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윤아, 얼마 전에 감기에 걸려서 병원에서 처방받아 약을 먹은 적이 있지? 나이를 한 살 더 먹었어도 환절기 감기는 역시 피해 가질 못했네. 목이 아프고 열이 나고 기침이 나서 쿨럭거리는 증상이 심해져서 결국 우린 동네 소아과 병원을 찾았지. 처방받은 약 봉지에 적힌 약 이름 옆에 '세팔로스포린계 항생제'라는 설명과 함께, '세균에 의한 각종 감염증 치료'라는 약의 효과가 적혀 있었지.
'항생제'는 세균을 퇴치하기 위해 쓰는 약이야. 그런데 감기는 바이러스 때문에 걸린다고 했는데, 왜 감기약에 항생제가 같이 들어 있는 걸까? 그 이유는 감기 때문에 세균에 더 쉽게 감염되기 때문이야. 감기에 걸리면 특히 목과 기관지 점막이 약해지면서, 세균 감염이 같이 오는 경우가 많아. 그래서 증상에 따라 세균을 물리치기 위한 항생제가 처방받은 감기약에 같이 들어 있는 거지.
항생제가 뭘까? 간단히 말하면 세균 감염을 막기 위한 약이야. 항생제는 세균을 죽이거나 세균의 성장을 막는 약을 말해. 사람에게는 별 작용을 하지 않지만, 세균에게는 치명적이지. 우리 몸은 수많은 세균에 둘러싸여 있는데, 이 세균들은 호시탐탐 우리 몸 속에 침투해 영역을 넓히기 위한 기회를 엿보고 있지. 평상시에는 우리 몸의 면역 체계가 세균 감염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고 있지만 이 면역 체계가 손상되면(예를 들면 상처가 나서 세균이 몸 안쪽으로 들어오는 경우)는 균이 신나게 우리 몸 속으로 들어오게 되지. 그러면 세균이 우리 몸에서 실컷 증식하면서 파티를 열기 전에 항생제를 써야 하지.
항생제는 원래 세균이 다른 세균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세균이 직접 만드는 물질을 말해. 반면 '항균제'라는 말은 세균 성장을 억제하거나 죽이는 약, 즉 인체에 침입한 세균의 감염을 치료하는 말이라서 좀 더 넓은 의미의 말이지. 하지만 우리가 대부분 '항생제'라는 말을 '항균제'라는 말처럼 쓰고 있으니 엄마는 항생제라는 단어를 써서 이야기해 볼게.
항생제는 세균을 어떻게 잡을까? '톰과 제리' 같은 만화에서 보면, 톰이 제리를 망치 같은 걸로 때려잡으려고 쫓아다니잖아. (망치로 내려치다니, 조금 잔인하긴 하지만!) 세균도 이렇게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망치로 때려잡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러려면 우선 세균이 눈에 보이지를 않으니 아쉽게도 그런 물리적인(?) 방법으로는 세균을 잡기가 어렵지.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디작은 존재를 때려잡으려면, 무기도 그만큼 더 작은 게 필요하지. 눈에 보이지 않는 화학의 세계에서 통하는 '분자' 크기의 무기가 필요한 거야. 그게 바로 화학적인 무기, '항생제'란다.
항생제는 "세균과 인간이 어떻게 다른가"에 초점을 맞추어 만들어졌단다. 세균에게는 치명적이지만, 인간에게는 아무런 해가 없어야 하니까. 다행히 세균과 인간은 많은 점이 다르지. 세균과 인간은 어떻게 다를까?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세균은 단 하나의 세포로만 이루어져 있지만 우리 몸은 여러 개의 세포가 모여 조직, 기관을 이루고 그것들이 유기적으로 협력해 살아간다는 것이 다르지. 그리고 같은 세포라도 세균 세포와 사람이나 동물 세포는 큰 차이점이 있는데, 바로 세균은 '원핵 세포'이지만, 우리 몸의 세포는 '진핵 세포'라는 점이야. 진핵 세포는 '핵'을 갖추고 있어서 유전 물질이 핵 안에 들어 있고, 세포 소기관들이 갖춰져 있지만, 원핵 세포는 그렇지 않아. 원핵 세포는 핵 대신 유전 물질이 세포 내에 풀어져 있는 형태로 존재하거든. 그리고 세포 소기관도 갖춰져 있지 않지. 그리고 세포 내에서 꼭 필요한 대사 기능도 조금씩 달라. 항생제는 이런 특징을 가진 세균 세포만의 특징을 겨냥해 만들었어. 그래서 항생제의 작용 기전은 세균 세포가 정상적으로 살아가거나 증식하지 못하게 하는 기능을 하지. 어떻게 항생제가 세균을 못 살게 하는지 한 번 얘기해 볼게.
