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셋이 술 한잔하면서 나눈 대화입니다.
한 친구가 요즘 아내하고 냉전 중이라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 친구는 다섯 남매 중에서 둘째입니다. 자기 형(장남)이 부모님 댁으로 들어가 살기로 하였답니다. 부모님 댁은 단독주택으로 주차장이 없었습니다. 형은 800만 원을 들여 집안에 주차공간을 만드는 개조공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공사비는 균등하게 나뉘어 형제들에게 배분되었으며, 친구는 이의제기 없이 형에게 150만 원을 송금하였답니다. 나중에 친구의 아내가 어딘가로부터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형님 차 주차공간 만드는데 들어간 공사비를 왜 당신이 부담했느냐는 아내의 다그침에 아직까지 적당한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한 친구가 그 정도는 약과라며 말을 받았습니다. 이 친구는 네 형제 중 장남이며 거의 장손입니다. 일 년에 네 차례의 제사가 있는데, 아내와 제수 셋이 제사들을 준비하였습니다. 근간에 친구의 두 아들이 결혼하면서 며느리를 맞았습니다. 그리고 지난번 제사에는 자기 아내와 며느리 둘이서 제사를 준비하였답니다. 시아버지인 우리 친구는 며느리들에게 수고했다고 10만 원씩 수고비를 주었답니다. 나중에 제수씨들이 그 수고비가 집안 행사를 위해 모아둔 공금에서 나갔다는 사실을 알고는 뒤에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들을 한 모양입니다.
우리 친구 셋은 그날 오랜만에 배를 잡고 크게 한번 웃어보았습니다.
오빠는 장남이잖아.
라는 말이 어느 시점부터 나에게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말은 오빠는 장남이었기에 동생들보다 부모로부터 더 많은 혜택을 받았으며, 그러기에 책임감도 동생들보다 더 많이 느껴야 한다는 말로 들렸기 때문입니다. 나는 다섯 남매의 장남으로 자라면서 부모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후 막내 동생이 결혼할 때까지 15년 동안 부모님의 힘이 되어드렸습니다. 가난한 집 장남으로 태어났기에 감당해야 할 책임이라고 인정했습니다. 형제들이 모두 결혼을 하였고 자기 가족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장남의 책임을 다 했다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나는 동생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장남 포기 선언> 을 하였습니다.
장남 포기 선언 내용 중 하나는, '나는 장남이다' 라는 생각으로부터 해방입니다. 장남으로부터의 해방이란 장남이기에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의무감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이 의무감은 타인 또는 나 스스로 나에게 요구했었던 것들입니다. 다른 하나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형제들 각각 개인적인 관계를 갖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부모님 생신에 '나는 이 정도 하려는데 다른 형제는 어떨까' 라는 관심을 갖지 말자는 것입니다. 다른 형제가 어떻게 하든 괘념치 말고 각자가 알아서 하는 것입니다. 형제들도 제각각 삶의 가치나 처지가 다릅니다. 하나의 기준이 누구에게는 부담이 안되지만 다른 누구에게는 부담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부모님이 형제에게 서로 다른 기준으로 대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어떤 자식에게 받은 용돈이나 선물을 다른 자식에게 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건 부모와 자식 개개인의 관계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제 생각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우리 형제들은 부모님의 문제로 서로 갈등을 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은 부모님 두 분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사시던 시골집을 한 여동생에게 주셨습니다. 나와는 상의한 적이 없습니다. 나중에 다른 동생으로부터 그 이야기를 듣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셨겠지라고 정리하였습니다.
부모님에게 나는 어떤 아들이었을까? 효자였을까? 생각해보니 괜한 질문입니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간직하고 싶은 추억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버지와 장난을 치며 놀아 보았던,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어 보았던 기억이 없습니다. 그때의 아버지들은 다 그랬었다고 달래기엔 너무 슬픈 관계였습니다.
나에게도 아이들이 있습니다. 나는 아이들이 효자 효녀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왠지 우리 아이들이 효자 효녀가 되면 나는 좀 슬플 것 같습니다. 나는 아이들이 그냥 좋은 친구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계속 좋은 친구 같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 가까이 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난주에는 브런치에 글을 발행했다가 하루 만에 내렸습니다. 내용이 작금의 상황에 오해가 있을 수 있다는 딸의 의견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발행하기 전에 자기(딸)에게 한번 보여 달라기에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싫으면 그만두라는 협박성 멘트도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아들과 통화를 했습니다. 아버지의 다음 글에 대해 궁금해하기에 이번 글의 제목은 <장남 포기 선언>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이 살짝 당황하며 물었습니다. “저를 포기하신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