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밖에 난 몰라가 아니라
청춘은 순수하고 때로 무모하다 싶은 상황에도 앞 뒤 가리지 않고 뛰어든다. 또한 그렇게 해야 진짜다, 라고 생각할 수도 물론 있다. 사랑이 바로 그렇다. 목숨까지 걸고, 내 모든 걸 걸겠다, 라고 맹세하는 사랑, 물론 멋있고 낭만적일 수 있다. 사랑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나에겐 사랑밖에 없다고 소리 높여 외칠 수도 있다. 그런데, 인생을 좀 살아보니 “사랑밖에 난 몰라”가 되서는 좀 곤란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태도는 뒤집어 보면 사랑이라는 미명 뒤에 숨는, 즉 현실 도피적인 측면도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그런식은 곤란하다. 적어도 마지막 하나의 패 정도는 쥐고 있어야 한다.
한때 우리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홍콩영화, 그중에서도 청춘 느와르 영화, 좋았다. 앞뒤 재지 않고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세상에 거칠 것 없이 반항하다가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는 수많은 영화들, 그들의 사랑에는 우회가 없다. 무조건 직진이다. 그런 모습은 강렬한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며 울림을 자아냈다. 그런 영화들에는 소위 비극적 낭만성이 분명 있다. 가령 그 시절 유덕화는 항상 비장한 최후를 맞는다. <열혈남아>, <천장지구>, <지존무상> 속 유덕화, 비극적 낭만성의 끝을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 그것이 현실이 될 순 없고 그렇게 되어선 정말 곤란하지 않겠는가.
어떤 이는 사랑도 정치처럼 이리저리 짱구를 굴리며 꼼수를 써야한다고도 말한다. 그래야 내가 손해 안보고 상처도 안 받는다는 셈법일 것이다. 노우, 그건 아니다. 아니 가장 순수해야 할 사랑에서까지 그렇게 계산기를 두드리며 얍삽하게 군다면 어디 쓰겠는가. 그건 분명히 아니다. 하지만, 인생을 조금 살아본 입장에서 내 아이, 내 조카, 그리고 내 젊은 학생들에게 그런 조언은 꼭 하고 싶다.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사랑하되, 그게 삶의 전부인양 모든 걸 올인하지는 말라고 말이다. 그것이 초래하는 결과가 종종 너무 아프고 소모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요컨대 마지막 보루, 마지막 패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