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삶의 노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섬트레커 Dec 16. 2020

맥 문 동

우리가 처음 만났던 어느 봄날 

나는 당신이 여느 풀들처럼

봄이 되어 응당 푸르고 

목련과 진달래가 필 즈음에도

평범한 지초로 남아 있다가

여름이면 몇 송이 꽃 

피고 마는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가마솥 폭염 속

열대야로 세상의 모든 꽃이 

기력을 잃었을 때

해사한 보랏빛

축포를 쏘아 올렸지요     


여름 지나 

구름과 나무와 바람이

모두 허망함을 알게 되는 가을

당신의 꽃 진 자리마다 

영롱한 흑진주 알알이 맺어냈습니다     


그리고 모든 생명이 

자신을 걸어 잠그고

깊숙이 동면에 빠져들 때

눈 속에서 푸른 지조를 뽐내며

심약한 내게 

희망의 자세를 보여주었습니다     


맥문동,

당신은 내가 길을 잃었을 때

길을 열어주는 성좌이십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솔사 고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