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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_ 또다시 가을이 오고

언제든 다시 꺼내볼 수 있는 침대 밑 낡은 인형들처럼

by 윤지아

금방 9월이 찾아와 우진이는 다시 학원수업으로 바빠졌고, 나도 개강을 했다. 이번 학기는 18학점으로 여유로웠다.

지난주 나는 처음으로 토익스피킹 시험을 봤다. 각종 기업의 인적성평가 공부를 위한 책을 구입하고, 내 지성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취업 공부를 했다.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가 사치스러운 도서관 열람실은 나 같은 청년들로 한가득했고, 자그마한 기침소리 정도만 들려왔다.

오즈의 마법사의 깡통로봇처럼 가슴이 비어버린 것 같은 느낌.

나의 목표는 과연 무엇인 걸까. 목표가 있다면 다행이거니와, 그와 상관없이 멍하니 앉아서 취업 도서를 넘기고 있는 모습들이 많이 보였다.

"됐어. 내가 가던지, 아님 너 졸업하면 이리로 데리고 올 거야."

그 아이의 목소리가 아직 들리는 듯하다. 멀지 않은 과거였다. 진철이와의 일상들도.

그날 이후 진철이와는 또 연락이 끊겼고, 나는 애써 이으려 하지 않았다.


9월 초즈음 페이스북에 진철이가 올린 의미심장한 글을 보았다. 짧은 영어였다.

'꿈속에 네가 있었는데, 대체 왜일까.'

나에겐 연락한 통 없는 그 아이의 꿈속 그 사람.

아마도 나는 아닐 거라는 생각에 얕은 한숨이 나왔다.

그 아이와의 이야기는 나에게 비현실적인 소설이었다.

이제는 떠날 일만 남은 대학 강의실에서 수업을 들으며, 문득 그 아이와 나눈 말들이 떠오를 때면, 그냥 황홀하게 아름다운 소설책 한 권을 몰래 읽은 느낌이 들었다.

그 소설 속에 나는 평범한 여주인공이었고, 그 아이는 나를 구원해 줄 완벽한 남자주인공이었다. 취업준비, 학점관리, 졸업시험 등 감정 없이 여러 가지 몰두해야 할 일들이 닥쳤음에도 문득문득 그 소설 속 장면의 대사들이 떠오를 때면, 그 아이는 일종의 내 도피처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아이의 일상과 미래는 런던에 있다.

나의 과거, 현재, 미래의 배경은 모두 한국을 기준으로 맞춰져 있다.

영원히 끼고 살고 싶어 할 정도로 유별난 사랑을 보여주시는 부모님께도, 딸의 미래가 한국이 아닌 곳에 있을 수 있다는 상상은 아마 해본 적 없으실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가끔 템즈강변에 앉아 야경을 바라보는 미래를 상상한다.

단 한 번도 나의 일상이 되어보지 못한 그 나라는, 단 한 번도 나의 동경의 대상이 아니었던 적이 없다.

그리고 이제는 그 아이의 나라라는 점은 더욱더 로맨틱하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이룰 수 없는 꿈이어도 상상은 할 수 있음에, 그 꿈같은 장면들을 떠올릴 때면 아주 잠깐이라도 그것은 나의 일상이 되곤 했다.

비록 성북동 학교 강의실에 앉아있다한들말이다.

그 아이에 대한 사랑의 기억이 옅어졌더라도, 사랑했던 시절의 추억은 아름다웠던 책 한 권이 되어, 언제나 들쳐볼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그날의 약속들이 다 무의미할지라도, 다시 되내어볼 수 있음은, 이미 내뱉어진 대사로 박제되었기 때문이다.


오지 않는 카카오톡. 그 아이와의 대화목록은 저 아래로 내려가져 있다.

이런 우리의 일상이 더 이상 아프지 않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무 감정이 없다. 무의 상태이다.

이런 일상이 힘들지 않다는 사실이 더 슬픈 일일 것이다.



