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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Jul 13. 2020

회사원이라서 그림 그리기가 더 좋을지도

직장인이라지만, 가능한 창작활동


한 번도 내가 거창한 일러스트를 그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그림 그리는 시간이 좋을 뿐이고 내게 위안을 안겨줄 뿐이다. 가끔 사람들은 회사 업무도 하는데 그림을 그리는 게 어렵지 않냐고 많이들 물어보곤 한다. 하지만 적어도 내겐 회사원이라서 그림 그리는 게 더 편안하고 좋을 때가 많다.      


회사원이라서 좋은 점은 매일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이 비교적 일정한 편이다. 이게 생각보다 개인의 하루 일과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 매일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점은 어쩌면 아무 생각이나 에너지 없이도 그 일을 추진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소리와도 같다. 매일매일 회사 가는 시간이 힘들 때도 있지만 이제 하도 오랫동안 루틴처럼 회사를 가니 처음보다 많은 에너지가 들지 않는다. 일정한 시간에 퇴근을 하면 다시 일정하게 그림을 그릴 뿐이다. 일정하게 정해진 시간에 맞춰 그림을 그려 나가는 시간이 쌓이면 어쩌다 가끔 내가 생각해도 기분이 좋은 작품이 탄생하게 된다.     


무엇보다 그림 그릴 소재가 풍성해진다는 점 역시 회사원이라 얻을 수 있는 특권이다. 회사에는 참 다양한 캐릭터를 지닌 사람들이 존재한다. 개인적으로 ‘회사에서 만난 사람’이라는 특성상 어느 정도 선을 긋고 싶은데 부담스러울 정도로 선을 넘어오는 사람부터 끊임없이 인정을 갈구하는 사람들까지 성격이 다양하다. 여러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사람들의 표정 하나하나를 미묘하게 관찰하고 그 안에서 여러 감정들을 만끽하는 순간 아주 가끔은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가끔은 불쾌 한대로 감정을 표현하고 싶고 기분이 좋으면 또 좋은 대로 표현을 하고 싶다. 사실 그림을 그리는 데 가장 어려운 점은 그림을 그리는 그 자체보단 그림 그리기를 위해 준비하는 시간에서 오는 어려움이 더 많다. 그림 그리는 그 자체라면 빨간색을 칠해볼까 노란색을 칠해볼까에 대한 고민일 테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란 당장 내가 뭘 그려야 하고 어떻게 나만의 색깔을 낼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이다. 회사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 적어도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지 소재거리는 떨어지지 않아 창작 활동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      



외국어를 하나 배우면 해당 나라와 소통하는 방식이 늘어나듯 ‘그림을 그린다는’ 표현의 방법이 늘어나면 그만큼 소통하기가 더 수월하다. 생각이나 현상을 담는 표현이 ‘그림’이라고 볼 때 여러 현상들을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그림으로 표현하는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그림 표현은 연습량에 비례하기에 미숙할 수 있지만 하고 싶은 말이 분명하고 전달하고 싶은 것이 명확히 있다면 소통의 한 방법으로 얼마든지 다듬어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일 하면서 그림 그리기가 막연히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한창 바쁠 때면 아무래도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몰두하게 되고 그림 그리는 시간은 뒷전으로 미루게 된다. 하지만 뭔가 그림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고 이 닦는 행위처럼 오늘 있었던 일을 나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수단으로 본다면 일하면서 그림 그리기가 어렵지 않다. 오히려 마음속 응어리가 많거나 하소연할 게 많으면 많을수록 그림은 더 많이 자주 그리게 된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퇴근 후 예술가적인 삶은 회사원이라서 힘든 게 아니라 어쩌면 회사원이라서 가능한 축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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