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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Jun 16. 2020

각자만의 스타일

타인을 인정하는 연습


어렸을 적 잠깐 집 근처 미술학원에 다닌 적이 있었다. 미술학원에서는 늘 석고상을 그렸는데 한 번은 구를 그렸다가, 정육면체가 되었다가 점점 난이도가 높아지면서 똑같이 따라 그리기를 반복하였다. 매일 반복적으로 따라 그리기를 하면서 그림에 대한 흥미보단 문제를 푸는 것처럼 딱딱하게 느껴졌다. 또 다른 수학 문제의 하나라고 여기면서 몇 날 며칠을 빠지면서 점점 미술학원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그림을 그릴 땐 입시 미술이 아니라 취미에 초점을 둬서인지 가벼운 마음으로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 위주로 그렸다. 그리고 싶은 그림 중 하나는 색감이 생생하면서 밀도 있는 그림이었다. 두껍게 물감이 올라간 그림이 좋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리니 ‘유화’부터 그쳐보자고 하시면서 천천히 한점 한점 유화와 아크릴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어쩌면 내가 그림을 수년 동안 그릴 수 있었던 이유는 처음 시작한 그림이 ‘유화’였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첫 시작을 유화나 아크릴로 선택한 건 신의 한 수였다. 언제든 물감을 칠하고 다시 덧칠하면 수정할 수 있으니까 지금 당장 이상하더라도 못 본 척 지나가는 마음이 딱 나랑 잘 어울린다. 내 마음에 안 든다 하더라도 일주일 뒤 얼마든지 다시 그릴 수 있다. 심리적인 부담도 없고 계속 차곡차곡 색이 쌓이는 느낌이 재밌다. 연필로 정밀묘사를 해야 할 땐 아주 가끔은 미칠 것 같다. 누군가는 정밀묘사가 가장 기본이고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내겐 정밀 묘사를 할 때면 마치 수학 문제를 푸는 것 같다. 가이드선을 여러 개 그려 넣은 다음 혹시 형태가 달라졌는지 제대로 라인이 잡혀 있는지 일일이 비교하면서 하나하나 그려 넣는 게 쉽지만은 않다. 형태력을 키우는 건지 정신 수행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할 만큼 쉽지가 않다. 정밀묘사를 잘하는 친구가 부러워 계속 옆에서 노력을 하였지만 같은 시간이라면 내가 잘하는데 집중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걸 번번이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그림도 성격에 따라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나 보다. 내 성격은 좋게 말해 빠르게 추진력이 있고 크게 생각하는 편이지만 나쁘게 말해 디테일한 부분은 신경을 못쓰는 편이다. 그림도 사람 성격을 닮는지 디테일하게 연필 묘사가 들어갈 땐 아무래도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다. 같은 묘사를 하더라도 아주 얇은 샤프심으로 묘사를 하여 하나하나 세밀하게 하는 것보단 아주 두꺼운 펜이나 화이트보드에 쓰는 매직으로 둔탁하게 그리는 것이 훨씬 시원시원하니 기분이 좋다.       


반면 디테일하고 꼼꼼한 사람들이 대범하게 속도를 내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꼼꼼한 사람들이 대범한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려면 눈으로 보고도 못 본 척 생략하며 원하는 방향대로 빠르게 그려 나가야 한다. 성격상 늘 자세하게 관찰하며 정확하게 그려야 하는데 못 본 척 지나가거나, 생략을 하며 해석하는 그림을 그려야 할 때면 꼼꼼한 사람들이 무척 힘들어 보인다.      



그림을 그릴 때면 모두 자신의 스타일이 조금씩 묻어 나온다. 모두의 스타일을 각자 다르기 때문에 그 스타일에 맞춰 그림 그리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와 같은 스타일의 사람이 처음부터 얇은 샤프로 그리는 세밀화를 그리기 시작했다면 그림은 나와 맞지 않는다며 관두었을 테고 꼼꼼하고 섬세한 사람이 처음부터 속도감 있는 그림을 그렸다면 이 역시 재미가 없을 수 있다. 




우리가 이 일을 잘하고 있다, 못하고 있다의 문제는 결국 나의 스타일과 맞는가 맞지 않는가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회사에서 한때 예산 업무를 잠깐 맡은 적이 있었는데 나와는 상극인 업무였다. 그때 당시는 나 자신이 참 일을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나와 맞지 않는 일일 뿐이다. 반면 생각을 정리하는 기획서를 쓰는 일이라면 그건 곧잘 익숙하게 할 만하다. 내 스타일과 맞는 업무인 셈이다. 노력은 할 수 있지만 다른 스타일을 부러워하거나 일부러 따라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만의 스타일로 내가 잘하는 부분에 집중하면 그 시간도 충분히 의미 있다는 걸 그림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릴 때 다른 스타일의 사람이 동시에 같은 사물을 보고 그릴 때면 재미있는 결과물이 탄생한다. 한 사람은 도형 몇 개의 추상화가 탄생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사진인지 그림인지 헷갈릴 만큼 섬세한 그림이 탄생하기도 한다. 이렇게 각자의 개성으로 세상을 해석해 나갈 때 인생은 더욱 풍성해지나 보다. 그릴을 통해 모두 각자의 스타일이 있다는 걸 이제는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꼬치꼬치 따지고 들까?’라는 생각도 예전보단 줄어들었다. 다 사람만의 스타일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스타일을 조금씩 이해해 나갈 때 내 그림이 발전하듯 우리의 삶 역시 더 넓고 커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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