항생제는 '세균을 어떤 방법으로 죽이는지'에 따라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어. 세포벽 합성 억제제, 세포막 기능 억제제, 단백질 합성 억제제, 핵산 합성 억제제, 그리고 엽산 합성 억제제가 그것이지. 모두 다 '억제제'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 세균의 어떤 부분을 억제하느냐에 따라 다른 걸 알겠지? 세균이 가지고 있는 세포벽, 세포막, 단백질, 핵산, 그리고 엽산은 모두 세균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필수 요소거든. 하지만 이것들을 억제하는 물질이 사람 세포가 살아가는 데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게 포인트야. 마치 잔디나 농작물을 가꿀 때 잡초만 없앨 수 있도록 땅에 제초제를 뿌리는 것과도 비슷하지.
먼저 세포벽 합성 억제제는, 세균 세포를 지지하는 세포벽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기능을 해. 세포벽은 세균 세포의 모양을 유지하게 하고, 내부가 삼투압에 의해 파열되지 않게 지지해 주거든. 그런데 세포벽을 만들지 못하면 세균 세포가 '녹아버리게' 돼서 세균이 살지 못하게 되지. 세포벽은 '펩티도글리칸'이라는 물질로 만들어지는데, 이걸 만들지 못하게 하는 거야.
그리고 세포막 기능 억제제가 있어. 우리 사람 세포가 세포막을 가지고 있듯이 세균 세포도 세포막을 가지고 있거든. 세포벽 안쪽에 세포막도 가지고 있는 거지. 세균 세포막도 고유의 기능을 가지고 있어. 세균이 세포 내에 가지고 있는 영양분과 대사물이 일정한 농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외부와 경계를 만들어 주거든. 그리고 특정한 물질이 세포막에서 만들어지기도 하고 세포막을 통해 선택적으로 필요한 물질을 내보내거나 들여보내기도 하거든. 이런 세포막 기능이 손상되면, 세포 내 물질이 빠져 나와 세포가 죽게 되겠지.
또 단백질 합성 억제제가 있어. 사람 몸에서도 각종 단백질을 만들어 사용하듯이, 세균들도 증식하기 위해서는 단백질이 꼭 필요하거든. 단백질 합성 담당은 '리보솜(ribosome)'이라고 하는 세포소기관이야. '리보솜'이라는 이름이 꼭 '보송보송'이 연상되면서 귀엽지? 그런데 하는 일은 막중하단다. 단백질 합성을 하지 못하면 세포나 개체가 살아갈 수 없거든. 세균도 마찬가지야. 그런데 세균의 단백질 합성은 사람 세포와는 조금 달라. 사람세포, 즉 진핵세포의 리보솜은 80S 복합체(80S 리보솜 복합체는 40S와 60S 소단위로 이루어져 있는데, 평소에는 떨어져 있다가 단백질 합성할 때 합체해서 80S 리보솜이 돼. '숫자+S'는 리보솜 '크기'를 의미한다고 보면 돼.)인데 비해, 세균 같은 원핵세포의 리보솜은 50S 소단위와 30S 소단위로 이루어진 70S 복합체 리보솜이거든. 리보솜 크기가 소단위나 복합체가 조금씩 다르지? 그래서 각 50S나 30S 리보솜을 방해하는 방법으로 세균을 죽이는 항생제가 개발될 수 있었지.
그리고 핵산 합성 억제제도 있단다. DNA나 RNA 같은 핵산 합성을 억제하는 거야. 사람들도 세포 분열을 위해서는 핵산 합성이 꼭 필요한데, 세균도 증식하려면 핵산 합성이 꼭 필요하거든. 그런데 이걸 억제하는 방법으로 세균이 증식하지 못하게 하는 거지. DNA가 복제되거나 RNA가 만들어지지 못하게 하는 거야.
마지막으로, 엽산 합성 억제제도 있어. 말그대로 엽산 합성 과정을 방해하는 건데, 엽산은 세균이 핵산을 합성하는 데 꼭 필요한 물질이거든. 이걸 세균은 직접 만들어서 사용해. 반면, 사람은 엽산을 자체적으로 합성하는 과정이 없어서 이 과정을 억제해도 별 영향이 없지. (그래도 사람에게도 엽산이 꼭 필요한 비타민 성분이기는 해서, 음식이나 다른 비타민 제제로 공급해줘야 하지) 하지만 세균에게는 치명적이기 때문에 엽산 합성 억제제가 항생제로 개발될 수 있었지.
