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불안과 긴장이 살면서 크게 불편한 적은 없었다.
다들 이러고 살겠거니, 누구에게나 여린 부분 하나쯤을 있겠거니 하며 살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술 한잔 하며 취기에 잠들어 버리면 끝나는 일상적인 감정이었다. 여독을 푸는 것처럼, 난 매일 하루가 끝날 때쯤이면 여독을 풀어야 했다. 남들에게는 그저 술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결혼을 하고 나니 내 행동이 별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만 파괴되는 것이 아닌, 그걸 지켜보는 사람도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술 말고, 혼자 삭이는 것 말고 부정적인 감정들을 건강하게 해소하고 싶어졌다. 우연히 한국 예술인 복지재단 사업 중 '예술인 심리상담'이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일단 신청했다.
친구들에게도 속 마음을 잘 터놓지 않아 섭섭하다는 얘기를 듣곤 했는데, 생판 모르는 남한테 어떻게 내 얘기를 해야 할까?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걱정과 의심이 들었지만 일단 한번 받아보기로 했다. 별로면 안 하면 되지 않나?라는 생각으로 첫 상담을 받게 되었다.
생각보다 괜찮았다. 오히려 나랑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라 생각하니 속 마음을 터 놓기가 훨씬 편했다. 남들에게 얘기하지 못했던 일들, 괜찮은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던 예전 상처들, 나도 알 수 없는 아리송한 감정들까지 조금씩 꺼낼 수 있게 되었다. 입 밖으로 뱉어내니 별일 아니었던 것도 있었고, 상담사님께서 나보다 더 분개하실 만큼 억울한 일도 있었다. 내 입으로 나에 대해 얘기하고 누군가가 공감해 준다는 것 만으로 짓눌려왔던 어느 한 부분이 활짝 펴진 것 같았다.
나는 요즘 내 생활에 아주 만족한다.
첫 상담 또한 아주 성공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