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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잘한기쁨 Sep 24. 2023

주객이 전도되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한지 두 달쯤 되었다.

온이와 유는 아르바이트를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에 환호했고, 아르바이트 목록을 확인하기 무섭게 모든 걸 뒷전으로 미루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집안일은 함께하는 것이고, 노동의 대가로 용돈을 주려 했던 의도와 다르게 녀석들은 돈을 벌기 위해 경쟁적으로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다.

하교 후 현관을 먼저 선점해야 신발 정리를 할 수 있으니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총알처럼 튀어나갔다.

사방에 물감 튀듯 던져져 있던 신발이 가지런해지고 "엄마 50원 주세요."라고 했다.

신발 정리에 성공한 녀석은 오십 원을 손에 쥐고 기쁨과 환희가 얼굴 가득 번졌고, 기회를 놓친 녀석은 아쉬운 탄식을 쏟으며 가방을 벗어 놓고 일거리를 찾았다.


신발 정리를 놓친 녀석은 아침에 보다가 그대로 두고 간 책들을 정리했다. 

가방에서 수저와 물병을 꺼내 싱크대에 얹어 놓았고, 간식 먹고 학원 갈 준비 대신 널브러진 장난감을 정리하고, 집안일에 열을 올렸다. 엄마 입장에서는 주객이 전도되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겠다는 녀석들은 열심히도 집안일을 했고 부지런히 돈을 모았다.

돈을 열심히 모으고 있으니, 그 김에 용돈기입장도 써보기로 했다.

노트를 반으로 잘라 날짜와 입금, 출금, 보유액을 써놓고 쓰는 방법을 알려주자, 칸에 맞추어 흐트러짐 없는 글씨로 또박또박 예쁘게도 썼다.

일기 쓰기는 등 떠밀려한 거 같은데 용돈기입장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백 원, 이백 원 푼돈을 모아 이천육백 원쯤 모였을 때 녀석들은 일확천금을 가진 것처럼 들떴다.

뭐든 다 살 수 있을 것만 같은지, 동전 주머니를 가지고 문방구로 달려갔다.

갖고 싶던 물건을 집어 들었다가 가격표를 보고 내려놓기를 수십 번. 힘들게 모았지만 가지고 있는 돈으로 원하는 것을 살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집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갖고 싶은 물건이 팔릴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참새가 방앗간을 들르듯 매일 출근 도장을 찍었다.

엄마는 문방구 사장님께 '용돈을 모아서 사는 거라 신중한 것 같으니 조금만 이해해 달라고' 부탁했다.

혼자서는 안 되겠는지 둘은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스페이스 큐브가 사고 싶은데. 너는 뭐가 갖고 싶어?"


"어! 나도 그거 갖고 싶어. 근데 너무 비싸서 오래 걸릴 거 같아."


"그럼 우리 돈을 합쳐서 살까?"


"오. 좋다. 그렇게 하자"

삐걱대고 다툴 줄 알았는데, 기대하지 못한 타협이 이뤄지고 있다는 게 그저 놀라웠다.


레고나 건담매장을 가면 돈의 가치를 모르는 아이들에게 적정한 가격선을 제시하는 게 어려웠다. 그래서 갖고 싶은 거 우선으로 샀었고 못 가져서 아쉬웠던 날은 없었다.

기쁘게 사고 돌아오는 길에 늘 '이게 맞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아르바이트를 하고부터는 백 원을 벌기 위해서 집안을 해야 하고 천 원을 버는 게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선물로 받은 물건들은 하루 이틀 가지고 놀다가 장난감 통에 들어가면 찾지도 않더니, 스스로 산 삼천 원짜리 불빛이 나오는 총은 고장 날까 봐 애지중지했다.

아르바이트 몇 번을 해야지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는지 계산도 하게 되었고, 스스로 돈을 벌어서 샀다는 뿌듯함도 알게 되었다.

마트에서 마구 집어 대던 물건의 가격표를 확인하고 나름의 가격비교도 하게 되었다.

문방구 앞에서 하던 뽑기는 늘 하고 싶은 거지만, 그중에 몇 번은 참을 수도 있게 되었다.

스스로 하는 습관과 자연스러운 집안일 참여가 목표였는데 이만하면 꽤 괜찮은 결과인 것 같다.

지금도 이미 엄마가 아홉 살 때랑 비교하면 훨씬 나은 너희들이지만, 언제나 엄마보다 더 나은 어른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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