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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에서 술을 마신다는 건

여행자에게만 허락되는 불법의 짜릿함

by 사십리터

혹시 당신이 발리에 가고 싶은 이유가 아침에 눈을 떠서 술을 마시고, 야자수 아래서 술을 마시고, 잠들기 전까지 술을 마시는 음주 생활을 꿈꾸기 때문이라면...

지금 당장 목적지를 바꾸는 게 좋다.

발리의 신께선 인간에게 술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때문에 발리에서는 신의 허락을 받지 못한 술을 구하기 위해서는 조금 큰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술값이 비싸다는 뜻이다.

한 끼 밥값은 천 원이지만 술 한 병이 만 원이 넘을 수 있는 곳, 다른 물가는 다 저렴하지만 술값만큼은 한국과 차이가 없는 곳이 발리다.

20240703_141101.jpg 발리 여행 전에는 공항과 비행기에서 술을 충분히 마시도록 하자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보다는 저렴하게 술을 마실 수 있겠지만 발리 물가가 싸다는 말만 듣고 온 사람이 가격을 보면 당황할 수 있다.

나 또한 메뉴판에서 홀로 튀는 술값을 보고 있노라면 500원에 맥주를 마시던 베트남이 그리워졌다.

20240720_122400.jpg 술이 아닌 다른 것에 취해도 봤지만 술과 같지는 않다

사실 종교가 있는 국가에서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자체가 여행자의 특권이다.

원래는 금지된 일을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정확히는 종교지만) 거리낌 없이 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바로 그 부분이 짜릿함을 한층 더해준다.

나는 지금 일상을 떠났고, 일탈을 할 것이다.

그런데 그건 마약이나 약물같이 범죄는 아니다.

죄는 아니지만 금지된 행위를 하는 일탈에서 오는 미묘한 만족감.

해도 되는 것도 아니고, 안 되는 것도 아닌데 할 수 있는 일.

이 복잡 미묘한 행위가 흥미롭다.

내 선을 지키면서 하는 일탈.

도덕의 상대성을 겨우 술 한 잔에서 느껴버린다.

차마 진짜 나쁜 짓은 못 하고 사는 나 같은 쫄보에게 그 사실은 퍽 재미있는 지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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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발리에선 술이 흔하다. 길거리 간이 주유소에서 술병에 기름을 담아 팔 만큼...

사실 발리에서 술을 마시는 건 별로 대단하거나 은밀한 일이 아니다.

여행자가 발리에서 대낮에 맥주를 마시는 건 발리 경제에 도움 되는 일이기에 얼마든지 하시라며 권장받는 일이다.

종교를 뛰어넘는 신이 자본주의니까.

심지어 빈땅이라는 발리의 술이 있지 않은가.

심지어 내가 술을 처음 마시는 것도 아니다.

한국에선 술 때문에 겪은 에피소드가 수십 개는 있는 사람이다.

그때와 똑같은 일을 발리에서 하면 신의 규율을 어긴 규제 대상이 된다.

20240710_171028.jpg 하지만 발리의 바다를 보면서 맥주 한 잔 마시지 못한다면 내게는 그게 더 큰 죄악으로 느껴진다

반대로 한국에선 안 되지만 밖에선 되는 일탈도 있다.

예를 들면 마약.

하지만 아무리 된다고 해도 내가 방콕 한복판 카페에서 대마를 피울 일은 없을 것이다.

내 안의 대법관이 그건 안 된다고 할 테니까.

도대체 그 대법관은 무슨 원리로 움직이는 걸까.

내가 정말 해선 안 되는 일은 뭘까.

어쩌면 지금껏 내가 선이라고 믿었던 일이 악이었던 적은 없을까.

겨우 몇천 원짜리 맥주를 마시다 알딸딸한 기분이 들었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계절이 반대인 섬에서 나는 내 편견과 다른 세상을 만났고, 사소한 일에서 나의 사됨을 돌아보게 되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서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그런 것이 여행이라면 발리는 참 좋은 여행지였다.

20240725_102019.jpg 하지만 역시 빈땅과 함께하는 발리가 가장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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