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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Jan 02. 2024

하루에 2번 행운을 맞이했을 때  

감사하는 마음 가지기

작년 11월 초에 있었던 일이다. 벌써 2024년 새해가 밝았으니 불과 몇 개월 전이 작년이 되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랍다. 2023년 11월, 나는 여러 가지 해야 할 일이 동시에 일어나 바빴던 시기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원하는 근무 조건에 맞는 회사로의 이직 준비를 병행했고 2년 전 분양받은 아파트의 입주 기간이 도래할 즈음이라 주택담보대출을 이리저리 알아보고 있을 때였다.


청약에 당첨된 후 계약, 중도금 대출까지는 어찌어찌했는데 마지막 관문인 잔금 대출을 하자니 대출받을 은행, 금리, 대출 상환방식, 대출 기한 등 알아봐야 할 것도 결정해야 할 것도 많았다. 난생처음 하는 일이라 낯선 데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자니 신경 쓰이는 것들이 한두 가지 아니었다.


시간을 빠듯하게 사용하기 위해 애썼고 퇴근 후와 주말에 주택담보대출에 꼼꼼히 알아보았다. 주택금융공사를 통해 디딤돌 대출이라는 정부 지원제도를 이용해 시중은행보다 낮은 금리로, 더 긴 기간 동안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제도가 있었다. 하지만 이는 안타깝게 현재 나의 조건에는 해당하지 않았다. 디딤돌 대출이 혜택이 크다는 사실 정도만 알고 있었기에 애초에 디딤돌 대출을 받을 생각이었던 나는 당황스러웠다. 집단대출을 받는 방법도 있지만 세계적인 경기 침체에서 비롯된 미국 금리 인상으로 시중 금리는 최고점을 찍은 상태였기에 금리가 더 비쌀 거라는 우려가 들었다.


하지만 대출 조건이 안 되는 것을 어찌하랴.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을 자각한 나는 입주 아파트의 잔금 대출이 가능한 은행들의 대출 조건을 비교해 보았다. 5대 시중은행의 대출 조건은 약간의 금리 차와 혜택에서 차이가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대동소이했다. 어떤 곳은 해당 은행의 카드를 발급하고 월 실적을 채우면 금리 혜택을 더 주는 은행도 있었는데, 은행도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기업임에 분명하지만 대출이 급한 입주 예정자들을 이용해 실적을 올리려는 게 보이자 그쪽 은행으로는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그렇게 몇 군데 은행에 상담을 마친 결과, 대부분의 은행의 대출 가능한 최대한도가 내가 받아야 하는 대출 금액보다 조금 작았다. 아뿔싸. 이런 일이 발생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총 대출 금액은 잔금뿐만 아니라 남은 중도금 이자와 분양 옵션 가격, 인지세 등을 모두 포함한 금액이 필요했다. 내가 당초 예상했던 금액보다 더 많은 금액을 저축해 두었어야 맞아떨어지는 금액이었다.


23년도 중간에 이직을 한번 하느라 중간에 몇 개월 저축을 하지 못한 기간도 있어서 예상했던 저축액에 미치지 못한 영향도 있었다. 순간,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 2년 반을 기다려서 입주 기간이 다가왔는데 이렇게 아파트는 날아가는 건가.'

'진짜 입주를 못하면 어떡하지? 전세로 내놓아야 하나?'

'입주기간이 지나고 입주할 수도 있을까? 그렇다면 그 기간 동안 얼마나 더 모을 수 있을까?'


하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갔다. 실망감과 낭패스러운 마음이 들면서 힘이 빠졌다.

혹시나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입주자 카페와 사전 점검 때 받은 은행별 잔금대출 안내 종이를 다시 한번 꼼꼼히 살폈다. 제2금융권에 해당하는 한 금융기관의 대출 한도가 '감정가의 최대 80% 이내', 'DSR 한도 150%'라고 안내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직감적으로 DSR 최대 150%면 대출 한도가 더 커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출 상담사를 통해 전화 상담을 먼저 진행했고 가심사에 필요한 서류들을 정리해 메일로 송부했다. 가심사임에도 꽤 많은 서류가 필요했다. 며칠 후 나는 내가 필요한 금액 이상으로 대출 한도가 나오며, 대출이 가능하다는 회신 전화를 받았다. 천만다행이었다. 방법을 찾다 보니 어떻게 방법이 나오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잔금 대출일을 예약했고 11월 첫째 주에 연차를 내 은행을 방문했다. 당시 나는 서울에 거주하고 있었고 대출 은행은 입주 아파트가 있는 지역의 인근 지역에 위치한 은행이었다. 대출을 위해 모든 서류 원본을 챙겨 KTX를 타고 지방으로 내려갔다.   


