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lida 7
그는 잠시 손을 들어 보이며 나를 진정시키려 했다. 전화를 하고 있던 상황이라 나도 더 이상의 행동을 하지 않고 그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끝났고, 그가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문을 열며 그를 향해 소리쳤다.
"사장님, 이건 아니잖아요. 뻔히 제 사정을 아시면서 어떻게 이런 일을 맡기실 수 있습니까?"
조금은 흥분된 목소리로 말하자, 지훈은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차근차근 설명해 봐."
"지훈이 형! 형이 날 불러서 여기서 일할 수 있게 해 준 건 고맙게 생각해요. 하지만 이런 일까지 맡길 줄은 몰랐어요. 제가 예전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할 거라 생각하셨나요? 저 말고도 이 일을 맡을 사람이 많잖아요. 왜 하필 접니까?"
"아진아, 네가 지금 가릴 처지야? 그리고 회사에선 형이라고 부르지 말랬지? 나도 이 말하고 싶지 않다. 목소리 좀 낮춰."
지훈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아니, 형이 미리 정리해 주셨으면 이런 소리 안 하잖아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더 큰 목소리로 그에게 대꾸했다.
"일단 앉아 봐, 설명해 줄 테니까."
지훈은 진정하라는 듯 크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의 제스처에 나는 억지로 자리에 앉았다. 지훈이 물 한 잔을 따라줬고, 그걸 받아 한 모금 마셨다. 차가운 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약간 진정이 되었다. 지훈은 내가 좀 차분해진 걸 확인하고 말을 이었다.
"아진아, 나도 네 사정을 모르는 건 아니야. 하지만 계속 이렇게 피할 수는 없잖아. 세상은 좁아, 만나기 싫다고 안 만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리고 우리 회사에서 종교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누구야? 너랑 나지. 그러니까 이런 프로젝트는 당연히 네가 맡아야지. 직장 생활이라는 게 원래 이런 거야. 그리고 애초에 이런 식으로 사장실에 들이닥치는 게 일반적인 건 아니야. 네가 맡아. 이건 네가 할 일이야."
더 이상의 반론은 없었다. 몇 번 더 토를 달고 싶었지만, 지훈은 들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결국 나는 알겠습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사장실을 나왔다. 그에게 신세를 진 상황에서 더 이상 뭘 요구하는 것도 웃긴 일이었고, 그만두겠다고 할 수도 없었다. 순간적인 감정에 휘둘려 저지른 일이었는데, 막상 사무실로 돌아오자 직원들의 눈초리가 신경 쓰였다. 서둘러 화장실로 향해 찬물로 얼굴을 씻고 거울을 바라봤다. 눈이 살짝 충혈된 게 보였다.
물기를 닦아내고 자리로 돌아와 기획서를 다시 펼쳤다. 젊은 종교인들의 고민을 다룬 에세이 기획서였다. 그 안에서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다. 김수호 바오로 신부, 그리고 자윤 교무. 기획서를 들여다보며 머리가 뜨거워졌다. 이게 말이 되는 걸까? 인연이란 게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나는 것도 아니고, 만나기 싫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만날 운명이었다면, 애초에 헤어지지 않았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냥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때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오늘 저녁 탱고 수업 알림이었다.
"생각이 많을 때는 몸을 움직이는 게 답이지."
혼잣말을 하며, 다시 일에 집중했다. 하지만 이미 머릿속에는 온통 탱고 생각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