올해도 추석이 좀 이르게 다가왔다. 9월 중순이었다.

아직은 더운 날씨. 큰 집에 갈 때마다 매년 이맘때면 여름옷과 가을 옷 중 뭘 입어야 하나 고민하곤 했다. 이번에는 여름에 더 가까웠다.

작은오빠는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과 영화를 보자며 usb에 영화 '써니'를 불법 다운로드하여서 TV뒤에 끼웠다. 다소 충격적인 욕설 장면들에 큰 엄마는 기겁을 하며 어후 계집애들을 연발했다. 딸이 없는 큰엄마의 남녀차별은 언제나 거슬렀지만, 이 영화에서 몰려다니는 여자아이들이 하는 나쁜 짓들과 욕설은 큰 엄마의 남녀차별을 더 정당화시켜주는 듯하여, 할 말이 없었다.

저 계집애들 좀 보라며, 어머머 타령을 하던 큰 엄마는 어느새 코를 골며 잠이 들어버렸고, 오빠와 나, 엄마, 남동생만 영화를 끝까지 보았다.

주인공이 좋아하던 첫사랑 남자를 나중에 찾아가 가게에 있던 그 아들의 모습을 보고 너무 닮아 놀라는 장면. 결국 첫사랑은 만나지 않은 채, 가게를 뛰쳐나오는 장면.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하염없이 행복하게 울던 장면이 깊이 다가왔다.

그 눈물이 행복해 보였던 것은 아마 과거를 과거 자체로만 간직할 수 있음에 대한 감사.

그 온전한 추억을 망가뜨리지 않았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때의 기억은 그대로 언제까지나 온전히 내 것일 수 있기 때문에.


명절이 되니 또다시 그 목소리가 떠오른다. 우울해졌다.

심장이 없던 깡통로봇이 갑자기 느껴지는 가슴의 온기와 눈물에 당황하듯 그렇게 난 또 한 번 당황했다.

지독히도 안 잊혀지는 그 목소리.

그 목소리가 남긴 내 마음의 파동은 멀지 않은 과거에서 온 것이었다.

"아니 연락도 없고, 카톡도 씹으면서, 첫사랑 좀 만날 수도 있지~ 안돼?"

"당연히 안되지. 적당히 해~"

바로 지난달이었다. 경고를 하는듯한 다정하지만 단호했던 목소리.

집으로 돌아왔다. 추석특선영화로 '엽기적인 그녀'를 하고 있었다.

'저게 언제 때 영화인데...'라고 생각하며 소파에 앉아 끝까지 다 봐 버렸다.

자기가 나오는 영화를 봐야 한다며, 차태현이 나왔던 영화를 골랐던, 작년 겨울의 모습이 생생히 떠올랐다.

영화를 보기 전 했던 심리테스트 질문 중 '나는 한번 헤어졌던 사람과 다시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라는 질문을 보고는 태연하게 "흠, 이건 아닌 것 같아!~ 자 다음질문!!!!이라고 외쳤던 네 모습.

이 영화 속 차태현과 너무 닮은 그 아이의 모습이 너무 생생해 가슴이 시렸다.

영화는 저녁때가 되어서야 끝났다.


우리 가족은 점심때 먹은 한정식이 너무 배불러서 대충 저녁을 때웠다.

저녁을 먹고 난 후 잠깐 정식이와 카카오톡을 주고받았다. 명절이라 더 심심하다는 이야기. 명절만 되면 한국이 더 생각난다는 이야기 등.

나도 비슷한 편이었다. 명절만 되면 종우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시골에 내려간다고 했는데, 워낙 친척들이 많이 모여 재밌게 보내느라 그런지 나는 안중에도 없었다.

반면 우리 집은 명절에 오히려 더 외로웠다. 큰 집이 근처에 있기도 했고, 언제나 일찍 헤어졌다.

