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갭이어 동안 일과 삶의 방향을 새롭게 정하기 위해서는 나의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과거 ‘일하는 나’는 내게 주어진 일은 끝까지 책임지고 남들로부터 ‘잘했다’라는 말을 들어야 만족하는 사람이었다. 무능력하거나 무책임한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책임감은 어쩌면 완벽주의로 포장한 욕심일 수 있었다. 완벽해야 한다는 이유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찾아서 하지는 않았을까.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 그냥 내가 하고 말지’라는 생각이 결국 나를 지치게 했다. 그때 내가 추가로 투입한 시간과 에너지는 과연 그만한 가치를 창출했을까. 낮은 자존감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의 칭찬을 갈구하던 시간은 또 어떤가.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휴머니스트)를 쓴 김진영 작가는 일과 삶의 영점 조절을 위해 ‘회고하기’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회고’란, 지난 일을 객관적으로 돌아본다는 뜻으로, 과거를 ‘다시 응시’함으로써 상황과 사람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회고하기는 1) 계속 유지할 부분, 2) 개선할 점, 3) 새롭게 시도해볼 점, 세 가지 과정으로 진행된다. 작가는 ‘회고를 통해 내 삶에 대한 판단 기준이 오롯이 내 안에서 비롯되어 세워진다’며, 이것이 결국 ‘내 몸과 마음, 그리고 내 삶을 경영하는 가장 작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과거의 ‘나’는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번아웃으로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그만두면서 엄청난 상실감을 느꼈다. ‘일하는 나’로 살아온 지난 10년의 세월이 모두 사라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두려웠다.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건 퇴사 후 ‘회고하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일하는 나로 보낸 시간 덕분에 나는 한층 성장해 있었다. 일하며 배운 책임감, 성실함, 배려, 소통 능력, 유연성은 어디로 사라지지 않고 고스란히 내 안에 남이 있다. ‘계속 유지할 부분’이 꽤 많았다.
일하는 동안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단편적인 기술을 배우기 위해 애쓰기보다 일을 대하는 태도, 나만의 일하는 방식을 구축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 기술로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은 한계가 명확하지만, 일을 대하는 태도는 어떤 일이든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일을 하게 되더라도 잘 해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이 쌓여 나의 자신감과 자존감의 원천이 된다.
과거의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했다. 이 일이 무슨 쓸모가 있냐고, 지금 내 인생에서 중요한 건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지나고 나니 후회되었다. 회고하기 과정을 통해 상황을 다시 바라보았다. 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그 일이 가치 있는 일이 될 수도, 전혀 아닐 수도 있다. 남이 알아주는 것과는 아무 상관 없었다. 다른 일은 혼자 잘만 처리하면서, 유독 일에 있어서 만큼은 인정받기를 요구하며 까칠한 관점으로 바라보았다.
퇴사 후 종종 만나는 후배들도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상사가 인정해주지도 않는데 제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선배.”, “다들 앞서 나가는데 저만 뒤처지는 거 같아서 고민이에요.” 같은 종류의 이야기 말이다.
그럴 때면 과거의 내가 떠오른다. 여전히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안쓰럽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을 너무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일하며 쌓은 자산은 내 안에 고스란히 축적되어 있다고, 지금까지 해온 일을 남이 아닌 나는 긍정해주어야 한다고 작은 위로의 말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