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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규네 홈스쿨 Apr 01. 2021

3세 신화에 홀려 내 영혼을 기꺼이 갈아 넣었다

나를 버리고 아이를 선택하는 엄마로...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면 온갖 유혹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얼핏 보면 별 차이 없어 보이는 기차 장난감 하나도 원목의 질과 샌딩 상태, 페인팅 마감 수준, 브랜드에 따라서도 몇 천 원에서 몇만 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뭘 그리 까다롭냐 하겠지만 환경 호르몬 팍팍 나올 것 같은 페인트 냄새가 진동하는 몇 천 원짜리 기차를 사 주느니 안 사주고 말겠다는 소리가 나오며 결국 몇 번을 미루고 미루다 몇 만 원짜리 사치스러운 기차 장난감을 손에 쥐어주게 되는 게 부모라는 사람들이다. 


아이 지능개발에 좋다는 장난감 및 교구들이 넘쳐나니 내 아이도 다 누리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끊임없이 살랑거리고,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교구들만 있으면 내 아이가 영재를 넘어 천재가 될 것 같은 마음마저 든다. 동화책마저도 스토리와 삽화는 물론이거니와 종이 재질과 마감 상태에 따라서도 금액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그런 것엔 관심조차 없었지만 아이를 막상 낳고 보니 '이왕이면' 하는 말로 타협을 보게 되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중 고등학교 때 공부시키겠다고 과외시키고, 아이 고생시키느니 차라리 지금 열심히 오감 발달과 지능 개발에 좋다는 것에 투자하겠다며, 열심히 책과 교구들을 사들이는 열혈 엄마가 나이기도 했다. 


육아서를 열심히 읽는 만큼 값 비싼 교구들을 열심히 사들이게 되는 이유가 있었으니, 육아서들을 읽으면 누구나 한 번쯤 접하게 되는 '3세의 기적'에 관한 정보였다. 이는 3세 이전 아이들의 뇌에서 시냅스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만 3세 무렵, 뇌 발달의 대부분이 완성된다는 일종의 뇌과학 담론이었다. 이를 매개로 영유아 지능개발 교재 및 교구업체에서는 유아기 투자 가치가 몇십 배의 효과가 있을 거라는 홍보 문구들을 내세워 부모들을 조급하게 만들고 그들의 지갑을 기꺼이 열게 했다. 


OECD가 2007년 발표한 <Understanding the Brain: the Birth of a Learning Science>는 뇌에 관한 정보들이 남용되고 오용되는 것을 경고하며 말하고 있다. 실제로 생후 1년에 시냅스의 밀도는 최고에 이르고, 3~4세 이후 급격히 감소하는 양상을 보이지만 영유아기에 형성된 신경세포는 유전적 요인과 후천적 자극을 통해 시냅스가 강화되기도 하고 약화되기도 하며 이러한 재배열 과정, 패턴화, 네트워크를 끊임없이 형성하며 평생에 걸쳐 뇌가 발달한다는 점이다.

폭발적인 시냅스 생성과 활성화에 대한 혹할 만한 연구 자료들로 인해 우리 부모들은 3세 이전에 어떻게든 우리 아이의 뇌를 똑똑한 바탕이 되도록 만들어 주기 위해 돈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물론 나 또한 그중에 하나였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잠재력, 뇌의 발달 정도는 사실 정량적인 데이터로 수치화해서 측정하기 어려운 분야라 그 추상성은 무한한 가능성으로 대체될 때도 많다. 아이 어린 시절 적극적인 투자와  오감발달을 향한 나의 기꺼운 노력들이 과연 얼마나 아이에게 영향을 미쳤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어린아이들이 가진 인지적 가능성과 무궁무진함은 스펀지에 물이 흡수되듯 엄청난 영역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 시기를 전문가들이 중요한 시기라고, 인생의 결정적 시기라고 입을 모아 말하는 데는 사실 더 큰 이유가 있다. 


인지적인 것과 더불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사회성 등 한 사람의 인격을 형성함에 매우 중요한 시기로, 이때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사실 비싼 교구와 책을 통한 지능 발달이 아니라 아이의 정서적인 부분이라는 점이다.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몸을 비비며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자신을 세상에서 든든히 지켜줄 보호자로부터 안정감을 느낀다.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과 몸짓들을 익히고, 아이 스스로도 양육자와의 단단한 유대관계를 통해 자신의 다양한 감정들을 표현하고 그로 인한 피드백들을 경험하는 아주 중요한 시기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실은 교육 시장의 홍보에 휘둘려 오감발달을 위한 교구, 지능발달을 위한 첫걸음을 떼기 위한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아이와 엄마와의 따뜻한 정서 교감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적인 시기의 정서적 경험의 영역들을 발달시키지 못한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에서 중요한 정서적 결핍들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 부단히 노력해도 회복되지 않는 그 결정적인 시기의 큰 멍에를 안고...


물론 나도 집에서 아기와 함께 뒹굴거리고, 눈 맞추고, 공원 산책하고, 몸으로 노는 것들도 많이 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림책도 많이 읽어 주었다. 인지적인 부분에서도 열성적이었던 엄마였기 때문에 3세 뇌 발달의 인지적인 부분에만 신경을 썼던 것은 아닌지 돌이켜보며 그 우매함에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던 적도 있었다.


내 아이는 블록을 쌓다가 뜻대로 잘 되지 않으면 측은하게 울어버리는 성격이 아니라, 화를 내고 블록을 집어던지며 감정 통제가 잘 안 되는 때가 더 많았던 아이였다. 그럴 때면 아이를 진심으로 이해하며 감정을 읽어주기보다는 인지적인 가이드로 행동을 훈육하게 될 때가 훨씬 더 많았다. 잘 안될 수도 있는데, 뭘 그렇게 화를 내냐는 그런 마음이 컸다. 결국 정서적인 공감과 지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놓칠 때가 더 많았다. 속상한데 우는 게 아니라 화를 내고 있는 아이를 보며 같이 화날 때가 더 많았다. '에고, 잘 안돼서 속상했어~' 하며 진심으로 공감해주기 보다는 그저 메뉴얼대로 아이가 행동하길 바랐다. 


그저 숫자 하나 읽을 줄 아는 것에 박수 한 번을 더 쳐 주는 엄마였고, 내 말에 순순히 따라줄 때 더 좋은 엄마의 리액션을 보여주는 그저 그런 미성숙한 엄마였다.


결국 아이들의 3세 이전, 뇌 발달의 결정적인 시기 담론의 초점은 정서적인 부분이 훨씬 큰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놓치는 경우가 더 많다. 엄마의 불안감을 상업적으로 노린 온갖 상품들로 인해 엄마들은 좋은 교구를 사줘야 아이 두뇌 발달에 더 좋을 것 같고, 수학 잘하는 아이의 밭을 만들어 놓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을 품게 된다. 그렇게 아이를 향한 엄마의 탐욕스러운 마음을 들켜버린 탓에 우리 아이들은 엄마가 손뼉 치고 감탄해 마지않는 모습에 영문도 모른 채 기뻐하며 어려운 책을 읽어내고, 숫자를 배우고, 한글을 배우려 한다. 어린 인생에서 다소 부담스럽지만 영예로운 시간들을 보내기 위해 내 아이도 애써야 했던 시기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3세 신화'에 홀려 내가 그동안 대학 공부까지 하고 이후 노력해왔던 경력들은 홀딱 잊어버리고, 아이를 위한다는 명분과 오로지 아이를 잘 키워보겠다는 일념으로 똘똘 뭉친 엄마였다. 그렇게 진짜 전업주부가 되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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