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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규네 홈스쿨 Oct 12. 2020

수동적이고 부정적으로 변한 아이, 무엇이 문제일까?

준규네 홈스쿨링 이야기 9


상처받은 마음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


홈스쿨링을 시작하고 아이의 공부를 도와주면서부터 그동안 보이지 않던 문제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준규와 공부 계획을 세우며 그 래도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 과정들은 최소한의 수업이라 여겨 공부하기로 결정했었다. 하지만 준규는 수학 교과서를 펼칠 때마다 이걸 왜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화를 냈다.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홈스쿨링을 시작하고 몇 달간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했다.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 취학 전 아이는 호기심이 많아 수많은 질문을 통해 지적 호기심을 채우느라 바쁜 하루를 보냈다. 내 기억속의 아이는 그랬다. 그리고 나는 그 기억 속 아이의 모습을 기대하며 그 시간에 멈춰 있었던 것이다. 아이를 좋은 학교에 보냈고, 그것으로 내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생각하며 모든 것들을 학교에 의존하려고 했던 것 같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간 후 보이지 않는 선입견들이 생겼으리라고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던 것이다. 너무나 수동적이고 부정적으로 변해버린 준규를 보며 막막하기도 했고, 어디서부터 도와줘야 하나 답답하기도 했다. 준규에겐 독 빼기★ 의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비로소 준규의 아픈 모습을 보며 준규에게도 그러한 시간이 절실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준규를 변하게 만든 세 가지 

당시 내가 예전과 달라진 준규를 보며 안타까웠던 점들은 다음의 것들이다. 


1│선생님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 

준규는 평소 어떤 상황에 대해 조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분석적인 편이지만, 아이 입을 통해 들은 선생님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충격적이었다. 과학학원을 처음 가던 날, 선생님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관해 아이가 설명해준 내용이다.


준규 :

엄마, 저는 오늘 과학학원 첫 수업이라 반드시 모범생처럼 보여야 해요. 제가 학교를 다니며 터득한 중요한 점이 있는데, 선생님이란 존재는 학기 초에 성 립된 아이들에 대한 편견을 절대 바꾸지 않아요. 처음에 만들어놓은 이미지를 가지고 1년 내내 아이들을 판단하고 지도하는 편이에요. 싸움이 났을 때, 상황에 따라 내가 피해자가 될 수 있는데도 선생님은 학기 초에 각인된 이미지에 따라 모든 것을 결정해요. 벌어진 상황과는 상관없이 선생님에게는 늘 피해자와 가해자가 정해져 있어서 화가 날 때가 참 많았거든요. 그래서 선생님들에게 잘 보이려면 학기 초에 아주 모범생처럼 굴어야 하고, 궁금한 것이 있어도 질문은 절대 과하게 하지 말아야 해요. 그런 행동은 선생님을 성가시게 하는 행동이거든요


그날 이후 아이가 학교 밖에서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이 생겨 수업을 듣게 될 때,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여쭤봐도 되고,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얼마든지 제시해도 돼.”라고 늘 당부를 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아이는 너무나 확고하게도, 선생님께 잘 보이는 것은 ‘그저 입 다물고 아무 말 하지 않는 것’이라는 이상하고도 반박할 수 없는 결론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2│공부는 재미없는 것 

요즘 역사나 과학 강의를 너무 재미있게 해서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유명한 강사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주변에 어른들이 대부분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역사를 이렇게 배웠더라면 역사 과목을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다. 짧게는 12년, 길게는 16년 이상, 기본 교육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배웠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거의 재미없다.’라는 생각이다. 준규 역시 그랬다. 2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교과서를 가지고 공부하는 것에 대한 반감과 공부는 지루하다는 편견이 매우 크게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전에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알아가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 넘쳤던 아이가, 수학 책을 펴는 것만으로도 한숨을 쉬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평소 학교에서 시험을 치는 날은 미션을 수행하는 것 같아서 재미있다고 할 만큼 고정 관념이 없던 아이였다. 신나고 즐겁기만 했던 앎에 대한 방식을 잃은 것만 같아 아쉽고 속상했다. 홈스쿨링을 시작하고 처음 학습하면서 공부하는 시간이 1시간이라면 그중 40분은 아이의 생각을 전환시킬 수 있도록 이야기하는데 더 많은 정성을 들여야 했다.


