겠다 싶으면 당신은 좀 알게 된 것이다.’ P172라는 저자의 말처럼 나는 그를 좀 안다고 생각했으나 모르고 있었고 이 책을 읽고 난 후 어쩐지 점점 더 모르겠다 싶은 실감이 몰려와 여전히 모르겠다는 무지를 토로할 수밖에 없다. 시에 담긴 인생을 들여다보는 것은 실로 거창한 일이며 무수한 질문 사이를 정답 없이 거니는 막막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의 안내를 따라 살펴본 시어와 시인의 삶은 어떤 힌트를 보여주는 듯하다. 아름다운 문장 속을 헤엄치는 동안 내가 인생에게 바라 온 것을 목도했고 그것을 찾기 위해 맞불을 놓듯 문학을 끌어들였다는 인식에 당도하자 ‘나를 태우는 불을 끄기 위해 나는 타오르는 책들을 뒤적이는 사람이 된 것이다.’P 211는 고백은 내 것이 되고 만다.         


평론이라기엔 넓고 산문이라기엔 다소 심오한 그의 문장에서 나는 절절 끓는 사랑을 감지했다. ‘기룬’으로부터 피어난 그 사랑은 최승자 시인에게로 흘러 카버를 거쳐 윤상과 황동규를 내내 휘감아 돈다. 무심한 느낌의 표지는 오히려 그 열기를 숨기려는 의도처럼 읽히지만, 감추는 것에 성공하진 못한 것 같다. 사랑이란 결코 잠잠할 수 없으며 기다려온 줄 몰랐던 절실한 문장을 만난 기쁨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기 때문이다.      


#신형철 #인생의역사 #시화

작가의 이전글 김강민 홈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