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꼭 신고를 해야했을까?
우리 가족은 아파트에 산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는 직거래 장터 등이 열리지 않아서, 과일을 사려면, 대형 마트를 가야 한다. (우리집은 새벽 배송이나 마트의 배달 서비스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아파트 단지 안에도 작은 슈퍼마켓이 있기는 하지만, 과일은 종류도 다양하지 않고, 비싼 편이어서, 과일이나 채소는 단지 안 슈퍼에서는, 잘 사지 않는다.
작년 봄 어느 날, 아파트 입구에 과일차가 나타났다. 차에는 딸기가 가득 차 있었고, 머리에 딸기가 주렁주렁 달린 머리띠를 한 청년이 신명나게 딸기를 팔았다.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던 둘째는 이 모습을 보고, 바로 딸기 아저씨라고 이름을 붙였다.
우리 둘째에게 딸기 아저씨는 착하고 좋은 아저씨였다. 눈썰미가 좋은 딸기 아저씨는 항상 우리 둘째를 먼저 알아보고,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었고, 딸기 하나라도 아이 손에 쥐어 주었다. 딸기는 ‘당일 아침에 농장에서 딴 것을 바로 가져왔다’는 말처럼 싱싱했고, 가격도 비교적 저렴하여서, 어느덧 딸기 아저씨의 차를 기다리는 아파트 주민이 늘어갔다. 딸기 아저씨는 일주일에 한 번 같은 요일에 차에 가득 딸기를 싣고 와서, 장사 후, 빈차로 돌아갔다. 그리고, 싣고 오는 과일이 계절이 바뀜에 따라 바뀌었다. 살구, 포도, 그리고 복숭아로.
언젠가부터, 요일마다 아파트 입구에 오는 차가 일정해졌다. 닭꼬치, 순대, 뻥튀기, 추로스, 그리고 딸기 아저씨가 각각 다른 요일에 아파트 입구에서 판을 벌렸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둘째가 충격적인 장면을 보고 말았다. 그날은 딸기 아저씨가 복숭아를 가득 싣고 왔고, 나와 둘째는 언제나처럼 딸기 아저씨에게 복숭아를 사고 있었다. 갑자기 경찰차가 나타나서, 딸기 아저씨에게, ‘신고가 들어왔으니, 당장 장사를 멈추고, 철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나와 둘째, 그리고 복숭아를 사러 나온 아파트 단지 주민들에게 ‘신고가 들어와서, 단속을 나왔다’고 설명을 해주었다. 그전까지, 우리 둘째는 ‘경찰 아저씨는 나쁜 사람을 잡아서 혼내주는 착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경찰 아저씨가 ‘착한’ 딸기 아저씨를 단속하는 모습은 충격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단속 나온 경찰 아저씨가 친절(?)하게 딸기 아저씨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딸기 아저씨도 바로 장사를 접고, 차를 가지고 사라진 덕분에 어떤 물리적 충돌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집에 돌아온 둘째는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나쁜 사람이 누구인지’를 추리하기 시작했고, ‘신고한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 결론이 잘못이라는 것을 둘째에게 알려주기 위해, 가게에서 장사를 하기 위해서는 가게 설비를 위한 돈이 필요하고, 매월 가게 건물주인에게 가게 세를 지불해야 해서, ‘차’에 물건을 싣고 장사하는 사람보다 물건 값이 비싸진다는 것을 한참을 설명해야 했다. ‘신고’한 가게 주인도 본인이 장사하기 위해 투자하고 있는 금액이 있고, 딸기 아저씨 때문에 장사가 안 되면, 큰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도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왜 다른 차(닭꼬치, 순대, 뻥튀기 등)는 신고한 사람이 없는데, 딸기 아저씨만 신고한 사람이 있는지를 이해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몇 달이 지나고, 딸기 아저씨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아파트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어떤 건물의 주차장 옆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장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이들 선물로 캔디도 추가로 챙겨 오셨다. 둘째는 착한 아저씨를 다시 만날 수 있고, 맛있는 딸기도 먹을 수 있어서 좋다며, 딸기 아저씨가 오는 요일을 열심히 기다린다. 부디 우리 둘째가 경찰이 딸기 아저씨를 단속하는 모습을 다시 보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나는, 잘못된 도덕관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