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a Apr 12. 2022

#7 가벼움

바르셀로나에서 보내는 편지

가볍게 살고 싶어.

가벼운 화장이 대세야.

가벼운 농담.

입이 가벼워서 문제야.

그리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가벼움에 대해 글을 쓰기로 하고는 머릿 속에 떠오른 가벼움에 대한 생각들이다. 

가볍기 그지 없는 얄팍한 생각들.... 


"나는 무얼 잘할까? 나의 달란트는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진정 즐기며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반백년 던지며 살아올 때마다 은근히 하나 믿던 구석은 글쓰기였다. 

나는 글쓰기에 어려움을 느껴본 적이 없었고, 학교 때 내가 받은 대부분의 상은 글짓기 상이었으며, 대학교 때는 친구들이 밤새워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 연애편지를 한번 쑤욱 읽어보고,"이렇게 구질구질해서야 뭐가 되겠냐, 이것들아?" 하고는 순식간에 밤새 썼다는 문구를 싹 지우고 감성을 자극하는 러브레터로 바꿔 주곤했다.  회사에서 아무도 알아 먹지 못하는 감사보고서를 쓸 때도, 동기들이나 선배들은 숫자를 다 정해 놓고도 감사 보고서 문구를 쓰거나 다듬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고 있을 때, 나는 책임 안지고 일 한 티만 내는 문구를 찾아내서 보고서를 후다닥 완성하곤 했다.

그래서, 나는 글 쓰기는 자신있어 하고 생각해왔는데, 한달에 두번 내가 내키는 주제가 아닌 남이 시키는 주제로 따박따박 글을 쓰며 내가 봉착한 문제는 참을 수 없는 생각의 가벼움이었다.

글을 쓰는 사람이 깊은 사색이나 깨닳음 없이 일상의 얕은 생각만을  가벼운 말 몇개로 나불거리는 나의 글쓰기에 참을 수 없는 글쓰기의 가벼움을 느꼈다. 그리하여 글동무 은아씨와 글을 쓰기로 호기있게 약속한 3개월만에 절필하였다. (절필이라기엔 너무도 쓴 것이 없지만, 그 말이 멋있어보이므로 사용키로 했다.)

그리고 야끼소바를 볶을 때도, 새우를 깔 때도, 자전거를 페달을 밟으며 출퇴근을 할 때도, 자기 전에도 가벼움에 대해 생각했다. 가볍게 나불거리기 전에 생각을 차곡차곡 키워보고 싶었다. 생각의 깊이는 좀처럼 깊어지지 않았고, 무거워지지 않았다. 가볍게 수면을 나풀거린다. 생각장애가 생긴 것 같다. 생각이 생각을 낳고, 그것이 다른 생각으로 연결될 때 그 조차 그 수위가 너무 가벼워서 그것을 사색이라고 할 수 없었다. 잡념의 연속이라야 맞는 표현이겠다.


무겁고 힘든 일들이 있었기에 그 무거운 침울함에 생각이 같이 눌려버려 옴싹달싹을 못하는게 아닐까?

서진이의 부활절 방학 동안 쉬면서 다시 생각을 부활 시킬 수 있을꺼야. 다시 글을 쓸 수 있을꺼야. 하고 믿기로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생각은 깊어지지 않았다. 

밀라노에서 꼬모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서진이에게 물었다.

" 서진아,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 뭔지 알아?"

" 어. 아! 배고프다"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을 깊숙히 내려보려 안간힘을 쓰다가 나의 대뇌를 점령해 버린 그 생각을 서진이가 단숨에 말해버렸다.

" 야, 너 정말 맘에 안든다. 왜 그걸 맞추고 그래?"

" 어. 나 엄마랑 너무 오래 살았어. 엄마를 너무 잘알아서 그래"

여행을 하면서 자신에 대해 생각하거나, 자신이 모르는 자신을 발견하거나, 생각을 정리하거나, 새로운 발상들로 가득 채워서 돌아온다는 말은 거짓말 같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생각이 가벼워져서 슬프다. 인풋되는 수많은 정보와 가십거리때문일까, 그 가벼운 정보들이 나의 뇌의 움직임을 멈추게 해버린 것일까. 정말 그런 것일까.


헤르만 헤세가 마지막 노년을 보낸 스위스의 아름다운 호반도시 루가노에 갔다.

작은 식당을 하며 맺은 고마운 인연인 마르코와 로사가 사는 곳이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이 세상에 루가노란 곳이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죽었을 지도 모른다.

부부는 아들의 섭식장애 치료를 위해 우리동네 (사실은 우리집 바로 옆)에 있는 센터에 아이를 맡기고 일주일에 한 번씩 스위스 루가노에서 라 가리가 까지 아이를 보러 왔다. 스위스 프라이빗 뱅크에서 일하는 마르코와 교양과 품위와 겸손함이 온몸에서 묻어나는 로사는 올 때마다 에어컨도 없는 내 작은 가게에 들어와서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가 밥을 먹고 가곤 했다. 내가 꾸무럭거리고 손님들을 계속 기다리게 할 때면, 마르코는 종종 내 손님들에게 냅킨도 가져다 주고, 컵도 내어주곤하였다. 

