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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아비키 Jun 12. 2020

2G 서비스 종료를 앞두고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011

본 글이 <아주경제> 칼럼으로 나왔습니다. 칼럼 글은 본 글을 바탕으로 요약한 내용으로 실렸습니다.  해당 링크는 아래와 같습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칼럼원문(브런치): https://brunch.co.kr/@jhwhjn/70 

아주경제 칼럼 https://www.ajunews.com/view/20200713110030916 




2020년 6월 12일, 과기정통부가 SKT의 2G 종료신청에 대해 승인했다. (관련기사: 011 이제 정말 안녕…SKT 2G 서비스 접는다 )


시대를 풍미했던 011 서비스가 드디어 역사속으로 사라지려는 순간이다. 지난주 싸이월드 폐업 소식에 이어, 2000년대 초중반 온국민의 브랜드였던 통신서비스가 사라진다니, 새삼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싶다.


물론 011은 싸이월드와는 비교가 안되는, 빅 빅 브랜드였고, 종료가 예상되었기에 충격이 덜하긴 하지만, 어쨌든 우리 모두의 90년대말~2000년대의 삶을 좌우했다는 점에서 011이 사라진다는 건 어쩐지 슬프다.


90년대   무선통신시장이 본격적으로 발전하면서 5 번호(011,016,017,018,019) 가입자 전쟁의 서막이 열렸다. 당시 이동통신사의 서비스는 요즘의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마냥, 매우 핫하고 혁신적인, 첨단을 상징하는 it서비스 (잇서비스)였으며, 이통사들은 첨단기업이라는 자부심에 걸맞게 경쟁적으로 당대 톱스타인 고소영, 채시라, 이미연+김승우, 전지현 등을 대표모델로 고용하며 국내 광고시장을 후끈 달구는데 앞장섰다.

위쪽부터 011(채시라), 016(고소영), 019(이미연) 광고. 한석규가 등장하기 전인 이때까지는 011은 선두주자였으나 독보적 브랜드는 아니었다.


이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브랜드 성장을 보인 것은 SKT의 011 서비스였다. 90년대 옴니버스형의 드라마타이즈된 코믹 광고를 통해 "시도때도 없이 터진다"는 것을 강조했다면, 2000년대 들어 SKT는  한석규를 내세우면서 확고한 선두주자로서의 입지를 굳힌 것이다. 속도를 강조했던  초기의 브랜드명 "스피드 011"은 한석규 이후 "스피드"라는 말이 빠지면서 "011"로 단순화되었다. 이는 스피드를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는 브랜드의 자신감이 반영된 결과였다.


IMF 통과했고 밀레니얼 시대를 맞아  바빠지고 정신없어진 사람들에게 힐링감을 선사하면서 동시에 어디서나  터진다는 것을 세련되게 표현한 카피.

" 다른 세상을 만날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문구에 신뢰감이 가득한 한석규의 목소리가 얹어지면서, SKT 통화품질, 기지국에서 경쟁사가 따라갈  없는 독보적 기업으로서의 소중한 무형자산(브랜드 이미지&포지셔닝) 얻는데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경쟁사보다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역시 011", 나아가 "역시 SKT"라는 대규모의 충성고객층(팬덤) 대거 확보하며 독주체제를 완전히 굳혔다. 5G 시대가  2020, KT, LG 거센 추격속에 브랜드 이미지가 조금씩 밀리는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SKT로서는 ", 옛날이여~" 목놓아 부를만큼 그리운 시절일  밖에 없다. 열렬하게 사랑하는 연인처럼, 아니 결혼에 골인한 부부처럼, SKT 한석규의 조합은 다시 나오기 어려울 정도로 최고의 조합이었던 시절이었다. 오죽하면 당시 초딩들은 "011이 한석규 회사다"라고 이해할 정도였을까.


한석규와 011의 만남. 011의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는 이때부터 확고해졌으며, 국내 브랜드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사례로 자리잡게 된다.


SKT 011 브랜드 파워는 한석규 이후 가파르게 성장하더니, 한일월드컵 응원광고를 통해 최절정에 다다랐다. SKT 2002 한일월드컵 시즌을 맞아 011 광고에서 "앰부시 마케팅(Ambush marketing)" 전략을 매우 교묘하고도 영리하게 수행하여 대박을 터뜨렸다.   011 완벽히 "한석규의", "한석규에 의한" 마케팅 전술(tactic)을 펼쳤더랬다. "~ 민국, 짝짝짝 짝짝"이라는, 이제는 우리나라 축구의 공식응원구호가   응원 방정식을 한석규가 011 광고를 통해 "교육(!)"했는데, 이것이 국가대표팀의 선전에 힘입어 전국적으로 급속히 퍼진 탓이다.


