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성찰의 시대
‘MZ 세대’가 대세다. 나 또한 그 세대에 속해 있지만, 태어난 연도로 세대를 구분하고 담론을 이어가는 게 맞는지 늘 고민한다. 내 주변만 하더라도 나이는 비슷하지만, 엄청난 꼰대와 MZ 세대의 전형이 뒤섞여있기 때문이다. 세대 구분은 세대 간 갈등을 부추겨 오히려 조직 구성원 간 통합을 어렵게 하기도 한다. 가끔 우리 부장님은 별 얘기 아닌데도 “아, 참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건가? 혹시 나 신고할 거야? 에이, 안 할 거지?”라고 반협박 조로 물어보시곤 한다(물론 꽤 불편한 농담(?)을 하실 때가 더 많다).
나는 요즘 같은 시대를 스스로 자기 말과 행동을 되돌아보고 옳고 그름의 개념을 재정립하는 ‘자기 성찰의 시대’라 부르고 싶다. 좀 껄끄럽고 이상해도 과거에는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넘어갔던 일들이, 이제는 더 이상 용인되지 않는다. 특히, 직장 내 괴롭힘, 갑질 등이 이슈로 떠오르면서 모든 세대가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이 조직 안정성과 지속 성장을 위해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내로라하는 대기업이나 공기업에서도 누군가는 과거에 해왔던 대로 갑질과 괴롭힘을 자행하고, 무기력에 빠진 피해자는 소중한 삶을 포기하기도 한다. 시대는 빠르게 변하는데 우리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겉으로는 '혁신'을 표방한 기업들도 뿌리 깊은 옛 관습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자기 성찰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동일한 교육을 받는다 하더라도, 사람마다 수용의 범위가 다를 수밖에 없다. 결국 진정한 자기 성찰은 꾸준히 공부하고 수양하는 ‘소수의 노력하는 어른들’만 가능하다. 그리고 그 소수의 선구자에 의해 사회는 조금씩 발전해 나간다.
조직의 변화는 더 어렵다. 수많은 개인이 공동의 목표를 추구할 때,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다면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조직의 분위기는 어떨까?
혹시 누가 본인을 갑질로 신고하지는 않을까 두려워 진짜 해야 할 말조차 하지 않는 부장님, 위에 치이고 아래에 치여 번아웃이 와버린 차장님, 팀에 일이 많든 적든 칼같이 본인 퇴근 시간만큼은 열심히 챙기는 사원. 그들이 한 부서에서 근무한다. 그러니 하루하루가 힘들고 문제투성이다. 서로를 탓하기 바쁘다.
나는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베이비붐 세대뿐 아니라 낀 세대인 X세대, 그리고 MZ 세대 모두에게 ‘자기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단순한 세대 갈등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전체의 흥망을 결정할 수도 있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허두영 작가는 일찍이 이러한 문제에 관심을 두고, 『요즘 것들과 옛날 것들의 세대 공존의 기술』(넥서스BIZ)이라는 책에서 세대 갈등을 넘어 세대 공존으로 나아가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한다. 작가는 요즘 것들과 옛날 것들의 유형을 여러 가지로 풀어냈는데, 재미있게 읽은 부분을 잠시 소개해볼까 한다.
먼저 ‘직장 내 꼰대들의 유형’ 중 일부다.
1. 서열주의자 : 주민등록증부터 내민다. 호구조사까지 끝나면 바로 반말을 한다. 친근함의 표현이 아니다. 서열이 정해진 것뿐이다.
→ 이런 사람 정말 많다. 처음엔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아 무례한 질문에도 그동안 살아온 내력에 대해 순순히 대답했지만, 이젠 저런 얕은 술수에 넘어가지 않는다. 서열주의자는 본인과 비슷한 점을 어떻게든 하나라도 찾아내고, 바로 호구 취급하며 이것저것 다 시켜 먹는다.
2. 나쁜 보스 : 후배 직원을 자신의 성공을 위한 도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후배 직원 육성 따윈 관심 없다. 제 밥그릇 챙기기에만 빠른 냉혈 이기주의자다.
→ 사수였다가 팀장으로 승진한 선배 중 한 분이 딱 이 타입이었다. 부려 먹는 데는 타고나서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직원들을 타깃으로 참 잘도 괴롭힌다. 사람 봐가면서 행동하는 게 제일 나쁜 듯.
3. 얼리버드 : 가장 먼저 출근한다. 늘 그렇다. 신념처럼 지킨다. 하지만 고성과자는 아니다.
→ 항상 1시간 이상 일찍 나와 자리를 지키는 팀장님. '업무에 엄청난 열정을 갖고 계시는구나'라고 생각했으나, 알고 보니 그 시간은 참으로 거룩한 시간이었다. 공책이 깜지가 될 정도로 성경책을 필사하시는 모습이란.
4. 녹음기 : 회식, 미팅 등 후배와 대화하는 자리가 생기면 녹음기를 재생하듯 똑같은 내용의 무용담을 되풀이한다.
