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처음 만났던 어느 봄날
나는 당신이 여느 풀들처럼
봄이 되어 응당 푸르고
목련과 진달래가 필 즈음에도
평범한 지초로 남아 있다가
여름이면 몇 송이 꽃
피고 마는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가마솥 폭염 속
열대야로 세상의 모든 꽃이
기력을 잃었을 때
해사한 보랏빛
축포를 쏘아 올렸지요
여름 지나
구름과 나무와 바람이
모두 허망함을 알게 되는 가을
당신의 꽃 진 자리마다
영롱한 흑진주 알알이 맺어냈습니다
그리고 모든 생명이
자신을 걸어 잠그고
깊숙이 동면에 빠져들 때
눈 속에서 푸른 지조를 뽐내며
심약한 내게
희망의 자세를 보여주었습니다
맥문동,
당신은 내가 길을 잃었을 때
길을 열어주는 성좌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