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면접관이 원하는 것은?
취준생일수록, 평일에는 무언가 규칙적인 일과가 필요하다. 회사도 안 가는데......라는 생각에 늦잠 자고, 규칙적인 일과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나 스스로 나태해지고,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된다. 난 매일 오전에 동네 뒷산 산책을 한 시간 정도 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 뒤편에 작은 언덕이 있다. 공원이라고 불리는 데, 작은 산이고, 종주(?)를 하는 데에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작은 산이지만, 자연보호가 잘 되어있는 편이어서, 청설모, 다람쥐 등은 흔하게 볼 수 있고, 가끔은 멀리서 지나가는 너구리를 보는 행운을 가질 수도 있다. (사실, 너구리인지 오소리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야생 동물이다.)
내가 산책하는 시간은 그리 많은 사람들이 산책하는 시간이 아니어서, 산책 중에 누군가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상대방을 의식하게 된다. 그런데, 항상 마주치는, 그리고 내 기억에 또렷이 새겨진 세 사람이 있다. 여자분 두 분과 남자분 한분인데, 물론 이 분들끼리도 일행은 아닌 것 같다. 세 사람이 같이 있는 것을 본 적은 없다. 그냥 한 시간쯤 산책하다 보면, 한 분씩 스쳐 지나가게 된다. 이 세 사람은 중요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맨발로 산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 사람 모두 마른 체형이다. 아무리 낮은 산이라고 하여도, 자연보호가 잘 되어있는 산이고, 사람이 다니면서 만들어진 산길이 있지만, 맨발로 걷기에는 돌부리나 나뭇가지 등이 많은 길이다. 그래서인지, 이 세 분 모두 발 등에 긁힌 상처가 있다. 볼 수는 없으나, 아마도 발바닥에는 더 많은 상처가 있을 것이다. 평일 같은 오전 시각에 항상 이 세 분들과 지나치며 산책을 한다.
나 혼자 이런 상상을 해보았다. 분명히 이 분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각자의 사연이 있어서, 맨발로 산을 오르기 시작하셨을 것이다. 평일에는 동네 뒷산을 오르지만, 주말에는 더 높은 산을 찾아오를 것이다. 무슨 사연들이 있을까? 모두 마른 체형인 것을 보면, 아마도 큰 병에 걸렸었을 것 같다. 주위의 모든 이들이 회복이 어렵다고 했지만, 이 세 분은 자신의 삶에 대한 의지를 '맨발로 산 오르기'를 통해 확고히 하기로 결심하였을 것이다. 처음에는 발바닥이 돌부리에 찍히고, 나뭇가지에 찢겨 피범벅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산을 올랐고, 발바닥이 산에 적응하면서, 몸도 병마를 극복했을 것이다. 몸이 병마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산을 맨발로 오르며 산의 정기를 발바닥을 통해서 흡수해서'가 아니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맨발로 산을 오르는 삶의 의지에, 그 간절함에 병마가 감복하여 물러난' 때문일 것이다. 이제 병마는 물러갔으나, 본인을 살게 한 삶의 의지를, 그 간절함을 잊지 않기 위해, 지금도 매일 산을 맨발로 오르는 것일 것이다.
내 상상과 그 세 분들의 실제 이유는 전혀 안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내 상상에서 '삶의 의지', '간절함'이라는 단어는, 취준생인 내 처지에 잘 어울리는 말이다. 난 지금 얼마나 간절할까? 그리고 얼마나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걸까? 그리고 그 의지나 간절함을 입사지원을 하면서, 면접을 하면서 보여주고 있을까?