→ 이런 사람이 상사면 정말 피곤하다. 술까지 좋아하면 최악이다. 어느 날 만취해서 뻗어버린 녹음기 부장님 대신, 그의 무용담을 후배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의 자괴감이란. 왜 내가 그의 20년 전 이야기를 이렇게 잘 알고 있는 거지?
5. 사이코패스 : 본인만 자신을 모르는 ‘미친놈’이다. 무조건 피하는 게 상책이다.
→ 사이코패스에게 잘못 걸리면 회사생활은 물론 개인 생활도 꼬일 수 있다. 무조건 멀리하고 무조건 피할 것. 그의 마수에 걸려들었다면 방법은 두 가지다. 최대한 잘 지내던지, 아니면 싸워서 억지로라도 거리를 두던지. 나는 억울하게 이용당하고 싶지 않아 후자를 택했는데, 사회생활에 방해물이 하나 더 생기는 결과를 감수해야 했다.
이와 반대로 ‘선배를 화나게 하는 직장 내 요즘 것들의 유형’도 있다.
1. 썩은 사과 : 매사에 선배나 회사에 불평불만을 쏟아내며 주위에 부정의 기운을 퍼트리고 다닌다.
→ 자기 일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선배들이 알려주지 않은 탓, 조직문화가 이상한 탓, 온갖 '탓탓탓'만 하다 하루가 끝난다. 중요한 건, 이런 사람은 절대 퇴사하지 않는다. 동기들은 다 나가도 자기는 끝까지 다닌다.
2. 가르쳐준 것을 여러 차례 물어보는 후배 : 스스로 해보려는 노력이 부족하고 매사에 상사에게 확인하려고만 한다.
→ 분명히 충분히 설명하고 알려줬는데, 반복적인 업무임에도 무조건 와서 물어본다. 아주 기초적인 것까지.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저는 선배가 알려준 대로 한 것뿐인데요'라는 답이 바로 튀어나온다. 정말 이러지는 말자.
3. 상사에게만 말하는 후배 : 보고 체계를 무시하고 직속 상사도 모르게 손위 상사에게 보고한다.
→ 직속 상사보다 손위 상사에게 보고하는 것이 본인의 성과에 더 좋으리라 생각해서 그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보통 손위 상사는 만난 지 얼마 안 된 당신보다는 같은 조직에서 오래 함께 일해왔던 직속 상사의 이야기를 더 신뢰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다들 한 번씩은 만나 본 적 있지 않은가? 어쩌면 그게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일지 모른다. 직장생활 10년 차의 나도 누군가에게 꼰대일 수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요즘 것들일 수도 있다. 책에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젊꼰이 되지 않기 위한 12가지 다짐’도 소개했다. 한편으론 뜨끔(?)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안도감을 느끼며 '소수의 노력하는 어른'이 되기 위해 다시 한번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져 보았다.
<젊꼰이 되지 않기 위한 12가지 다짐 中>
1. 직급이 낮거나 나이가 어려도 반말하지 않는다.
2. 나도 틀릴 수 있다. 내 얘기가 진리인 양 말하지 않는다.
3. 타인의 호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작은 것에 감사의 표현을 한다.
4. 나이, 성별 등으로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5. 진정성, 진심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쓰지 않는다.
6. 노력은 안 하면서 세상 탓만 하지 않는다.
(……)
작가는 책에서 요즘에는 권위를 강조한 과거의 리더십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시대의 변화로 정보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해지면서 조직의 수평화, 투명화를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리더가 필요한데, ‘혁신형 리더’, ‘육성형 리더’, ‘나눔형 리더’가 바로 그것이다.
이 중, 최고의 리더는 ‘육성형 리더’로, 대표적인 인물로 ‘넥스트 점프’라는 전자상거래 회사의 CEO 찰리 킴을 소개하고 있다. 그의 리더십에는 남들과는 다른 5가지 특징, ①코칭시스템 ②열린 마음 ③직원 역량 파악 ④사람의 연결 ⑤성장지원이 있다.
육성형 리더가 특히 더 주목받는 이유는 조직의 발전을 위해 개인의 성장과 성과를 중요시한다는 점에 있다. 조직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희생도 당연시했던 과거와 달리,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도 기꺼이 투자를 마다하지 않는 요즘 세대에게는 육성형 리더가 그들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하나의 조직은 수많은 개인으로 구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세대별 특성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치 그것이 모두 정답인 것 마냥 ‘베이비붐 세대는 이럴 거야’, ‘MZ 세대는 다들 이렇다더라’하는 편협한 시각을 갖는다면 오히려 세대 갈등만 부추기는 꼴이 될 것이다.
세대 갈등을 넘어 세대 공존을 향해 가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나는 꾸준한 자기 성찰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한 인간에 대한 진정한 공감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표면적인 화합이 아닌 진실한 화합이 이루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