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lida 6
자아가 강했던 걸까. 늘 웬만한 일들은 다 겪어본 것 같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대학원을 박차고 나와 새로운 길을 선택했을 때, 그때도 아쉬움보다는 반발심이 더 컸다. 이 길 아니면 내가 먹고살지 못할 것 같아?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고, 선배와 후배들에게는 두고 보라, 하며 치기 어린 말을 남겼다. 그 말이 얼마나 철없는 것이었는지, 사회에 나와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치이며, 숨조차 쉬기 힘들었던 순간들은, 세상이 얼마나 만만치 않은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어쩌면 직장을 구한 것만으로도 다행일지 모른다. 아는 지인이 운영하는 출판사 덕에 취업할 수 있었던 건 정말 운이 좋았다. 나는 그 생각을 곱씹으며, 인파를 헤치고 지하철에서 내려 회사로 향했다.
사회에 나와 깨달은 가장 큰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매일 전쟁 같은 삶을 산다는 것이었다. 아침 출근길은 그야말로 매일 반복되는 전쟁터였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경쟁 없이 공부하고 기도하던 대학 시절이 종종 그리워지곤 했다. 하지만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때의 ‘나’가 그리운 것이지, 그 시절의 사람들이 그리운 건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득 그녀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녀는 남았고, 나는 떠날 수밖에 없었다. 연락이 끊긴 지 오래였고, 모든 수단이 막혔으니 그녀와의 연결은 더 이상 불가능했다. 연락할 수 없기에 더 궁금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억지로 무언가를 시도하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창피를 당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쩌면 내 사랑이 그 정도였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 한구석이 씁쓸했다. 이런저런 생각에 몰두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사내 메신저를 확인했다. 새로운 업무들이 쌓여 있었고, 그중 눈에 띄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아는 사람의 출판 소식이었다. 김수호 바오로 신부님. 환한 미소로 나를 반기던 그 얼굴이 떠올랐다. 신부님과는 젊은 성직자 모임에서 처음 만났고, 많은 대화를 나누던 사이였다. 세상을 위한 사명을 고민하던 그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나는 먹고살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신부님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담당자를 바꿔달라고 요청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부님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해명을 하는 것도 이제는 지긋지긋했다. 만약 그가 이 소식을 알게 된다면,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을 것 같았다.
결심을 굳히고 사장실로 향했다. 서로의 사정을 아는 사장이었기에, 나를 받아줬으면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게 맞지 않나 싶었다. 사장실이 오늘따라 유독 멀게 느껴졌다. 직원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애써 무시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사장실에 도착하니 사장은 통화 중이었다. 유리문 너머로 그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잠시 후 그도 나를 인식하고 눈이 마주쳤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돌렸다. 그 태도에 기분이 상했지만, 참지 못하고 사장실 문을 두드렸다. 그가 나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