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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육아를 도피처로 삼았다

예상치 못한 나 자신과의 대면

by 준규네 홈스쿨


스물여덟이던 가을,

나는 안락한 가정의 판타지를 품고, 온갖 기대를 하며 결혼을 했는지도 모른다. 내 바람막이가 되어주지 못하는 힘없는 부모 대신 남편이라는 제2의 존재에게 그 역할을 한없이 기대하며 보호자와 연인으로서의 역할을 모두 바랐던 것 같다.


아이가 없던 일 년여간은 바쁜 직장생활에 치여 늘 야근과 철야를 하는 남편을 보며 수없이 토라졌고 실망했다. 나는 칼퇴근을 하고 와서 남편과의 시간을 기대했지만 그는 야근 업무, 회식으로 늘 바빴다. 주말이면 어디 나들이라도 데려가겠지 싶어 은근히 기대해 보았지만 주말 오후, 두시가 넘도록 피곤함에 절어 자고 있는 남편을 보며 수없이 좌절해야만 했다. 남편의 직장생활을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은 씁쓸했다. 결혼하면 달라진다는 남편 모습이 이런 거구나, 세속적인 방식으로 남편을 깎아내리고 기대에 못 미치는 모습에 삐딱해질 대로 비뚤어져 있었다.


그러던 중 임신을 하고 임신 초기, 몸상태가 좋지 않던 차에 직장 스트레스와 맞물리며 더 이상 출근할 수 없는 몸상태가 되었고 결국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좋은 핑계를 대고 직장을 나왔다. 입덧이 심해서 몸무게가 15킬로그램이나 빠질 정도였으니 마치 좀비 같은 얼굴로 늘 누워있어야 했고 겨우겨우 출산을 했다.


먼짓 밥을 드시며 공장 노동자로 30년 넘게 일한 아빠. 평생을 살림집에 연결된 미용실 한 칸에서 자식을 등에 업고 손님 머리를 하며 딸 넷을 힘겹게 키운 엄마. 그들을 보며 나는 그저 자식을 낳아 기른다는 것은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공부시키면 되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그게 전부라고만 착각했다. 상상도 못 한 크나큰 산이 기다리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출산 후 우연히 선물 받은 가벼운 육아 책을 시작으로 육아 관련서들을 하나둘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읽으면 읽을수록, 아이가 조금씩 자랄수록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내가 생각한 만큼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란 것을 조금씩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서 막대한 영향을 받고 자랄, 어쩌면 이미 어마 무시한 유전자의 힘을 복제하고 태어난 한 생명체를 사람으로 완성해 나가기 위한 부담스럽기까지 한 시간. 아이 평생에 걸쳐 영향을 미칠 결정적인 이 시간의 무게는, 매 순간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로 인해 버거운 줄 알면서도 아득하게 잊어버리곤 하는 생경한 경험이었다. 마치 햇살이 가득히 비치는 진흙밭에 서있는 것 같았다. 이미 질퍽한 바닥에 한 발을 뗀 이상 더 깊이 빠져들어 허우적대기 전에 다음 걸음을 부지런히 내디뎌야 하는 과정이었다.


처음엔 책에 나온 대로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흉내 내 보기도 하고, 지친 날은 나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엄마라는 무게를 제대로 감지조차 못하며 중심잡기에 허덕여야만 했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책에서 나온 것과 똑같이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고, 한다고 해도 아이의 반응은 늘 거칠었고 당황스러운 순간이 훨씬 더 많았다. 자식을 키운다는 것은 매 순간 날 좌절시킬 때가 더 많았고, 매일매일 정신과 육체를 혹독하게 몰아세우며 결코 중간에 포기할 수 없는 덫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내 부모는 화가 많은 사람들이었고, 나 또한 사소한 일에도 화를 벌컥 벌컥 내는 사람이었다. 어느새 아이의 모습에서 내가 조금씩 보였다. 두려웠다. 내가 물려받은 것들을 안 좋은 줄 알면서도 고스란히 내 아이에게 물려줄 수는 없었다.


내 아이를 키우며 예상치 못했던 것 중 하나는, 전혀 존재를 감지하지 못했던 내 안의 미성숙하고 상처 받은 꼬마가 어김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나를 어지럽힌다는 점이었다. 마음속 깊이 꽁꽁 숨겨놓고 입 밖으로 차마 표현하지 못했던 내 안의 부끄러운 마음들이 육아를 하며 불쑥불쑥 나타났다. 심지어 아빠 역할에 난감해하는 서툰 남편을 보면서는 내 엄마 아빠의 모습이 투영되어 엉망진창일 때가 더 많았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힘들다고 해서 그만둘 수 없다는 것이었다. 부족하고 내 눈에 차지 않는 부족한 부모로부터 도망쳐, 나만의 완벽한 가정을 꾸렸다고 생각했지만 속은 텅 비어있었다. 차마 내 부모에게 말하지 못하고 아닌 척 숨겨뒀던 마음들은 내 아이를 통해, 그리고 남편을 통해 부메랑이 되어 매 순간 나를 후려쳤다. 내 안에 숨어있던 상처들을 매일매일 마주해야만 했다.


자기 의견을 존중받고 자란 아이는 너무나 해맑은 모습으로 물었다. "엄마, 우리는 왜 부자가 아닌 거예요?", "엄마, 왜 아빠는 다른 사람처럼 사장님이 아니에요?" "엄마, 우리 집은 왜 이렇게 작아요?"

나는 그저 마음속으로 숨기며 내 부모에게 단 한 번도 말하지 못했고 때론 원망으로까지 키웠던 그 마음들을, 내 아이는 그저 다른 것으로 여기며 아무렇지 않게 물어오며 매 순간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그리고 그런 물음들은 나로 하여금 상처와 분노심 가득한 나의 어린 시절 꼬마를 들춰내 숨겨뒀던 마음들을 대면하게 만들었다. 숨기느라 내 안에서 꼬여있는 줄도 몰랐던 마음들을 풀어낼 기회일 수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이름 모를 감정들로 휘청거리기 일쑤였다.


결국 내 아이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온전한 나를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조금씩 배웠다. 평생 내 발목에 무겁게 달려있는 나를 저 깊은 심연으로 끌어내리는 그 무엇. 그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대면하고, 인정하고, 때로는 가벼워지기 위해 노력하기도 해야 했고 때로는 떨쳐버리기 위해서 용기를 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렇게 나를 건강한 인간으로 온전히 세우지 못한다면 내 아이는 결국 나의 이 시시하고 비겁한 모습 그대로를 보고 배우며 살 것 같다는 두려움마저 들었다.


도피하듯 안식처를 찾아 시작한 결혼 생활, 결혼했으니 당연하다 생각하며 얼결에 발을 들인 육아, 이 모든 것은 온전한 나로 단단하게 서기 전까지는 그 무엇도 오롯이 누릴 수 없는 것들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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