어쩌다 우리는 그 작고 덥고 복작거리는 가게에서 허물없이 속마음을 터놓게되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더이상 부가 필요도 없는 사람들의 부를 더 많이 만들어 주는 속절없는 일을 하는 그리고 했던 사람으로서의 허망감을, 인생의 궁극의 진리는 가도 가도 의문 투성이라는 공통의 어리석음을, 로사 가족에게 생겼던 불행한 일들을 이야기하며, 그리고 그 해 크리스마스에 하늘로 간 로사의 애완견 사진을 주고 받으며, 인연을 이어갔다.


스위스답게 길 곳곳에 프라이빗 뱅크 들이 즐비했다. 마르코는 이런 곳에서 고객이 가져다 놓은 단위도 가늠하기 힘든 그 숫자를 관리해주며 연금을 탈 수 있는 날까지 버티고 있다고 했다.   

로사는 MIT에서 국비장학생으로 공공정책에 대해 공부하며 석사까지 마쳤지만 eating disorder로 힘들어 하는 아들의 다섯끼를 준비하며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고 있다. 

점심시간에 잠시 우리를 만나러 나온 마르코와 로사가 이탈리안 음식점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마르코는 막 토해놓은 것 처럼 생긴 리조토를 먹었다. 마르코는 맛있게 먹었는데, 나는 그런 비주얼로 음식을 내놓는 사실에 살짝 놀랐다. 우리는 점심을 먹으면서도,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 쬐는 루가노 센터를 걸으면서도, 식당주인과 손님으로 만난 우리가 그 손님이 살고, 일하는 곳에서 다시 함께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며 웃었다. 점심을 먹고, 마르코가 다시 거부들의  숫자관리인으로 돌아가고 우리는 로사와 향긋한 차와 케잌을 먹고 헤어졌다. 로사와 헤어지기 전에 그녀를 꼭 안았는데, 그녀의 눈가가 촉촉했다. 

" 왜 우는거야?"

 왠지 그녀는 내가 다 말하지 않은 나에게 있었던 일을 모두 아는 것일까? 우리는 날씨만큼이나 가볍고 쾌활한 이야기만 나누었는데, 그녀의 눈물은 순식간에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던 슬픔을 건드려 급기야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 안고 눈물을 나누고 헤어졌다.


서진이와 어딜갈까? 생각하다가 어젯밤에 알아 본 곳.

헤르만헤세가 살았던 집. 그의 산책로를 걸어보기로 했다. 

헤르만헤세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서진이가 헤르만 헤세가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가볍기 그지 없는 설명을 해주었다.

헤르만헤세 뮤지움 2층에서 그가 인도에 머물며 집필한 싯타르타의 구절이 인도에서의 사진과 함께 전시되어있었다. 


"싯타르타 앞에는 한 목표, 오직 하나뿐인 목표가 있었으니, 그것은 모든 것을 비우는 일이었다. 갈증으로부터 벗어나고, 소원으로부터 벗어나고, 꿈으로부터 벗어나고, 기쁨과 번뇌로부터 벗어나 자기를 비우는 일이었다. 자기 자신을 멸각하는 것, 자아로부터 벗어나 이제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닌 상태로 되는 것, 마음을 텅 비운 상태에서 평정함을 얻는 것, 자기를 초탈하는 사색을 하는 가운데 경이로움에 마음을 열어 놓는 것, 이것이 그의 목표다. 만약 일체의 자아가 극복되고 사멸된다면, 만약 마음속에 있는 모든 욕망과 모든 충동이 침묵한다면, 틀림없이 궁극적인 것, 그러니까 존재 속에 있는 가장 내밀한 것, 이제 더 이상 자아가 아닌 것, 그 위대한 비밀이 눈뜨게 될 것이었다."


가볍게 살기를 원한다면 갖고 있는 물건만을 비우는 것은 아닌 듯하다.

모든 것을 비우란다. 자아를 찾으라고 난리인데, 자아로부터 벗어나, 마음을 텅 비우란다.

자아까지 비워버릴 때, 궁긍의 것에 대한 비밀에 눈을 뜬다니....

나는 이 궁극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 수만겹의 가벼운 생각들을 텅 비워야함을 깨닳았다.

생각이 깊어지지 않아서 몸부림치며 괴로와했는데, 싯타르타의 구절을 다시 마주하니,모든 것을 비웠을 때 그 위대한 궁극의 본질을 맞이할 수 있다니, 

대뜸 드는 생각이 생각을 무겁게 깊이 하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이 얄팍한 영겁의 생각을 거두어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싯타르타를 다시 처음부터 읽기로 하고, 

이내 생각은 다시 가벼워져 집에가서 비빔밥을 해 먹기로 하고, 

우리는 다시 국경을 넘머 꼬모로 돌아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7 가벼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