실제로는 FIFA 아무 관련도 없고 공식스폰서도 아니었음에도 SKT  광고 때문에 사람들에게 "월드컵 공식 후원사" 각인되며 엄청난 월드컵 특수를 누렸다. 거기에  우리나라가 4강에 오르면서 야외응원이 활발해지자, 응원 구호용으로 야외 곳곳에서 SKT 응원광고가 자발적으로 울려퍼지는 (당연히 곳곳에서 현장 프로모션도 함께 진행됐다) 예상치못한 행운도 따랐다. 덕분에 SKT 011 "리더", "압도적 선두", "넘사벽", "쿨함", "최고", "최강", "파워", "믿음직함" , "젊음(TTL)"  온갖 긍정적인 이미지를 모두 확보했다. 2020 지금까지도 SKT 갖는 (비록 예전보다는 못해졌지만) "통신선두기업"이라는 이미지는  당시 형성된 무형자산의 유산(legacy)이다. 당시 월드컵 공식후원사였던 현대자동차가 땅을 칠만큼 역대급의 강력한 앰부시 마케팅 성공사례 만든 것이다.


그 당시로 돌아가면, SKT와 011은 난공불략이었고, 영원히 해가 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물론 그 때문에 수많은 광고쟁이들과 마케터들이 난데없이 일폭탄과 회사의 압박을 받는 등, 의도치않은 부작용과 안티층(??)이 생성되는 경우도 발생했지만 말이다. ㅎㅎㅎ



요즘에는 통신사보다 애플, 삼성 등 디바이스 충성고객층이 더 강한 느낌이지만, 그 당시에는 삼성(애니콜), 노키아(모토로라), 팬텍 같은 디바이스 기업들이 비빌 수 없을 만큼 Skt와 011의 팬덤이 엄청났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2017년 2월 과기정통부 자료에 따르면, 011, 016, 017, 018, 019 등의 식별번호를 아직도 사용하는 2G 휴대폰 가입자 수는 92만 8천 명인데, 이 중 SKT 011 번호를 아직 사용하고 있는 2G폰 사용자는 84%에 달하는 77만 8천 명이었다. (관련글: [광고로 날다  SKT] "저건 뭐지?" 궁금증으로 국민시선 안 놔준 '1등 자존심)


새삼 대단한 충성심이구나 싶다. 이 시기에 아직까지 011을 유지하다니. 기사들 댓글보면 통신비도 5G보다 더 비싸고, 품질도 별로라고 하는데 말이다. 이들은 심지어 이번 과기부의 결정에 항의하기 위해 소송도 준비한다고 한다. (관련기사: "SK텔레콤 2G 강제 종료에 011·017 가입자들 "번호 유지,소송 대법원까지")  


이들에게 "011"은 대체 무엇일까. 적어도 품질, 가격을 논하는 무형의 이동통신서비스 그것을 넘어, 그 존재 자체가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무엇"임에는 분명하다.


TVC로 이 정도 효과를 얻어낸 사례는 외국에서도 많지 않을 정도로 드물다. 때문에 SKT의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시리즈가 매우 성공적인 캠페인이었다는 건, 그때도 지금도 반박하기 어려운 팩트다. 심지어 저 카피는 지금 시대에도 타인을 배려하는 매너있는 모바일 사용문화를 장려하는데 잘 어울리지 않나. 가히 시대를 초월하는 명슬로건이었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다고 했던가. 011이 결국 종료되는 것으로 결정났다. 어차피 언젠가는 없어질 서비스였고, 이제는 기억에서도 가물해지는 011이지만, 사라진다니까 괜히 아쉽다. 011에 얽힌 추억 때문이 아니라, 그 시절의 시간들이 생각나서. 적어도 30대 중후반 이상이라면, 011은 시대적이고 집단적인 추억이지 않을까.


한참전에 010으로 바꾼 나도 이런데, 현재까지의 충성고객들 심정은 오죽하랴.


이렇게 2000년대를 풍미한 시대의 추억, 모두의 브랜드가 사라져간다.



덧)

사실 나는 019 유저였다. 서울지역에만 있으면 019도 나름 잘 터졌어서, 학생 신분엔 가성비가 좋은 019가 나름 대안이었다. 019는 무료폰+통신비할인이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019는 항상 무시했던 기억이 ;;;^^ 010번호체제 없었으면 LGT는 지금도 계속 쭈구리 이미지였을 거다. 011 프라이드가 너무 세서, 정작 소비자들은 LTE최초, 이런건 크게 신경쓰지 않았었거든. (미안해요 엘지~ ㅋ)



#011 #017 #SKT #한석규 #이동통신시장 #역사 #2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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