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초등학생이 아는 꾸리찌바를, 어른들은 알까?
'아빠, 꾸리찌바 알아?'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가 뜬금없이 말을 걸어왔다.
'꾸리찌바라는 도시 말하는 거야? 알지. 아마 브라질이라는 나라에 있는 도시일껄.'
'정말 있어? 꾸리찌바가?'
'응, 브라질이라는 곳에 있어. 근데 어디서 들었어. 꾸리찌바라는 도시 이름.'
'책에서 봤어.'
아이가 내민 책의 표지에는 '동화로 만나는 생태도시 이야기 / 숨 쉬는 도시 꾸리찌바'라고 적혀있었다.
다행히도, 대학생시절에 환경과 관련한 수업을 들었던 덕분에, '꾸리찌바'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어서, 아이의 질문에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내 대학생시절은 거의 지금부터 30년 전의 일이다. 최근(?)에 꾸리찌바가 중학교 교과서에 실렸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초등학교 3학년이 '꾸리찌바'를 안다는 것이 무척 신기해서, 아이가 내민 책을 읽어보았다.
초등학교 6학년인 첫째와 3학년인 둘째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이들이 환경과 기후에 더 민감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생각해 보면, 아이들은 뉴스를 통해, 기후 변화에 따른 이변, 재난을 자주 접하고 있다. 내 어린 시절에는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없었고, TV도 공중파 방송만 정해진 방송시간에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뉴스는 어른들이 보는 재미없는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뉴스를 '유튜브'를 통해서 생생한 영상과 함께,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기후 재난, 환경 재난을 접하고 있다. 학교에서도 관련 내용을 선생님들이 잘 설명해 주고,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친환경적인 생활 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시는 것 같다.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 나서, 아이가 '꾸리찌바가 정말 있는 곳이면, 가보고 싶다'라고 한다.
브라질이라...... 비용도 비용이지만, 도저히 가볼 엄두가 안 나는 거리이다. 꽤 오래전에 회사 출장으로 상파울루에 간 적이 있었는데, 비행시간은 정말 지옥이었다. (비행기를 바꾸어 탄 시간까지 생각하면, 편도로만 25시간 ~ 30시간 걸렸던 것 같다.) 내가 꾸리찌바라는 도시를 알게 된 것이 30년 전이고, 꾸리찌바라는 도시가 생태도시로 탈바꿈한 것이 자메 레르네르가 시장이었던 1971년부터 1992년이니까,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생태도시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생태도시'라고 찾아지는 곳들은 꾸리찌바와는 많이 달라 보였다. 생태공원이 있는 도시라는 블로그나 기사를 찾아보면, 우리 아파트 뒷산에 있는 생태공원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고, 생태도시를 조성하고 있다는 기사를 찾아보면, 관광자원으로서 생태복원을 추진하는 곳이거나, 거대한 철새도래지 같이 현재의 자연을 보호하는 곳들이었다. 물론 관광자원으로 복원을 하는 일, 철새도래지를 보호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꾸리찌바처럼 도시전체를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져 생활하도록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곳은 없는 것 같았다. '스마트 도시 사업'이라는 것이 많이 검색되었고, 스마트 도시 사업의 목표 중 하나가 '환경도시' 혹은 '생태도시'로서 소개되고 있었다. 그러나 왠지 IT와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한 도시 안에, 넓은 자연공원이 존재한다는 개념인 것 같고, 꾸리찌바처럼 도시 전체가 '생태적'으로 운영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꾸리찌바가 처음부터 생태도시였던 것은 아니다. 교통의 요지였고, 2차 세계대전 후,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발달하면서, 부분별 한 산업개발이 진행되었고, 급격한 인구 증가와 환경오염에 도시가 황폐해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1971년에 시장이 된 자메 레르네르는 도시 전체 시스템에 혁신을 도입하였다. 예를 들어, 도심 한복판에 자동차 도로를 없애고, 보행자 전용 도로를 만들고, 버스 노선을 이용한 도심 접근이 훨씬 편리하도록 교통을 정비하여, 시민들이 버스와 도보로 시내에 접근하도록 만들었다. 쓰레기도 분리수거만이 아니라, 재활용이 가능한 쓰레기는 재활용을 하여, 도시에서 시민들이 다시 할 수 있는 자재나 제품으로 만들고, 이를 위한 일자리를 창출하여, 도시 빈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빈민문제, 실업문제도 해결하였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꾸리찌바의 변혁을 레르네르 시장 혼자서 한 일은 아니며, 시민 모두가 합심하여 이루어낸 결과이다. 물론 개혁 초기에는 반대도 많았으나, 현명하게 극복하면서, 시민들의 동참을 얻어냈다고 한다. 여기서 내가 신기하게 본 것은 '시민들의 동참'을 위해서, 양심에 호소하거나, 지구 환경의 미래에 대한 호소만을 한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구축하였고, 지금도 시스템으로 운영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꾸리찌바에서는 지금도 쓰레기를 수거해 오는 주민들에게 쓰레기 중량에 따라, 농산물을 지급하거나 버스토큰을 지급하며, 학생들에게는 학용품을 지급한다고 한다. 분리수거된 쓰레기의 경우에도, 수리를 통해 재사용이 가능한 것은 수리 후, 지역 주민들(가난한 지역민들만이 아니라 원하는 이들)에게 공급되며, 그대로 재사용이 되지 않는 물품들은 분해되어 건축자재 등으로 재활용된다고 한다. 물론 이 과정을 위해 발생하는 일자리는 지역민, 특히 빈민층에게 제공되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었다고 한다. 교통정책의 경우에도 공사비가 많이 드는 지하철보다는 버스 정책에 힘써서, 세계에서 가장 긴 버스와 원통형 정류장 등이 운영되고 있으며, 매일 190만 명 이상이 버스를 이용한다고 한다. 물론 도시의 규모자체게 서울과 꾸리찌바는 달라서, 이를 직접 비교할 수는 없지만, 대단한 숫자임에는 분명하다. (네이버 지식백과를 보면, 2013년 기준 꾸리찌바의 인구는 185만 명이라고 하니, 꾸리찌바 근교에 살면서 출퇴근하는 사람까지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190만 명이라는 숫자는 엄청난 숫자임을 알 수 있다.)
지자체에서 지역을 사는 주민들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 지역이 얼마나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뀔 것인가?'일 것이다. 특히 인구감소가 현실임을 체감하고 있고, 기후 변화가 삶의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사는 도시가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는 지역 주민에게 매우 중요하다. 1971년~1992년까지 도시운영시스템을 갖춘 꾸리찌바는 지금도, '세계 생태도시의 수도', '세계 최고의 환경생태도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모범도시'로 불린다고 한다. 마천루의 화려한 불빛 아래, 공원이 있는 미래도시의 모습도 있지만, 높지 않은 오래된 건물이지만, 도시 전체가 조화롭게 꾸며져 있고, 아주 넓은 공원은 없지만, 곳곳에 녹지들이 있고, 자동차 경적소리 대신, 걸어 다니면서 새소리, 풀벌레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미래 도시의 모습도 있을 것이다. 집집마다 방에서 게임을 즐기는 아이들이 많은 도시도 있을 수 있지만, 집 주위 작은 공원에 모여, 그네를 타고, 그림을 그리고, 나무 그늘 아래서 책을 읽는 아이들이 많은 도시도 있을 수 있다.
초등학교 3학년이 아는 꾸리찌바. 과연 어른들은 알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