사실 일찍 헤어지는 게 더 좋긴 하다. 오래 있어봤자 좋은 꼴은 못 보기 때문이다.

큰 집 어른들은 옛날분이셔서 주로 상처가 될 질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곤 했고, 오빠들은 언제나 컴퓨터 게임만 하느라 바빴다. 이 모든 게 못마땅한 아빠는 언제나 서서 안절부절못하며 거실을 돌아다니기만 하고, 서둘러 집에 가자고만 하셨다.

점심도 안 먹고 빠르게 큰 집에서 나오면, 언제나 우리 가족끼리 점심을 먹으러 인천 공항을 들렀다. 공항이 일터인 아빠는 자주 가는 식당으로 우리 가족을 안내하곤 했고, 우리 가족은 그렇게 우리끼리 보내는 명절의 점심에 만족했다. 그러나 언제나 집에는 저녁이 되기 전에 돌아오기에 여유 시간이 많이 남곤 했다.

오랜만에 정식이와 카톡을 주고받다 보니, 오랜만에 시드니 사진을 정리하고 싶어 컴퓨터를 켰다. 1000장이 넘는 사진들. 사진 속 웃는 내 모습 속에 느껴지는 행복은 아마도 여행의 행복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니리라.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 아이를 사랑하거나 떠올리거나 그리워하는 내 모습이 가장 예뻤던 때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때만 예쁜 게 아니라, 마음에 품고 오래도록 기억하는 그 모습까지 모두 말이다.

하버브리지 사진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며 저녁 시간을 보냈다. 전화가 들어왔다.

'발신자번호표시제한' 시계를 보니 11시 40분. 오늘은 정식이가 전화를 준다고 했었기에 별다른 의심 없이 마우스를 잠시 내려놓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나야...."

한참 뜸을 들이다 말을 뗀 그 목소리는. 정식이라기엔 너무 차분했다.

그러나, 진철이라기엔 너무 낮은 목소리.

"누구세요?"

나는 형식적으로 물었다.

"........ 됐어. 끊어"

그 순간 난 진철이의 목소리를 못 알아들었음에 당황했다.

"어! 진철아!"

다급하게 불러본 그 이름. 오랜만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오늘 하루종일 떠올렸던 그 목소리를 어떻게 못 알아들을 수가 있지. 진철이는 장난스럽게 상처받았다고 말하며, 쉴 때 다시 전화를 주겠다고 했다.

1시. 브레이크타임이 되자 어김없이 걸려온 그 아이의 전화. 평소와 똑같다.


한 달의 공백에 대하여 그 누구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저 명절인데 오늘도 큰집에 갔었냐는 그 아이의 질문. 너도 오늘 외삼촌네 식구와 즐겁게 보냈냐는 나의 질문. 날씨에 대한 이야기. 흔하고 평범한 이야기들. 내일 아침 깨워주겠다고 하며 전화를 끊은 네 마지막 말.

그렇게 기다리던 목소리. 하루종일 고대하던 목소리였다.

그러나 추억이 다시 재개된 이상 그것은 추억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더 이상 이 현실을 이어나갈 수 없다. 그러나 이제는 모르겠다.

마지막이라는 것은 죽기 직전에나 유효한 것이다. 살아있는 한 언제든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침대 밑 넣어둔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인형들처럼. 물론 그때와 같은 기쁨과 환희를 주지는 않겠지만, 언제든 다시 꺼내볼 수 있는 그런 낡은 인형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의 사이는 그렇게 빛이 바랜 인형과 같아졌다.

이제는 서로 지쳤음에도 이 관계를 잇고 있음을, 모른 척하고 있음에 더 힘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진철이는 정말 언제나처럼 페이스타임을 주었고, 우리는 그날 처음으로 싸움이라는 것을 했다.

싸움이 정확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그저 확실한 건 그 아이는 결국 눈물을 흘렸고, 휴대폰을 아래로 내려버려 카메라 속에서 그 아이가 사라졌다는 것. 끝이라는 것에 대하여 인정하지 않아 했다는 것. 그저 그렇게 상처를 받았다는 것.

