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깨달았을 때, 저는 이미 번아웃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당장 무엇을 하며 먹고 살지 결정되지 않은 ‘불확실함’과 잠시 회사에서 벗어나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확실함’이 공존하는 시간이었어요.
준비 없는 퇴사에 대한 두려움은 저를 계속 일하게 했고, 고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건강은 점점 안 좋아지기 시작했지요.
퇴사 후,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시간을 보내며 번아웃과 관련된 다양한 글을 찾아 읽었습니다.
저 혼자 벌이는 외로운 싸움이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에는 저보다 앞서 같은 고민을 하고 현명한 대처로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한 많은 선배님이 계셨어요.
그리고 그 글 속에서 다양한 우리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퇴사를 결심하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30대 A씨
회사에 남아 그 안에서 자신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20대 B씨
이직이나 사업을 통해 자신의 전문성을 극대화하며 삶의 보람을 찾은 40대 C씨
그런 우리의 모습 덕분에 저는 지난 1년간 번아웃으로 인한 무기력과 소진에서 벗어나 저만의 방식으로 일상을 회복하는 방법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회복의 중심에는 ‘내’가 있음을 깨달았지요.
새로 시작한다 해도 결국 언젠가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테니까요.
또한 '사회 기준에 따른 나'와 '내가 인지하는 나'와의 간극이 클수록, '이상적인 나'와 '현재의 내'가 동떨어져 있을수록 번아웃을 겪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때의 저는 지금 당장 저만의 삶의 의미와 방향을 재정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던 거죠.
번아웃은 나를 외롭게 만듭니다.
저는 오랜 시간 문제없이 회사생활을 해왔지만, 어느 순간 나만 동떨어진 느낌, 조직에 동화되지 않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조직에 속해있지만 외로웠죠.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예요. 내 삶에 무언가 큰 변화가 일어났고, 앞으로 내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 나 자신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게 될 거라는 걸요.
회사에서 퇴사한 후에는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며, 자유로움이 주는 해방감과 극도의 외로움을 번갈아 느꼈습니다.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들을 들여다보며 한동안 꽤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요.
심리학자 리처드 테데스키는 ‘트라우마 후 성장’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며,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 위기, 트라우마 같은 부정적 사건이 꼭 나쁜 결과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개인의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좋은 결과도 동반한다고 이야기하죠.
번아웃에서 퇴사로 이어지기까지의 과정, 퇴사 후 일상을 다시 회복하기까지의 과정은 지금까지 평범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해 온 제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는 순간이었습니다.
불안하고 모호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던 지난 1년은 나답게 성장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온전한 외로움에 집중한 채, 1) 나만의 '강점을 인식'하고, 2) 앞으로의 삶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며 3) '정신적인 성장'을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삶을 회고하며 사람과의 관계, 사회와의 관계, 나 자신과의 관계, 그리고 나를 둘러싼 물건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새롭게 의미를 정립해 보게 되었죠. 4) '관계 개선'을 경험하니, 5) '삶에 대해 감사'한 마음 또한 저절로 우러나게 되었어요.
나다운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매일 소소한 프로젝트를 실행하면서 저는 제 삶의 의미와 가치, 일상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만난 저의 새로운 삶의 소명은 '내가 다른 분들의 도움을 받아 나답게 일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처럼 다른 분들께도 나의 경험을 나누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그런 간절한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도 다시 글을 쓰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다름 아닌 ‘남의 시선' 때문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다음에 글을 써야 하는 건 아닐까?’
‘누군가에게 무엇으로라도 인정받은 후에 나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건 아닐까?’
나답게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일상을 회복해 나가고 있음에도 여전히 타인의 허락을 구하고 있는 저를 보며, 스스로 더 용기를 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제가 힘들었을 때 가장 큰 힘이 된 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이야기였으니까요.
퇴사 후, 최선을 다한 회사생활에 더는 미련이 없어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게 힘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막연한 미래가 두려웠죠.
원래 인간은 모호한 상황을 견디기 어려워한다고 해요. 그러니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막연한 미래가 두려운 건 당연한 일이겠죠.
그럴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불안을 느끼고 인과관계를 찾아 정답과 결과를 명확하게 정리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제가 나다운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번아웃, 자기 발견, 마음챙김 등을 공부하기 시작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에요.
모호한 걸 싫어하는 인간의 본능 덕분에 저는 번아웃 이후 모호한 '나'를 명확한 '나'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나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주도적으로 공부하고 글을 쓰게 했고, 나답게 일상을 기록하고 회고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끔 했습니다.
그런 시간 덕분에 저는 번아웃으로 인한 무기력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고, 일상을 단단하게 만드는 매일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게 되었어요.
확실한 건, 나다운 매일이 나다운 삶을 만든다는 겁니다. 뿌리 깊은 하루하루가 단단하게 나를 지탱할 때 나는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또 어떤 일상을 통해 얼마만큼 성장할 수 있을까요?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의 건강한 일상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