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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작가 Sep 13. 2016

아빠의 추석

그리운 아빠


높고 푸른 하늘에

뽀드득 뽀드득 파란 대추가 빠알갛게

무르 익어가는 가을!




새악시 볼처럼 불그스름하고 탱탱함을 유지하고 달콤한 물기를 머금은 사과에서는

하늘거리는 가을 빛의 반들거림과

반짝거림이 퍼진다.


외갓댁에서 보내주신 내 얼굴만 한 나주햇 배에서 나온 단내가 포올 포올 집안 가득히 풍겨나기

시작하니, 명절이 코앞이라는 생각이 더 번뜩

드는 날이다.


이제 송편 빚어야 하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군!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서,

송편 빚는 가을 밤의 길이는 웃음꽃과

이야기꽃으로 꼬박 새워도 결코 길지 않으리!


오후 6시 넘어서 석양 노을빛이 대문 절반을

차고 오를 때,

일을 마치고 퇴근하신 아빠는 추석 대목 앞두고

직원들 월급과 업체 잔금 준비로 바쁘신 눈치다.


요즘처럼 은행의 뱅킹 서비스가 온라인으로 이루지지 않은 아날로그 시대였던  당시에는,

아빠가 직원들에게 현금으로 월급 봉투를

직접 주셨기에,

직원 급여일이나 명절 앞두고서는 아빠의 점퍼 안주머니나, 바지 주머니가 항상 돈봉투로 두둑하게 불러 있었다.)


몇 안되는 직원들이라도 제날에 꼭 챙겨서 월급을 지급해야 했고, 조그만 실수라도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있으셨기에 그날은 유난히 아빠의 얼굴 빛이 상기되 있었고, 예민했었으리라.


"아빠 들어오셨어요?" 라는 우리들의 합창을 듣고서도 크게 반기는 내색이 없으시다.


"으 응..." 말 끝을 흐리면서, 우리에게 뒤돌아 웃음 짓고, 안방으로 들어가신다.

몇 분 후, 옷을 갈아 입고,

아빠는 무언가 말씀을 하고 싶으신 듯,

주춤주춤 하더니, 우리가 있는 거실 쪽으로 다가선다.


"너희들! 아빠가 하는 말 잘 들어라.

이제 아빠는 집에 없으니, 누가 집을 찾아와서 아빠를 찾거든, 아빠 안계신다고 해라."라는 특별한 명절 지침을 내리신다.


당시 아빠의 말씀이 수수께끼처럼 들렸다.


그리고,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빠의 명령을 거절도 수락도 할 수 없는 어정쩡한 상태로 나는 '네' 라고 반사적으로 답할 수 밖에 없었다.

 실제, 누군가가 아빠를 찾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지라는 고민을 미쳐 마치지 못 했다.


아빠의 명절지침이 떨어진지 채 삼십분도

지나지 않아서,

이런 갈팡질팡하는 나의 마음을 알고나 있는 듯, 

사건이 곧이어 터지고 말았다.


"계십니까?  김 ** 사장님 계신지요?" 라고

낯선 아저씨의 음성이 들렸다.  


현관문 쪽, 가장 가까운 작은방에 동생들과 놀고 있는 내 귀에 제일 먼저 그 음성이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일어나 창가쪽으로 다가선 나는 창문에 드리워진 커튼을 살짝 걷어 사람의 형체를 마져 다 확인하기도 전에,

삼십분전 아빠의 명절지침이자 명령을 까맣게

잊은 채, 나도 모르게 입에서 금기어가 튀어져

나와버렸다.


" 아빠! 밖에 손님 오셨어요~" 라고 쩌렁쩌렁하고 명료하게 안방에 계신 아빠를 불러댔던 것이다.


부엌 쪽에서 급히 달려 나온 엄마는 나의 눈치 없는 행동에 사색이 되었는지, 큰 눈동자를 휘둥그레 번뜩이며 내게 레이저 광선을 쏘고 계셨고,

그제서야 나는 아차하는 마음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아 ~ 내가 큰 실수를 저질렀구나! 아까 아빠가 우리에게 부탁? 아니 명령을 했었는데... 어쩌지, 어이쿠 이런..이제 어떡하나?'

후회하는 마음이 절반정도 차오르자,

가슴이 벌렁대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아빠는 우리에게 이런 지침을

급작스럽게 내려서, 나의 마음을 이리도

요동치게 하는 것일까? 라는 회색 의문이

머릿속에 맴돌기 시작한다.


 이윽고, 나는 뒷통수에 퍼지는 엄마의 뜨거운 눈빛을 느끼자, 사건의 진원지인 작은방으로 피해야 만 했다.


아빠는 안방에서 주섬주섬 옷가지를 갖추어 입고 현관 밖에서 제복을 입고 기다리는 두명의 낯선 손님에게 다가갔다.

몇마디 서로 말이 오간 뒤, 아빠는 아까 그 점퍼 안주머니에서 두툼히 무언가 들어있는 흰색 봉투를 그들에게 건넨다.


나는 작은방 창문에 드리워진 커튼을 살짝 들어서 당시의 일그러진 세상 풍경 중 하나를 숨죽이며,

목도하고 있었다.


그 두사람은 동네 파출서에 근무하는 순경들이었다.

순경을 보내고 돌아온 아빠의 표정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떫떠름한 표정과 괜히 아이들에게 이런 지침을 내렸나 싶었다는 생각이었는지 씁쓸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죄를 지은 듯한 내 표정에서 무언가 읽으셨는지,


" 무슨 놈의 경찰이 ~ " 라고 시작하면서

주저리 주저리 푸념 비슷한 사회 현실을

역설하신다.


초등학교 3학년 그날 내 기억에는 세상의 정의같은 것은 애초에 없었다.


그저 명절이나 대목 때 조그마한 사업을 하는 아빠에게 기업의 번영과 안녕을 위하여 '삥을 뜯는 민중의 지팡이'가 더 어울리는 것 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날 아빠의 명절지침을 어기는 실수를

범했다.


실수였지만,

죄인 같은 마음으로 저녁상을 맞이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돈을 털리고도 괜찮다고 씁쓸하게 내게 건넸던 아빠의 모습에 미안한 마음 반,

난 왜 이리 실수를 했을까라는 자책도 함께 따라

다녔다.


강산이 네번 쯤 바뀌는 세대를 지내고 보니, 추석명절 세태도 참 많이 변한 듯 하다.


 당시 내가 목격했던 현실은 그 만큼 비루하고 옹색한 변명처럼 들리는 사건들이 종종 있었던 시절이었다.



옹색한 변명만큼 비루한 현실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초등학교 3학년 나는 당시 세상을 거꾸로 서 있는 느낌이었다.


추석이 가까워 오면, 아빠의 기일도 가까워 온다.

올해로 돌아가신지 십이년 째 된다.


나의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빠의 추석'은 비록 악몽이었고 씁쓸했을지 모르는 기억이지만, 그마져도 내게 없으면, 아빠의 추석으로 기억할 만한 단초가 없으니 더 없이 서럽고 서글펐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부자였고,

넉넉했던 아빠의 모습이 기억되니,

그리 나쁜 기억이라 말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


그땐 그랬으니까....

(경찰이라는 직업에 대한 폄훼의 글이 절대 아닙니다.^^ )




가을 하늘이 푸르다.

36년전 가을 하늘도 이렇게 푸르렀겠지?

 날 '아빠의 추석'~ 떠올려 보다.




2015.9. 17. 추석즈음하여,

감나무엔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佳媛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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