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

by 이재현

아내는 요즘 복숭아 먹기에 푹 빠져 있습니다. 그것도 부드러운 황도를 좋아합니다.


“여보 우리 복숭아 먹자”라는 말은 나 복숭아 먹고 싶으니 깎아 달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한 개의 복숭아를 깎아서 둘이 먹는데 한 번에 두 개의 복숭아를 먹기는 좀 부담스럽습니다. 나는 복숭아 껍질을 벗기고 복숭아 살을 씨로부터 잘라내어 아내에게 줍니다. 보통 네 다섯 조각이 나오는데 아내는 복숭아 순살을 먹고, 나는 복숭아씨에 붙어 있는 살을 먹습니다. 처음 몇 번은 순살 한 조각 정도는 내 몫으로 남겨놓더니 언제부터인가는 슬그머니 혼자 다 먹어버리네요.


과일을 깎고 난 후 씨와 함께 붙어 있는 살을 '엄마 것'이라고 표현했던 글을 예전에 본 적이 있습니다. 과일이 귀하던 시절 엄마는 과일을 깎아 살은 아이에게 주고 자신은 항상 씨에 붙어 있는 살을 먹었답니다. 맛있는 부분은 아이에게 주고 남아 있는 먹기 힘든 부분은 언제나 엄마 몫이었습니다. 아이는 그래서 그것이 엄마 것인 줄 알았답니다. 그 아이는 자라서 엄마가 되어서야 그것이 엄마의 사랑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의 사랑은 희생입니다. 난 요즘 아내에게 복숭아를 깎아 주면서 내가 아내의 엄마가 된 기분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희생(?)한다는 생각이 들 때 이것이 바로 행복일 것입니다.


지난주 아이들과 영상통화를 했습니다. 이야기 주제는 소확행이었습니다. 소확행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랍니다. 요즈음 아빠의 소확행은 무엇이냐고 딸이 묻네요. 나는 요즘 엄마에게 복숭아를 깎아 주고 아빠는 씨에 붙어 있는 복숭아를 먹을 때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아빠는 멋쟁이라고 딸은 말하고, 아버지는 왜 그렇게 사세요 라며 아들은 무안해하네요.


언제부터인지 씨에 붙어 있는 복숭아 살의 양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을 보며 의미 심장한 미소를 띱니다. 오늘 아침엔 아내가 오랜만에 복숭아 살 조각을 하나 남겨놓았습니다. 내가 먹어보니 맛이 별로 없었습니다. 아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여보, 왜 복숭아 남겼어?”


아내가 아주 명쾌하게 대답합니다.


맛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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