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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아 Aug 08. 2024

내 인생은 삼성을 그만두고 나서 시작되었다.

‘평생직장’ 은 나에게 긍정적 단어가 아니었다.


난 스물셋에 삼성생명에 입사했다.


벌써 15년이 훌쩍 지난 일이다.

비록 대졸 3급 공채는 아니었지만, SSAT를 통과한 4급 공채로 일명 “평생직장” 이 가능했다.

같은 부서로 발령받은 동기만 사십여 명이었다.

2주간 신입사원 합숙연수를 받으며, 이곳에서 잘 해내리라 다짐했고 희망에 가득 찼다.

연수를 마치고 본사로 발령받아 업무를 하기 시작했다.

9-6제에 정장차림, 삼성 배지, 사원증은 애사심을 느끼기 충분했고, 회사는 대한민국 최고의 대기업답게 완벽한 복지를 제공했다. 최신식 시스템과 깔끔한 건물, 나이스한 사람들과 상사, 자상한 선배와 동기들까지 모든 것은 외부에서 보기엔 완벽했다.


그러나 업무는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


어릴 적 꿈을 이루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적어도 “돈을 버는 일”, 또는 “취업” 그 자체로만 꿈을 이뤘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배정된 일, 반복되는 일상 공무원 같은 이런 안정적 삶이 너무 재미없고 지겨웠다.

심지어 이 일를 “평생” 해야 한다니.

어린 나이 “평생직장“ 속에 갇혀, 더 이상 무엇이 되지 않아도 되는, 아니 누군가에게는 이미 다 이룬 것일 이 안일한 상태.

그게 너무 싫었다.

“대기업 보냈으니, 난 이제 할 일 끝났어~“

아빠가 주변에 말하는 소위 “딸자랑”은 내 마음을 더 무겁게 했다.

내가 되고 싶던 것.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은 “대기업 회사원”이 아니었다.


그렇게 난 1년 만에 퇴사했다.

퇴사 전 부서장 상담 때 파트장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대한민국 최고의 회사를 퇴사하는 것이니, 여기보다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할 수 없을 것이다.”

더 좋은 곳. 

더 좋다는 건 누구의 기준인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것이 나에게도 좋을 것이라는 판단은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 아닌가?

물론, 나를 붙잡으려 하신 말씀이었고 틀린 말도 아니었지만, 그 말은 나에게 더 독한 오기를 심어준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 날, 부서원들 앞에서 인사를 할 때 내 눈에서는 알 수 없는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아마 그 눈물은 아쉬움과 불확실, 그리고 후련함과 불안함 등이 뒤섞인 복합적인 의미의 눈물일 것이다.

난 그 이후 여섯 번이나 더 퇴사를 경험했지만 눈물을 보이며 퇴사한 곳은 이곳이 유일했다.

첫 직장 그 이상의 의미일 것이다.


이후 난 1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 꿈을 이루기 위해 다시 대학에 진학했다.

섣불리 했던 이른 취직은 내 꿈이 무엇인지를 더욱 명확하게 해 주었고, 그 덕에 법대를 수석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본부장님께 연락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최고의 직장을 그만둔 만큼 이제 난 진짜 내 꿈을 이룰 거라고

그리고 파트장님은 내 삶을 기꺼이 응원해 주셨다.



그러나 재취업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졸업 후 무려 1년을 놀았다.

물론 토익에, 오픽에, 적성평가 공부에 굉장히 바빴지만 결론은 논 것이다.

대기업 입사지원서를 닥치는 대로 넣었지만, 서류통과도 어려울뿐더러 그나마 통과한 곳도 적성평가에서 떨어지기 일쑤였다.

중견기업 입사지원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난 현대계열사 계약직으로 간신히 재 취업했다.


그렇다.

결과적으로만 보면 ‘삼성 정규직을 버리고, 현대 계약직으로 다운그레이드했네~ ’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 이후부터의 이직도 중견, 중소, 스타트업 순으로 점점 더 작은 회사로 이직하는 양상이다.

누군가는 이를 보고 실패한 이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내가 한 가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같은 결정을 할 것이라는 것이다.


또다시 삼성을 관둘 것이고

또다시 현대 계약직을 선택했을 것이고

계속되는 이직 속에서 어느 회사 하나 버릴 것 없이 그대로 다 똑같은 결정을 했을 것이라는 거다.

이 모두가 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감사하고 필요한 과정임이 분명하기에



취업성공의 기준은 회사의 크기나, 평생직장 여부가 아니다.


아 물론, "대기업 회사원"이 꿈인 사람과, "평생직장 갖기"가 꿈인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다만, 나에게는 특정 회사의 정규직 직원이 되는 것보다 내가 그곳에서 무슨 일을 하느냐가 더 중요했을 뿐이다.


회사의 크기에 따라 같은 팀이라도 내가 그곳에서 무엇을 할지는 조금씩, 아니 많이 달랐다.  

큰 회사에서는 그 거대한 톱니바퀴의 굴레에 맞춰 하나의 작은 부품으로 쉴 틈 없이 돌려야 한다.

내가 돌릴 수 있는 범주는 작으며, 반복된다.

혼자 결정할 수 없고 수많은 기안과, 품의가 필요하다.

그 대신 난 책임에서 어느 정도는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작은 회사에서의 나라는 존재는 직급에 비해 더 큰 역할이 주어진다.

어쩔 땐 내 범주에서 벗어난 일까지 맡아야 한다.

심지어 책임져야 할 상황까지 더 넓어지고 부담스러워진다.

둘 다 경험해 보니 난 후자에 더 재미를 느끼는 성격이었던 것이다.


결국 하루의 절반 이상 있어야 하는 곳이라면, 기왕이면 내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곳.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에 즐거움을 느끼는지, 어떤 일에 보람을 느끼는지. 힘들지만 보상이 큰지 등등. 자신만의 기준을 충족하는 취업이 성공한 취업이라고 말하고 싶다.


앞으로 나의 이직의 과정들에서 깨닫고 느낀 점들을 기술해 나가려 한다.

누군가에게 여섯 번의 이직은 적으면 적고, 많다면 많을 수 있다.

특히 인사팀 면접관에게는 서류에서 걸러버릴 이력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도 결국 면접자가 되어 또 다른 회사를 꿈꿀 수 있을터.


내 글은 면접에서 무조건 붙는 법을 알려주진 않을 것이다.

다만 모든 면접에서 붙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하려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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