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다(salida)
"시작 전에 자기소개를 깜빡했네요. 돌아가면서 자신의 닉네임 소개하고 인사 부탁드립니다."
서로 파트너를 마주하려는 순간, 밀러가 진행을 잠시 멈추고 말했다.
처음 느꼈던 긴장감에 비해 이제는 조금 편안해질 만했지만, 갑작스러운 소개 요구에 다시 약간의 불편함이 느껴졌다. 커넥션을 시작하기도 전에 먼저 통성명을 해야 한다니, 어쩐지 그 타이밍이 미묘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밀러는 마치 아주 중요한 절차라도 되는 것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진행을 이어갔다.
사람들은 돌아가며 각자 자신의 닉네임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가명을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탱고라는 세계에서는 본명을 감추고 새로운 자아를 입는 것이 하나의 규칙처럼 보였다. 나도 그들에 맞춰 준비한 이름을 말했다.
"반갑습니다. 데이빗입니다."
그녀의 작고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잠시 잊고 있던 누군가의 모습이 스치듯 내 머릿속을 지나갔다. 잊고 싶은 기억이 억지로 떠오르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생각을 쫓아내듯 박수를 쳤다. 스스로에게 집중하려고 박수 소리를 크게 내면서, 머릿속의 무거운 감정들이 그 소리 속에 묻히기를 바랐다.
그 짧은 순간이 지나자 자기소개가 끝나 있었다. 밀러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수업을 이어갔다. 그는 앞에 선 상대방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연습 아브라소(Abrazo)를 해보라고 했다. 나는 서둘러 엘리아나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강습생들은 그들을 따라 상대방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서로 간의 간격을 만들었다. 둘 사이의 간격이 무겁게 느껴졌다.
"탱고에서는 이 간격이 중요해요. 너무 가까워서도, 너무 멀어서도 안 됩니다. 이 간격이 춤을 아름답게 만들고, 서로를 존중하게 하는 거죠. 상대방의 축을 건드리지 않도록, 이 거리감 속에서 춤을 유지하는 법을 익히셔야 해요."
"이제 상대방의 무게중심을 느껴보세요. 탱고의 기본은 무게중심입니다. 한쪽 발에만 무게를 실어야 하고, 그 무게가 움직임에 따라 변할 때 상대방과 함께 흐름을 맞춰야 해요. 혼자서 추는 춤이 아니니까, 상대방의 중심을 읽어야 합니다."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스텝이 부드러워지고, 나는 비로소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엘리아나와 나는 그 짧은 순간 동안 완벽한 호흡을 맞춘 것 같았다.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조이와 함께 스텝 시연에 나섰다. 마치 그들의 몸짓에 맞춰 음악이 흐르는 것처럼, 두 사람은 여섯 발자국을 부드럽게 이어갔다. 뒤로 한 걸음, 옆으로 한 걸음, 앞으로 두 걸음, 다시 옆으로 한 걸음. 그들의 발은 정확하고도 유려하게 공간을 가로지르며 식스 살리다 스텝의 기본을 완성했다. 밀러는 자연스럽게 머리를 넘기며 미소를 지었다.
"굉장히 쉽죠. 자, 이제 따라 해보겠습니다. 파트너 체인지 해주시고요, 남성분들은 반시계 방향으로 움직여 주세요."
이제 막 파트너와의 호흡에 익숙해졌는데, 다시 자리를 옮기라고 하니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밀러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아쉬움을 담아 손바닥을 가볍게 부딪치며 그라시아스, 라고 인사한 후 자리를 옮겼다. 새로운 파트너에게 인사를 건네고 아브라소를 잡았지만, 처음 파트너와의 자연스러운 연결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 밀려오는 잡념이 있었지만, 잡념을 밀어내고 밀러와 조이의 말에 집중하려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