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버스의 시작 남해 2018년
시골버스_남해편 Ep1.
다음날,
마을 사람들이 모두 부둣가로 출근을 했다.
서울이나 여기나 업무가 바쁜 건 매한가지다. 우리는 컴퓨터로, 이들은 몸으로 일을 한다. 우리가 일을 따내는 것처럼, 이들도 아침 경매에서 매일 신선한 활어를 갖기 위해 그들의 수화로 눈치게임을 시작한다. 족히 몇십 년을 했던 업이지만, 으스대거나 거들먹거리는 모습을 당최 볼 수 없다. 이들이 상대하는 것은 대부분이 자연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족히 5킬로미터를 걸어 두모마을에 도착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유채꽃이 마을 입구를 노랗게 물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을 사무장님을 만나 이곳에 잘 곳을 여쭤보았다.
이곳은 밥 먹을 곳도 하나 없다며, 상주면을 권하셨지만, 이곳에서 자겠다고 떼를 썼다.
이장님이 오셨고, 우선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하셔서 사무장님, 이장님과 밥을 먹으러 갔다.
차 안에서 대화를 들어보니 두 분은 부부였다.
혼자 여행을 왔다면 들어가 보지 않았을 식당에 들어갔다.
익숙한 듯 식당 이모와 인사를 하셨다. 호기롭게 잔다고 했지만 막상 환대를 해주시니 머쓱해져 버렸다.
메뉴판에 없는 음식이 나오길래 이 음식들은 어떻게 주문하냐고 여쭤봤다.
그냥 “밥 주세요” 라고 하면 된다 하신다. 정말 밥이 나왔다.
새로운 찬이 중간중간 나오고 식당 이모님이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는다.
밥상 위에 진지한 토론이 시작됐다.
내가 듣고 먹은 것은 분명 ‘잘 먹고 잘 사는 법’이었다.
마을에 돌아와 사무장님께 ‘시골버스’에 대해 말씀드렸다. “삼촌~ 그것참 좋은 생각이다!” 벌써 어떤 멘트를 할지 고민하신다. “이번 정류장은 두모입니다. 두모는 유채꽃과...”
‘좋은 자연은 사람을 만들고 그게 모여 남해가 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조금씩 마을 사람들의 삶이 보였다. 이번 프로젝트도 ‘사람’의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틀 동안 버스에서 안내방송이 안 나왔다. 사무장님께 까닭을 여쭤보니 남해 버스는 안내방송을 안 한다고 하셨다. 허탈해졌다. ‘시골버스’의 핵심 콘텐츠가 사라져버릴 위기에 처해졌다. 다시 고민에 빠졌다. 밤이 찾아왔고, 마을 부둣가에 나가 홀로 소주를 마셨다.
그래도 아침은 온다. 이곳에 시간에 익숙해져서 서울살이 보다 두어 시간 일찍 일어난다. 익숙해진 마을을 한 바퀴 돌며 산책을 했다. 큰 문제가 생겼지만, 걱정은 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아직 시간이 있고, 나는 여기 있으니까!
마을 분들은 조만간 있을 체육대회를 준비하고 계셨다. 마을대항전이니 준비하는 모습이 사뭇 진지하셨다. 두모 마을은 마을 인원이 적어 ‘입장상’에 주력하고 있었다. ‘입장상'은 말 그대로 입장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서 주는 상이다.
마을을 한 바퀴 돌며 연습하는 행렬에 나도 참석했다.
체육대회를 준비하시는 모습을 끝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기약 없는 버스의 시간에 맞추기보다는 걷는 것으로 마음을 먹었다. 서울에서는 몇 분에 버스가 오는지 어디서 환승을 하는지 모든 정보를 쉽게 얻는데, 이곳은 모든 게 미스터리다. 흔한 카페 하나 수소문해서 찾아가도 문이 닫히기 일쑤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간절해지는 순간. 어제 실패한 카페에 다시 도전했다. 한참을 걸어 카페에 도착했는데 은행에 다녀온다는 메시지와 함께 문이 잠겨있었다. 다행히 기다리면 온다는 희망으로 책을 펼쳐 들었다.
기다리면서 몇몇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카페로 왔다. 문이 잠겨있는 걸 보고는 몇 분 기다리다가 모두 떠났다. 차가 있는 사람은 더 빨리 떠나고 두 다리로 온 나는 하염없이 기다린다. 덕분에 마을을 좀 더 구경하고 책을 좀 더 읽었다.
편해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속도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도 차를 가지고 이곳에 왔다면 바로 다른 카페를 검색해서 미션엔 성공했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여기 앉아서 멍하니 주인을 기다리는 내가 떠나버린 나를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무언가를 놓고 갔다고 말해줄 것 같다.
누구보다 보고 싶었던 카페 사장님께 보리암에 숙소가 있는지 여쭤봤다. 보리암 근처에 밥도 주고 재워도 주는 곳이 있다고 하셔서 오늘은 여기서 묵기로 결정했다. 의식주에서 식과 주가 동시에 해결이 된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한 시간 정도 버스를 기다리고 10분 정도 타니 기사님과 할머니들이 내리라고 손짓한다.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 한다고 하신다.
금산 700m 위에 있는 숙소까지 몇 시간을 걸어야 했다. 한 시간 넘짓 걷고는 수줍게 히치하이킹을 해봤지만, 간절하지 않아서 모두 거절당했다. 두 시간 넘게 걷다가 남은 거리를 보니 오늘 안에 가긴 글러 보였다. 마주 오는 택시를 부랴부랴 잡아서 보리암으로 올라갔다.
보리암은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100일 기도를 하고 조선을 건국했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숙소 가는 길에 잠깐 들렀다.
해 질 녘이 될 때쯤 숙소에 도착했다.
‘금산산장’
2화 끝.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