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지아나 Oct 20. 2022

지금, ‘두 번째 갭이어’ 중입니다

나를 마주하는 용기


우리는 자신과의 대화에 얼마나 익숙한가?

   

나는 번아웃으로 ‘더 이상 일할 수 없다’는 결과를 받아들이고 나서야 나와 진정으로 대면하게 되었다. 올 초, 불가항력적으로 퇴사하고 갭이어를 갖지 않았다면, 여전히 마음이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못했을 것이다. 나와는 언제든지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착각했다.


일하는 사람의 일상은 일로 시작해 일로 끝난다. 일터에서 숨 가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오늘 하루도 이 정도면 잘 보냈다고 위안한다. 어제는 옆 팀에서 뒤늦게 업무 요청을 하는 바람에 시간을 허비하고, 오늘은 상사의 기분이 안 좋아 감정노동을 좀 하긴 했지만.


마음이 하는 이야기는 눈 한번 질끈 감으면 외면할 수 있다. 그렇게 점점 일상에서 내가 소외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보내며 모든 것이 불안하고 외로울 때, 가장 많은 도움이 된 책이 있다. 바로 김진영 작가의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휴머니스트)이다. 그는 ‘나와 관련된 일들의 답은 사실 대부분 내 안에 있다’고 말한다. 물론 ‘그동안 ‘답이 없다’ 라거나 ‘답을 모르겠다’라고 외면해오던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럴수록 ‘내 안의 이야기들을 얼마나 솔직하고 처절하게 마주하느냐에 따라 흔들린 이야기의 중심을 다시 세울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조언한다.


지금 필요한 건 나를 마주하는 용기.




정답은 없다


이 시간을 ‘두 번째 갭이어’라고 부르기까지 오랫동안 고민했다. 퇴사하고서도 몇 달이 더 걸렸다. 수많은 단어와 문장이 머릿속을 떠돌아다녔지만, 명확한 언어로 풀어쓰기가 어려웠다. 그동안 내게 힘을 준 건 역시 글이었다.


나보다 먼저 일과 삶의 공존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날카로운 언어로 표현한 다른 분들 덕분에 나도 한 글자씩 풀어낼 수 있었다. 솔직히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내 이야기면서도 그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수없이 들은 동료들의 고민이자 그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갭이어를 보낸 지 어느덧 여섯 달이 되었다. 계획한 시간의 절반을 지나온 지금, 아직 일터로 돌아갈 자신은 없다. 대신 현재를 사는 삶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며 일과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다.


그런 나를 보며 ‘지난 10년 동안 정말 최선을 다해 일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끝까지 해 본 경험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힘이다. 그러니 급히 서두르지 않고 한 걸음씩 걸어 나가다, 만나는 질문에 답을 하며 텅 빈 마음을 채워볼 예정이다.




일과 삶에 대해 나만의 정의를 내리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언제까지나 유효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변화하려는 나의 의지를 확인하고 그에 따라 유연하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어쩌면 두 번째 갭이어 이후에도 인생에 몇 번의 갭이어가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또다시 삶의 방향을 수정한다고 해도 괜찮다. 일과 삶의 방향을 다시 내게 맞게 조정하는 시간이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더 오래 일하기 위한 시간, 건강하게 성장하는 시간. 그런 시간이라면 말이다.


지금은 잘 모르지만, 열심히 산 우리에겐 힘이 있다.


‘언제든 다시 일어설 힘’이 있다.

이전 09화 ‘일과 삶’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