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회 최고의 인기는 계주.
그중에서도 학부모 대 선생님들의 달리기는 다들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댔다.
유독 성대가 좋은 나는 미친 듯이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아빠가 계셨기 때문에.
울 아빠는 달리기를 아주 잘하셨다.
선생님들 중에 제일 잘하신다는 체육 선생님들 보다도 훨씬 잘 달리셨다. 큰언니가 국민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남동생이 6학년 졸업할 때까지 12년을 학부모 대표로 달리셨다. 그 12년 동안 학부모 대표가 늘 이겼다. 반 바퀴 넘게 차이가 나도 아빠가 바통을 받는 순간 역전이다. 정말 바람처럼 달리셨다. 그 순간만큼은 아빠가 최고로 멋져 보였다.
"야, 야, 울 아빠다. 울 아빠! 울 아빠 봤나?"
난 친구들에게 자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60대 후반까지 마라톤을 하실 정도로 달리기를 좋아하셨다. 아빠 덕분에 사위, 손주들까지 온 식구가 경주 마라톤 대회를 나가기도 했다.
그런 아빠가 더 이상 달리지도 걷지도 서 있지도 못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아빠 앞에서 울지도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손이 저려 펴지질 않을 만큼 아빠 다리를 주무르는 것 , 어쩌다 발가락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40대 중반인 내가 6인실에서 춤을 추며 아빠를 웃게 해 주는 것뿐이었다. 간병하는 엄마도 아빠도 고통만 가득했던 시간.
그런데
악몽 같던 그때가...
지금은 너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