엄마:

엄마는 준규가 공부를 하거나 책을 보다가 점점 빠져들어 시간이 가는 줄 모를 만큼 재미있는 분야가 생긴다면 굳이 학교 교과서를 가지고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그런 분야가 생긴다면 깊이 알아가는 과정에서 기초적으로 쌓아야 하는 지식들이 다 연결되기 때문에 더욱더 자연스럽고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거든. 다만, 방향이 잘 보이지 않을 때는 그래도 최소한의 시간만큼은 학교에서 친구들이 하고 있는 것에 대해 공부해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그러면서 학교에서처럼 시간을 정해서 하기보다는 준규 혼자 집중력을 가지고 짧은 시간일지라도 효율적으로 해보자고 제안했고, 하루에 1~2시간 정도는 초등학교 과정의 공부들을 조금씩 할 수 있었다. 다행인 것은 수학이나 영어를 제외하고는 책을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그리 어렵지 않게 진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과학처럼 내가 도와주지 못하는 과목들은 학원을 이용하기도 했다. 물론 학교에서 하는 수업이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것 이상의 효과도 있겠지만,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절충하면서 학교의 빈자리를 메워나갔다. 그렇게 우리는 언제, 어떻게, 얼마나 공부할 것인가에 대해 늘 고민하고 이야기하며 준규만의 학교를 꾸려나가고 있다.



3│친구들에 대한 반감 

준규는 사람을 너무나 좋아하는 아이다. 언제나 친구를 만나면 놀 궁리부터 한다. 심지어 사랑방에 외국 손님이 와도 같이 놀 수 있는지부터 물어본다. 그런데 준규가 학교를 그만두고 한동안은 학교 앞을 차로 지날 때면 학교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곤 했었다. 본인에게는 너무도 지옥 같았고, 힘들었던 그 시간들을 떠올리거나 입에 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준규는 친구들과 문제가 생겨서 선생님 앞에 불려 가면, 늘 자기를 문제를 일으킨 사람으로 몰아가며 거짓말을 했던 친구들 때문에 힘들어했다. 물론 내 아이 때문에 힘들어한 다른 아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내 아이도 그리 순하지만은 않고, 져주기만 하는 아이가 아니라는 생각에, 준규가 친구들 때문에 힘들어할 때마다 공감은 하되 반만 믿자고 늘 생각 했다. 다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기 마련이고, 이유가 있겠지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내 아이가 더 배려심 있고, 져주었으면 하고 바란 적도 많았다. 때론 내 마음속에서 그 친구들에 대한 미움이 생겨 따져 묻고 싶고 혼내주고 싶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친구들 사이의 문제이니 자기들끼리 해결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여 그냥 들어주는 것이 최선이라 여겼다. 그런데 그것이 아이에게 큰 상처가 되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아이들의 문제에 대해 선생님의 답은 늘 정해져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던 것이다. 준규가 학교를 마지막으로 가던 날, 담임 선생님은 반 친구들에게 준규를 위해 짧은 편지를 쓰도록 했다. 일종의 롤링페이퍼였다. 가방 두 개에 가득 들어 있는 교과서며 학교에 있던 짐들을 꺼내 정리하다 코팅된 롤링페이퍼를 아이와 함께 보았다. 나는 정성스럽게 쓰인 그 편지들을 읽다가 그만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준규가 그간 내게 수없이 호소했던 친구들과의 문제가 적잖이 적혀 있는 것이었다. 여자 친구들로부터 받은 메시지들은 대부분, 준규가 홈 스쿨링을 하게 된 것을 아쉬워하며 보고 싶을 거라는 글이었다. 준규가 없으면 이제 개그로 웃겨줄 친구가 없어서 아쉽다는 내용들이 많았다. 반면 남자 친구들로부터 받은 페이퍼에는 그 친구들의 고해성사와 같은 사과가 담겨 있었다. 아마도 열 살 친구들에게는 학교를 그만두고 홈스쿨링을 한다는 것이 놀랄 만한 일이었나 보다. 아이들에게는 다소 충격적인 그 상황이 어쩌면 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흔적들이 편지에 보였다. 마지막에라도 친구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이야기해준 것에 감사하자며 준규를 다독였다.


부모라 해도 아이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다 알 수 없기에 아이에게 그러한 일들이 얼마나 상처가 되었는지는 다 헤아릴 수가 없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희미해지기도 하고, 편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 한다. 예상치 못한 어느 날 ‘툭 툭’ 튀어나오는 아이의 상처받은 행동들에 여전히 속상하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이 아이가 커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옆에서 보듬어주고 공감해주는 것일 뿐이다. 나중에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학교에서 힘든 시간을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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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 빼기란, 학교로부터 받은 부정적인 감정이나 경험들을 빼야 하는 행위 또는 그 시간을 말 하는 것으로, 홈스쿨러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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