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삶’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해결책으로 ‘워라밸’을 떠올렸다. 내 삶은 일에 치우쳐져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일이 곧 삶이고 일에 대한 평가가 곧 나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했다.
코로나19 이후 일과 삶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부지런하고 생산적인 삶을 뜻하는 ‘갓생’, ‘당신의 일이 당신의 삶은 아니다’라는 뜻의 ‘조용히 그만두기(quite quitting)’가 유행하더니, 중국에서는 이보다 극단적인 자포자기식 삶의 태도를 의미하는 ‘바이란’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불확실한 미래보다 오늘 하루의 보람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직된 사회 구조와 극심한 빈부격차, 치솟는 물가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만들었다. 당장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긴 한 걸까. 알 수 없는 미래보다 이 순간, 현재에 집중하려는 사람이 많아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장류진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창비) 속 동명의 단편소설에는 일과 삶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줄 타며 살아가는 직장인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합리성과 성과주의로 중무장한 자본주의 세계에서 눈치 빠른 그녀는 결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객관적인 자기 인식을 바탕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재빠르게 판단할 뿐. 그러다 ‘조성진 리사이틀 티켓’과 ‘홍콩행 비행기 티켓’처럼 삶에 숨통을 틔워주는 소소한 행복을 만나면, 그 힘으로 또다시 하루를 살아간다. 그 모습을 보며 ‘일의 기쁨과 슬픔’을 위해 애쓰던 나와 동료들, 그리고 동시대 모든 직장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소설 속 주인공처럼 가끔 주어지는 소소한 행복에 만족하며 살아가다가도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정말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한 번 시작된 의문은 꽤 오랜 시간 동안 해소되지 않았다.
대충 일할 수 없는 이유
내게 ‘워라밸’은 일종의 난제였다. 일하다 보면 퇴근 후 업무 연락을 주고받아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프로젝트 일정에 따라 주말이나 휴일에 출근하는 경우도 많았다. 불면증에 잠을 뒤척이면서도 내일 해야 할 업무를 자연스레 떠올렸다. 그럴 때면 일 때문에 내 개인의 삶이 엄청나게 손해를 본 것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 ‘일은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니 대충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일과 삶, 그 어느 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성숙한 어른이 갖춰야 할 좋은 심리 습관』(다연)을 쓴 하버드대 심리학 박사 류쉬안은 ‘대충대충 살수록 염세주의에 빠지기 쉽다’며 ‘자신에게 어떤 요구를 하느냐에 따라 삶의 품격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황보름 작가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클레이하우스)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남을 위해 일을 하는 순간에도 나를 위해 일해야’ 하며, ‘나를 위해 일을 하니 대충대충 하면 안 된다’고.
내가 ‘대충 일하겠다’고 마음먹은 후 일과 삶 모두에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루의 대부분을 일터에서 보내면서도 퇴근 후의 시간만 소중한 내 삶이라 생각한다면 만족하며 살 수 있을까? 일하며 보내는 최소 8시간을 전부 버리면서 말이다. 그런 반쪽짜리 삶이 만족스러울 리 없다. 그렇다면 그 시간에도 내가 원하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내게 주어진 인생은 단 한 번뿐이기에
번아웃에 시달렸을 때, 회사에서 채우지 못하는 성취감을 외부에서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일과 삶의 균형’이 해결책이 되진 못했다. 일에서 채우지 못한 보람을 개인의 삶에서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려면 일상이 풍성하고 화려한 경험으로 채워져야 할 것 같은데, 매일 그렇게 살 수는 없었다.
황보름 작가는 위에 언급한 동명의 소설에서 ‘일하는 나’로 살 때 잊지 말아야 할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일을 하는 순간에도, 일을 하지 않는 순간에도 나 자신을 잃지 않아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일을 하는 삶이 만족스럽지도 행복하지도 않다면, 하루하루 무의미하고 고통스럽기만 하다면,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나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인생을 살고 있으니까.
두 번째 갭이어를 보내며 나는 내게 맞는 '일과 삶'의 형태를 고민하고 있다. 더 오래, 건강하게 일하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