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인생의 방향을 바꿀 작은 계기는 있을 수 있지만.
흔히들 하는 말 중에, '작은 용기가 필요하다' 라든가, '작은 용기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식의 말이 있다. 그런데, 세상의 용기 중에, '작은 용기'라는 것이 있을까? 난 세상의 모든 용기는 '커다란 용기'라고 생각한다. 누구도 다른 이의 용기에 대해, '작다' 혹은 '크다'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무언가가 계기가 되었다면, 그 계기는 다른 이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작은 계기'라고 표현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사실 그 계기도, 한 사람의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 사건이라면, 그 사람에게는 '인생의 계기'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 딸과 함께, '사라, 버스를 타다. (윌리엄 밀러 지음, 존 워드 그림, 박찬석 번역, 사계절출판사)'를 읽으면서, 이 책 속의 '사라의 용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이는 사라가 대단한 용기를 발휘했다고 했고, 나 역시 동의했다. 그런데,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아동 필독서라고 추천한 사람들 중에는 아이들에게 '작은 용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는 교훈(?)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지 않을까?
책 속의 사라는 1950년대의 평범한 흑인 소녀다. 당시 미국 남부에는 버스 안에, 백인 좌석과 흑인 좌석이 구분되어 있었고, 백인은 버스의 앞 좌석에 앉고, 흑인은 버스의 뒷좌석에 앉는 것이 법이었다. 매일 아침, 엄마와 함께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는 사라는, 어느 날 엄마가 먼저 버스에서 내린 후, 버스 앞 좌석으로 자리를 옮겨서 앉는다. 운전기사는 사라에게 뒷좌석으로 갈 것을 요청하지만, 사라는 이를 거부하고, 이로 인해, 사라는 경찰서로 끌려간다. 아이이기 때문에 경찰은 사라의 엄마를 불러, 사라를 집에 데리고 가게 하는데, 사라가 경찰서에 있는 동안, 신문기자가 사라의 사진을 찍고, 다음날 아침 신문에, '인종차별에 저항한 용감한 흑인 소녀의 이야기'로서 기사가 실린다. 사라의 엄마는 사라에게 버스를 타는 대신, 걸어서 학교에 갈 것을 제안하고, 사라는 흔쾌히 엄마와 함께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간다. 그리고 그러한 사라와 사라의 엄마 뒤를 따라, 흑인들이 버스를 타지 않고, 걷는다. 이는 버스 탑승 거부운동으로 이어지고, 버스 안에서 흑인과 백인의 좌석을 구분하는 법은 고쳐져서, 버스 안 좌석의 차별은 없어진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그림책의 실제 모델은 '로자 파크스'라는 흑인 인권운동가이다. 흑인 인권 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1996년 대통령자유훈장을 받은 사람이고, 2005년 별세한 후에는 워싱턴 DC 국회의사당이 있는 캐피톨 힐에 잠들었는데, 이는 여성으로는 첫 번째이고, 흑인으로서는 두 번째 인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림책의 내용과 가장 다른 점은 로자 파크스가 버스에서 좌석이동을 거부하였을 때, 나이는 10대 소녀가 아니라, 40대 성인이었다. 재판을 받아서, 벌금형을 받았고, 흑인들이 거의 1년여의 시간 동안, 버스 승차 거부 운동 (몽고메리 버스 거부 운동)을 벌인 결과, 당시 몽고메리의 흑백 분리 버스 탑승 제도가 위헌이라는 재판결과를 얻어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결과는 흑인 시민사회에, '흑인 인권 운동'의 참여와 '자신감'을 심어주는 큰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의 내용으로 편집되었다고는 하지만, 10대 소녀 '사라'의 이야기일 때와, 40대 성인인 로자 파크스의 이야기는 읽는 이에게 주는 느낌이 아주 다르다. 10대 소녀 사라의 이야기는 '어른들은 잘못된 사회의 규정이라고 하더라도, 규정이 그렇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저항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만, 순수한 아이들은 규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 순수한 마음으로 의문을 제기할 수 있으며, 이러한 아이들의 순수한 의문은, 그동안 생각 없이 현실을 받아들였던 어른들에게도 의문을 던지게 되고, 이러한 의문이 모여서, 용기 있는 행동을 일으키며, 결론적으로는 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되기도 한다'라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주는 느낌이다.
내가 이 책에서 감명받은 것은 경찰, 신문기자, 사라 엄마의 용기이다. 경찰은 사라를 경찰서로 데리고 왔지만, 처벌을 하지 않고, 조용히 데리고 있다가, 사라 엄마에게 사라를 보내준다. 신문기자는 사라의 행동을 기사로 실어서 사람들에게 알린다. 사라의 엄마는 사라의 행동을 야단치는 것이 아니라, 다음날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갈 것을 제안하고, 다른 어른들은 사라와 사라 엄마를 따라 버스를 타지 않고 걷는다. 사라의 행동이 '작은 계기'가 되어, 어른들의 용기를 불러일으키고, 이러한 용기들이 모여, 버스 안의 좌석차별이라는 나쁜 제도가 없어지게 된다. 이 책에 나타난 사라의 순수한 용기, 그리고 그 사라의 용기가 되어 일어난, 어른들의 용기는 모두 세상을 바꾼 커다란 용기들이다.
만약, 내가 사라의 엄마였다면, 혹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나에게는 용기가 있을까? 왠지 반성하게 되는 질문들이다. 이 세상에 작은 용기는 없는 것 같다. 작은 계기는 있을 수도 있지만, 그 계기를 통해 어떤 결정이나 행동을 하는 것은 언제나 커다란 용기인 것 같다. 내 생각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