난 그 아이에게 처음으로 상처를 주었다는 것 정도이다.

사실 그 마지막 장면에 대하여는(마지막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기로 했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언제나 행복한 일만 기록하는 내 일기 쓰기의 습관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날의 일에 대해서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굳이 기록하지 않아도 잊혀지지 않을 섬광기억'

내가 틀렸다. 난 잊었다. 정말이지 이상하지만, 난 그 아이에 대한 기억은 좋은 기억만 남기고 나쁜 기억은 모두 선별하여 버리는 것 같았다. 이 얼마나 주관적인 기억법인가.

아마도 헤어지자고 한건 아니었던 것 같다.

그저 이런 애매한 관계에 대하여 정리하고 싶다는 내용이었으리라.

시간이 흐르고 나니, 남는 것은 그저 그 아이의 울던 눈과, 카메라 앵글 밖으로 사라질 때의 그 어지러웠던 흔들리던 화면 속 영상.

그 아이와의 끝은 분명히 슬펐지만, 언젠가는 당할 일이었다.

다만, 그 아이는 그 일을 해낼 모진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 의외였고, 영원히 잊지 못할 거면서 그렇게 매몰차게 내가 끝을 선언했다는 것도 의외였다.

그 장면에 대한 후회는 없지만 오해는 남았다.

아직도 난 그 아이를 사랑하기에. 언제까지나 사랑함에는 변함없기에.

그러나 확실 해 졌다.

그저 이러한 끝맺음으로, 더 이상 그 아이를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으며, 목소리를 못 알아들어 당황할 일도 없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단 하나 아쉬운 점은 앞으로 난 무엇을 품고 살아가야 할지, 단지 '너'라는 기다림만으로도 견딜 수 있었던 수많은 날들이 벌써부터 그리워질 뿐이다.


그 일이 있고, 두 달이 지나 11월이 되었다. 그리고 확실히 알았다. 모든 SNS에 우리는 친구 사이가 끊어져 있음을.

조용히 카카오톡 대화창을 지웠다.

그렇게 끝난 것이다. 정말로.

다만 단 한 곳. 그 아이가 더 이상 로그인하지 않는 곳.

싸이월드의 대문 사진엔 아직 작년 겨울 커피프린스에서 같이 찍은 사진이 걸려있었다.

회색 터틀 폴라티를 입은 나와, 하얀 셔츠 위에 회색 니트를 입고 까만 비니를 쓴 채 환하게 웃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아직 같이 보였다.

그리고 방명록에 신규 메시지가 떠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의 대학동기였다.

"진철아 잘 지내? 여자친구 얼굴이 낯이 익네~"

난 그 방명록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해 12월 마지막날, 나와 종우는 홍대 커피프린스에 갔다. 그곳에서 난 단호박라떼를 시켰다. 그리고 일식집에서 돈부리와 우동을 먹었다. 2010년 마지막 날 진철이와 갔던 똑같은 코스였다.


- 동일한 이름의 파일이 존재합니다. 새 기억으로 덮어씌우시겠습니까-
- Yes / No


새삼 작년 12월부터 올해까지 1년간의 진철이와의 두 번째 인연이 참 소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과 똑같은 장소에 똑같은 것을 먹으며, 종우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여전히 2010년 12월 31일의 파일명은 영원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파일 덮어씌우기는 실패했다는 것을 안다.

작년 겨울 그 아이가 맛이 없다고 했던 그 단호박라떼가 참 달다.

왜인지 슬프지는 않다. 더 이상 죄책감도 없다. 입술까지 따뜻해지는 그 단호박라떼의 연노랑 거품은 여전히 보드라웠다.

특별했던 2011년. 나의 마지막 대학생활.

그렇게 2012년이 되었고, 난 스물일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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