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자라는 캠핑

캠핑을 갔는데 연병장을 다녀온 기분

by 자잘한기쁨

계획대로 사는 건지 흘러가는 대로 사는 건지 모르겠는 요즘이다.

주말은 다가오고 흘러가는 대로 있다가는 놀기 딱 좋은 지금을 놓칠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별안간 캠핑을 떠났다.

날씨가 얼마나 기가 막힌 지 말 그대로 예술이었다.

구름은 흘러가고, 코 끝에 느껴지는 가을 냄새, 귀 끝을 간지럽히는 바람과 얼굴에 드리운 따가운 햇볕은 계절을 느끼라고 하는 거 같았다.


온이와 유는 다섯 살 인생 처음으로 냇가에서 물놀이를 했다.

허리를 굽혀 코 끝이 냇물에 닿을락 말락 한 자세로 돌을 들어 다슬기를 줍고, 조물조물 떡밥을 물에 적셔 동글동글하게 빚어 모래무지도 잡았다.

턱이 달달 떨리면서도 잠자리채를 물속에서 이리저리 휘저으며 물고기를 쫓았다.

아쿠아슈즈는 가지런히 벗어 돌 위에 얹고 돌 틈 사이로 쏟아지는 물길에 퐁당퐁당 물장구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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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태어나서 처음으로 냇가 온 거죠?”


“응”


“엄마 나 여기서 평생 살고 싶어요.”


평생. 냇가가 있는 이 곳에서 살고 싶다는 아들의 말에 아빠가 신이 났다.


“우리 그럼 이런 데서 살까? 냇가에서 매일 물고기도 잡고, 다슬기도 잡고, 청개구리도 잡을 수 있고 또 마당에 잔디밭이 있으니까 곤충도 매일 잡을 수 있을 거야.”


“우와 너무 좋아요.”


“대신 장난감 같은 건 없어. 왜냐하면 여기는 시골이니까. 오는 동안 마트도 토이저러스도 없었잖아.”


“괜찮아요. 냇가 가서 놀면 되죠”


“그렇지? 여름에는 냇가에서 오늘처럼 놀면 되고, 겨울에는 냇가에서 썰매도 탈 수 있을 거야. 생각만 해도 너무 신나겠지?”


“아빠 진짜 행복할 거 같아요.”


전투적으로 다슬기를 잡던 이들 부자는 한 껏 신이 난 나머지 너무 앞서 나가고 있었다. 어디쯤에서 맥을 끊어줘야 할지, 그 흐름을 타고 같이 브레이크 없는 대화를 이어가야 할지.. 부자지간의 허무맹랑한 대화에 엄마는 길을 잃었다.


점심으로 허기만 채우고 물놀이를 했으니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여간해서는 배고프단 말을 하지도 않는 온이와 유는 물놀이를 하다 말고 졸라댔다.


“엄마 배고파요. 밥 먹을래요. 밥 먹고 싶어요.”


땀 흘려 텐트 치고 지치게 물놀이까지 했으니 노곤한 몸뚱이는 눕고자 하는데 당장에 밥을 내놓으라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먹는 걸로 항상 애를 먹이는 두 녀석이 밥 먹고 싶다 아우성이니 엄마는 마음이 급해졌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 듯 먹고 싶다고 할 때 빨리 제대로 된 밥을 먹여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된장찌개에 들어갈 야채를 다듬으러 개수대로 간 아빠는 육수가 끓고 있는데도 오지 않았다.

말 그대로 함흥차사.


“유야. 아빠 뭐하시는지 갔다 올 수 있겠어?”


말끝 나기 무섭게 “아빠”하며 달려간 유도 아빠도 오지 않았다. 결국 엄마는 얼굴에 짜증을 담고 개수대로 갔다.

“다 끓었는데 왜 이렇게 안 와?”


아빠는 입도 떼기 전에 유가 말했다.

“엄마, 아빠가 힘들게 하고 있는데 자꾸만 투정 부리면 어떡해요. 아빠가 얼마나 힘들겠어요?”

아빠의 얼굴에는 회심의 미소가 가득했고, 자그마한 아들이 잘잘못을 가릴 만큼 자랐단 사실에 놀라다 못해 아찔했던 나는 5G보다도 빠른 사과를 했다.


"여보 미안해요. 그리고 유야, 엄마가 다정하게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엄마가 잘못한 거 같아."


"괜찮아요. 다음에 안 그러면 되니까."


물놀이하랴, 청개구리 잡으러 뛰어다니랴, 메뚜기 방아깨비 잡느라 풀 속을 헤집고 다니느라 지쳤던 온이와 유는 금방이라도 잘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럼에도 망에서 장작을 꺼내 예쁘게 탑을 쌓으며 불멍을 준비하고 있었다. 불멍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니 치우는 것은 잠시 미뤄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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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옆 텐트에 있던 여덟 살 형아는 풀 숲에 들어가 반딧불이를 잡아왔다. 그리고 온이와 유에게 달려와 반딧불이를 잡아왔다며 오므렸던 손을 폈다. 그러자 반딧불이는 깜깜한 하늘에 초록빛을 내며 가볍게 날아갔다.

아빠도 엄마도 너희도 형아 덕분에 반딧불이 박물관에서나 보던 것을 실제로 보고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겨우 겨우 졸음을 참아가며 버티던 온이와 유는 잠이 깬 듯 반딧불이를 잡으러 숲으로 달려가려 했다.

어르고 달래 의자에 앉혀놓고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온이와 유는 온데간데없고 아빠는 한 손에는 맥주캔을 다른 한 손에는 집게를 들고 장작을 뒤적이며 불씨를 키우고 있었다.


"여보 애들은?"


"저기"


온이와 유는 작은 간이의자까지 챙겨 처음 본 형아들 틈에 앉아 영화를 보고 있었다. 데려다 놓으면 가고, 다시 데리러 가니 다 보고 갈 테니 먼저 돌아가라고 했다.

엄마의 시선이 닿는 곳에서 영화를 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기분이 이상했다. 웃음이 나기도 했고, 헛헛하기도 했다.

마치 어린이집 처음 입소했을 때 금방이라도 데리러 오라는 연락이 올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기다렸던 그때처럼 엄마는 자리를 맴돌다 돌아왔다.

엄마가 화장실만 가도 자지러지게 울던 온이와 유가 어느새 커서 엄마는 너희의 뒷모습을 보고 돌아와 괜히 장작불을 들쑤시며 영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캠핑을 갔는데 연병장을 다녀온 기분이라 그 날의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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