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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효민 Jan 14. 2021

21-2.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HugoBooks _ 우고의 서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서점에 들른 사람이 책을 구매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무엇일까? 나는 책 제목과 책 디자인이라 생각한다. 서점에 있는 모든 책이 신간이고 내용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일 경우 독자들은 두 가지 시각적 요소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소개팅 자리에 나가기 위한 열쇠가 주선자가 양쪽으로 전달하는 사진이듯이 말이다.(물론 요즘은 사진을 일부러 확인하지 않고 만나는 경우도 많지만 말이다)


 그런 면에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충분히 호기심을 끌만 했다. 도대체 '무엇이 그토록 참을 수 없는가?', '존재가 가볍다는 것은 무엇인가?', '존재감이 중요한 사회이니 그런 류의 존재감을 말하는 것인가?' 등의 질문이 마구마구 떠올랐다. 비슷한 류이 책으로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들 수 있는데 '브람스를 좋아하냐고 물어보는 거면 물음표가 와야 하지 않나?', '왜 사연 있는 것처럼... 을 붙여놓은 걸까?', '브람스를 좋아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 걸까?' 등의 질문이 떠오른다.




 Ⅰ. 무엇인가 되어야 하는 인간의 삶

 인간은 자신의 삶에 끊임없이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간다. "내가 태어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어. 그리고 더 나아가 나는 내가 태어난 의미를 찾을 거야"라는 어느 드라마에서 들어봤을 법한 대사가 귓가에 맴돈다. 인간의 본성이 삶에서 의미를 찾도록 설정이 되어 있는 건지, 사회라는 구조가 한 명의 인간에게 그것을 요구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몇 해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수 '이효리'가 했던 말은 분명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나는 어린이를 보고 "그냥 아무나 돼" 라는 멋진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살아오면서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무거움을 이고 지고 살아왔다. 엄마의 언어를 습득하여 대화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되는 순간부터 우리는 "00 이는 커서 무엇이 되고 싶어"라는 질문에 노출된 결과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엇이 되어야만 했다. 


 인간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대해 일종의 공포심을 느끼며 살아왔던 걸까?

 




 Ⅱ. 키치(Kitsch)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


 [명사] 천박하고 저속한 모조품 또는 대량 생산된 싸구려 상품을 이르는 말.


 네이버 어학사전에 등록되어 있는 '키치'의 정의다. 간단히 '질 낮은 예술품'으로 정의를 할 수 있겠다. 인간은 모두가 키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며 살아간다. 내 행동과 말은 의미가 있어야 하며, 내가 만들어 낸 결과는 어떠한 가치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단순히 쾌락과 유희를 위한 것들은 키치가 되어 내 존재마저도 가볍게 만들어 버린다고 결론지어 버린다.


 키치에서 벗어나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어떤 의미를 찾기 위한 그 말과 행동들이 본래의 가치를 잃어버리는 것에 대해 책의 저자 밀란 쿤데라는 경계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예를 들면 내가 상대방을 정말 사랑하는 그 마음이 가장 중요한 것인데, 내가 상대를 좋아하면서 헌신하고 희생하는 나의 모습에 집중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말한다. 


 소설 속에서도 이러한 모습들이 나타나는데 대표적으로 '대장정' 파트에 등장한다. 베트남의 침략을 받은 캄보디아에는 많은 부상자들이 발생했는데 베트남은 그들을 제대로 치료해주지 않았다. 국제사회는 이를 규탄했고 베트남 측에 의사들이 캄보디아에 파견되어 그들을 치료해줄 수 있게 해 달라는 성명서를 냈으나 거부당한다. 이에 의사, 지식인, 기자, 가수, 배우, 철학자 등으로 구성된 470명이 방콕에 도착하여 캄보디아 국경으로의 대장정에 나서게 된다.


 이렇게 숭고한 뜻을 가지고 모인 그들이었지만 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의 발상을 가지고 미국인들이 주도권을 잡는 것에 불만을 느꼈고, 미국인들은 영어로만 모든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는 미국의 여배우가 등장하면서 갈등이 '카터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정점으로 향했다.


 국경으로의 대장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미국 대표 1명, 프랑스 대표 1명, 현지 언어 통역사 1명이 선두에 서고(선두에 누가 서는지에 문제로 이미 한바탕을 한 상황) 의사가 그 뒤를, 지식인과 나머지가 그 뒤를 이었다. 앞선 회의에서 눈물을 보이며 대장정의 숭고함을 외쳤던 여배우는 자신이 행령의 가장 뒤에 있다는 것을 도저히 참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행령의 선두를 향해 뛰기 시작했고 모두들 그녀를 말리는 촌극이 발생한다. 선두는 아니지만 앞 쪽 자리를 선점한 그녀와 그녀에게 자리를 내준 가수를 찍기 위해 행렬에서 조금 벗어나 앵글을 잡던 기자가 지뢰를 밟게 되는 사고가 터진다. 기자의 피가 행렬을 덮치고 가수가 들고 있던 흰 깃발에 피가 묻게 된다. 이후는 본문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려 한다.


 가수와 여배우는 경악하여 그 자리에 말뚝처럼 서 있었다. 두 사람은 깃발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깃발은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처음에 이 광경은 그들의 공포를 증폭할 따름이었다. 그런 다음 그들은 몇 차례 머뭇머뭇 눈길을 들어 바라보다가 빙그레 웃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들이 들고 있던 깃발이 피의 세례를 받아 성스러워졌다는 생각에 지금까지 미처 몰랐던 묘한 자부심을 느꼈던 것이다. 그들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본문 431p>



 이것이 키치의 무서움이자 무거움이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존재의 무거움'을 내려놓지 못한다. 키치를 도저히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 진정한 자아의 성찰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허례와 허식일 뿐이다. 이 말은 인간은 결국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내 모습으로 살다가 죽게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죽은 후에야 그리고 타인에게서 잊힌 후에야 비로소 나의 모습으로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어깨에 놓인 짐을 더욱 무겁게 만드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 존재가 가볍다고 해서 내 삶이 '키치'가 되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생명이 다 할 때 진정한 안식을 누릴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매 순간 우리는 안식과 평화를 누려야 한다. 우리 조금은 가벼워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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