이렇게 다양한 항생제가 개발되어 쓰이고 있지만, 항생제를 쓰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문제점이 있어. 바로 '내성'이야. 세균 같은, (작기는 해도) 유전물질을 가지고 증식하는 미생물을 대상으로 하는 약이다 보니, 항생제를 피해 살아남을 수 있도록 균도 자기들만의 방법을 개발한다는 거야. 항생제가 균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거나, 항생제를 무력화시키는 효소가 생긴다거나, 항생제가 공격해야 할 부위가 다른 모양으로 변해 공격에도 타격을 입지 않게 변하는 식이야. 이렇게 항생제를 피할 수 있는 건 세균의 유전자가 쉽게 변하기 때문이지.
물론 균들이 다같이 모여 '우리 이제부터 힘을 합쳐 항생제 공격을 피해 보자!'라며 대책회의를 하는 건 아닐 거야. 말했듯이 유전적인 특징이 잘 변할 수 있는 세균의 특성 상, 항생제에 의해 죽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진 세균이 항생제 공격에서 살아남는 거야. 그러면 그 유전자를 서로 주고받아 살아남은 균 집단이 다같이 그 항생제에 내성을 갖게 되는 거지. 이렇게 내성을 가진 균이 증식하면 그 항생제는 더는 그 균을 죽일 수 없겠지? 그럼 아무리 항생제를 써도 균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거지. 한때는 항생제가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생각돼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던 때도 있었는데, 그러다가 내성을 가진 세균이 들어서 아무리 항생제를 써도 균 감염을 막을 수 없는 무서운 일이 벌어지곤 했었어. 2가지 이상 항생제에 저항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진 균을 '다제내성균'이라고 하고, 그 이상 내성을 가지면 '슈퍼박테리아'라고 부르지. 말 그대로 슈퍼맨처럼 항생제를 이겨내는 균인 건데, 세균과 싸워야 하는 인간 입장에서는 무시무시한 존재이지. 이런 내성균 출현 문제가 심각해져서, 지금은 항생제를 최소한만 올바르게 쓰자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중이야.
그럼 엄마가 서윤이 감기 때문에 처방받은 약은 어떻게 했을까? 소아과 의사 선생님은 서윤이 몸 상태를 진단하시고는 앞에서 말한 '세팔로스포린계 항생제'를 포함해 4일치 감기약을 처방하셨지. 약봉지의 '주의사항' 란에는 작게 '처방기간 끝까지 복용'이라고 적혀 있었어. 그래서 엄마는 서윤이가 처방받은 약을 다 복용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썼지. 항생제는 일단 시작하면 끝까지 다 복용해서, 혹시라도 살아남는 녀석이 없도록 '완전 박멸' 하는 게 중요하거든. 만약 찔끔 복용하다가 증상이 괜찮아졌다는 이유로 멈추면, 시름시름 죽어가던 녀석들도 벌떡 일어나 활동을 재개할 가능성이 높아져 버린단다. 처방받은 항생제를 끝까지 복용해서, 살아남는 균이 없도록 다 죽여 '원천 차단' 하는 게 중요한 이유지. 그래서 항생제는 내성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걸 고려해서 꼭 필요할 때만 쓰고, 만약 사용해야 할 때는 정해진 용법과 용량을 지키는 게 필수란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고 온몸이 세포 딱 하나로만 이루어진, 진화도 덜 된 하찮은 녀석과의 싸움이 영 어렵지? 인간은 항생제를 발견하고 개발해서 세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듯 보였지만, 어느새 세균도 '내성'이라는 방패로 맞서니 말이야. 그래서 아직도 세균과의 싸움은 '현재진행형'이지. 인류가 항생제를 개발하고 사용하면서 균을 잡으려고 전력질주할 때, 세균은 그런 우리를 피해 마치 날아가는 것처럼 저만치 도망가니까. 오히려 힘을 키우면서 말이지.
눈에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이 무섭지만, 언제나 그렇듯 방법은 있지. 마치 불을 잘 다스려서 음식을 데우고 집을 따뜻하게 하는 데 사용하는 것처럼 말이야. 잘못 다룬 불씨가 커져서 모든 걸 통째로 집어 삼키면 안되니까 조심스레 다루면서 말이야. '선'을 넘지 않게 우리가 가진 무기를 사용하는 거지. '필살기'는 아껴 두었다가, 필요할 때 급소를 공격하는 데만 쓰자. 그래야 오래오래 효과적으로 우리가 이기는 싸움을 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