대출과 같은 중요한 일을 할 때 서류가 누락되거나 착오로 잘못 서류를 제출하면 번거로워지기 때문에 여러 번 서류를 확인했다. 이전 직장에서 토지 보상 계약 업무를 할 때 인감증명서, 지방세 및 국세 납입증명서, 등기부등본 등 10여 개가 넘는 서류를 받고 소유권 이전 등 업무를 처리한 경험이 있기에 그렇게 되면 고객이나 업무 처리 담당자 모두 두 번 일해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은행에 방문해 서류를 대출 담당 직원에게 전달했고 다행히 누락 없음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대출 직원에게 대출 금리와 대출 기간, 상환 방법에 대한 안내를 들었다. 변동금리, 고정금리 중 어떤 금리로 할지 결정했고 내 상황에 맞는 대출 기간과 상환 방법도 정해 말씀드렸다.


대출 담당 직원이 설명을 하는 도중에 순간적으로 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를 보이자 다시 한번 쉽게 설명해 주었고, 매월 내야 하는 이자금액과 원리금을 계산해 알려주었다. 대출 실행일에는 따로 은행에 방문할 필요 없이 대출 실행을 위해 필요한 나머지 금액을 입출금 계좌에 입금해 두면 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대출과 관련해서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고 그 직원은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모든 절차를 마치는 데 1시간이 조금 덜 걸린 것 같다. 수기로 작성해야 하는 서류가 꽤 두꺼웠던 것 치고 빠른 시간에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사히 대출 신청이 끝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대출 실행일에 제대로 대출이 되길 바라면서 은행을 나설 준비를 했다. 그때 대출을 도와주셨던 직원이 버스 배차 간격이 커서 바로 버스가 오지 않을 거라며 KTX역까지 태워주겠다고 했다. 당연히 버스를 타거나 버스가 오지 않으면 택시를 타려 했던 나는 순간 당황했다. '근무 시간에 나가셔도 되는 걸까?'라고 생각하며 괜찮다고 사양했다.


그래도 그 직원은 차로 가면 금방이라며 겉옷을 챙겨 입었다. 마침 은행에 고객이 없긴 했다. 나는 미안한 마음과 조금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차를 탔다. 정말 차로 가니 역까지는 10분 정도의 거리였다. 이왕 나오셨으니 조금 더 바람 쐬고 들어가시라는 말과 함께 나는 감사하다는 말을 건넸다. 예전에 나도 출장이라는 명분 하에 잠깐 숨을 돌리고 사무실로 복귀한 기억도 새록새록 났다.


이렇게 처음 보는 사람의 호의를 받은 날은 왠지 모르게 나도 누군가에게 호의를 다시 베풀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살다 보면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지?'라는 절망스러운 생각이 드는 날이 있는가 하면 생각지 않은 배려를 받거나 행운을 맞는 날도 있다. '거봐, 공평하지? 오늘은 너에게 행운을 주고 싶어'라고 행운의 여신이 속삭이는 것처럼 말이다.






덕분에 나는 여유롭게 KTX역에 도착해 기차를 탔고 눈을 좀 붙이고 나니 금세 광명역에 도착했다. 집으로 가는 방향의 버스 도착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확인한 나는 버스 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귀에는 에어팟을 꽂고 있었다.


그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응? 설마 나를 부르는 건 아니겠지?라고 생각했지만 혹시나 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한 아저씨가 익숙한 모양의 지갑을 나에게 보였다. 내 지갑이었다. 빨리 걷는 도중에 주머니에서 흘린 것이 분명했다.


"앗,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거듭 감사하다는 말을 외쳤다. 아저씨는 멋쩍은 듯 나에게 지갑을 건네주고 빠른 걸음으로 앞질러 가셨다. 지갑을 잃어버릴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현금은 없었지만 신분증과 카드가 있어서 잃어버리면 일이 곤란해진다. 게다가 그 지갑은 특별하진 않지만 가볍고 심플해 내가 아끼는 물건 중 하나였다.


'이 덜렁이, 물건 잘 챙기자!'


라고 속으로 나를 타박하며 아직 내가 사는 세상엔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더구나 오늘처럼 하루에 2번이나 행운을 맞은 날은 감사하는 마음을 더 가지게 된다. 행운의 여신이 내 손을 들어준 느낌도 든다. 내가 받은 행운만큼,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도 베풀고 살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했다. 거창하게 혹은 물질적으로 베푼다기보다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부터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배려심 있는 태도로 대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그리고 오늘의 나처럼 곤란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보게 된다면 기꺼이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부터 좋은 사람이 된다면 세상이 조금은 따뜻하게, 또 아름답게 바뀌어 갈 수 있지 않을까.


매년 새해가 되면 다이어리 첫 장에 빼곡히 한 해 계획을 적곤 했는데, 2024년 계획은 단출했다.

요약하자면 나 자신의 안정과 평화, 가족과 친구, 주변 사람들 잘 챙기기.

그래서 결국엔 행복하게 지내기.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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