사실 난, 25년의 직장생활 중에서, 11년은 면접관의 역할이었다. 후보자(취준생)를 면접한 후, 다른 면접관들과 후보자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사람을 보는 눈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많이 느꼈었다. 특히 나는, 너무 간절함을 드러내는 후보자는 선호하지 않았다. 내가 뽑았던 자리는 영업이나 마케팅이었는데, 고객을 직접 대면하는 경우가 많은 업무였다. 내 선입관은 '고객을 대면하다 보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고객의 반응이나 고객의 요구를 자주 접하게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여유를 잃지 않는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일수록,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상황을 보는 여유를 가질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고객의 예측하지 못한 요구에 대하여, 올바르게 대응할 수 있으며, 대응책(혹은 협상안)을 제시할 수 있다.'였다. 그래서, 본인의 감정을 너무 솔직하게 드러내는 후보자(취준생)는 선호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면접 내내, '전 정말 취업이 간절해요'라고 온몸으로 말하는 후보자(취준생)는 선호하지 않았다. 반면에 다른 면접관들 중에는 '본인의 간절함을 처절하게 보여준 후보자(취준생)'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었다. 흔히 말하는 헝그리 한 사람이 열심히 일한다는 논리였다. 스티브잡스의 'still hungry'와 비슷한 관점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선호한 후보자(취준생)는 본인의 가치에 대하여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었다. 자신감이나 자만과는 전혀 다른 '자존감' 말이다. 그리고 자존감 높은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를 스스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본인의 간절함이나 초조함을 감출 줄도 안다고 생각했었다. 솔직히 말하면, 한 시간의 면접시간 동안에 이러한 사람의 본질을 내가 제대로 볼 수 있었는지는 지금은 자신할 수 없다. 그냥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다는 말이다.
내가 쉰둘의 취준생이 되었고, 면접에 실패(?)하는 경험을 하면서, 난 면접관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그리고, 면접관은 어떤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을까? 난, 면접에서 여유를 보여주려고 했었던 것 같다. 그동안 내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루어온 성과들에 대한 자신감, 내 능력에 대한 믿음, 그리고 자존감과 이 것들이 나에게 주는 여유를 면접관에게 보여줌으로써, 면접관이 '나'라는 사람에 대하여, 능력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확신을 가지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당신 회사에 취직을 원한다는 간절함은 드러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면접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많은 면접관들은 'still hugnry'한 지를 확인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쉰둘이라는 나이에, 취업 전선에 뛰어든 취준생에게서 보고자 하는 것은, '취직되면 좋고, 아니면 할 수 없고', 가 아니라, '난 반드시 취직을 해야하한다'는 간절함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코 초조함을 보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초초함은 사람을 당황하게 하고, 실수하게 만드는 법이다. 그래서, 지혜를 가진 어른에게 기대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 초조함을 보이기보다는, 그 상황을 이해하고 지혜롭게 해결책을 찾는 여유일 것이다. 즉, 쉰둘 취준생이 면접에서 보여야 하는 모습은, '취직에 대한 간절함과, 동시에 초조함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에서 오는 여유' 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내 모습에 담긴 것은 간절함이 아니라, 초조함이었는 지도 모른다. 이는 나만이 아니라, 내 또래의 취준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준생으로서 재취업에 진심이지만, 여유를 가지자. 난 대학을 졸업하고, 한순간도 쉬지 않고, 직장생활이라고 번호표가 새겨진 조끼를 입고 달려왔다. 그리고, 지금은 해가 저물어서, 하룻밤 쉬어야 한다. 난 충분히 열심히 달렸고, 하룻밤 정도는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고, 좋은 숙소에서 편하게 잠을 청할 충분한 자격이 있다. 내일 일어나서도, 바로 달리려고 하면 안 된다. 오늘밤 잠을 설치거나, 내일 아침에 아무런 준비없이 너무 급하게 출발한다면, 아마도 얼마가지 못하고 쓰러질 것이다. 오늘은 푹 자고 일어나야한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간단한 산책을 통해 몸의 상태를 점검하고, 영양이 충분하고 맛도 좋은 아침식사를 충분히 먹고 출발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페이스메이커는 없다. 내가 내 몸 상태를 확인하고, 페이스를 조절하면서, 해가 질 때까지 달려야 한다.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지치지 않고, 주위의 풍경을 둘러보면서 해 질 녘까지 달리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모두 그동안 충분히 잘 달려왔고, 앞으로도 잘 달려갈 것이다. 난 여전히 달리는 것을 좋아한다. 단지 지금은 밤이 되어서, 잠시 쉬어가야 하는 것.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