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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Aug 23. 2023

하필과 마침 사이

아침 출근길. 요즘은 바로 출근을 하지 않고 따님을 지하철역 근처 카페에 내려주고 간다. 그렇게 만나게 되는 고가도로 밑 사거리. 여느 아침처럼 그날도 다음 신호에 동서로 지나가는 고가도로 아래를 직진해 다음 좌회전 신호를 받으면 된다. 그래야 커피를 한 잔 천천히 내려 들고 오늘을 시작하는 이들을 맞이할 수 있다. 


나는 2차선 같은 1차선에 서 있었다. 1차선은 좌회전 차선. 그런데 신호가 바뀌는가 했더니 오른쪽 내리막길에서 고가도로 밑으로 진입하려는 기다란 트럭이 멈춰서 있다. 처음에는 꼬리물기 중인가 했다. 그런데 창문이 열린 운전석 기사 표정이 많이 난감하다 싶더니 차에서 내려 여기저기를 살펴본다. 갑작스러운 고장이다.  


3차로 중에 2.5차로를 그 기다린 트럭이 가로막고 서게 된 상황. 7시 30분이 조금 안된 시각에. 2차선에 제일 앞에 있던 나는 천천히 직진해서 트럭 머리 앞을 살짝 비꼈다가 다시 안쪽으로 들어섰다. 재바른 오른쪽 차들이 내 차선으로 동시에 여러 대 밀려 들어오는 게 룸미러에 가득하다. 2차선, 3차선에 서 있던 수많은 차들은 그 기다린 트럭에 가려 아예 보이질 않았다.


그 사이 나타난 경찰. 순찰차를 트럭 옆에 세워두고 천천히 하얀 장갑을 끼고 있다. 이런 일이 아주 흔하다는 듯 어린 경찰은 하나도 서두르지 않는다. 어머님 수술 때문에 1시까지 한 시간 반거리에 있는 병원에 도착해야 해서 급한 나와는 정반대 언덕 위에 있는 것처럼. 출근했다 급한 업무를 정리하고 어머님댁에 들려 모시고 다시 40분 정도 떨어진 병원으로 1시까지 가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물리적 거리도 거리지만 심리적 불안정이 더 막히고, 오래 느껴졌을 거다.


그렇게 안전하게 시간에 맞게 어머님이 일반인이 접근하지 못하는 병실 안으로 들어가시는 걸 보고 9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한참 숨을 돌리며, 앉아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인생은 '하필'과 '마침'의 연속으로 가득하지 싶어졌다. 흔히 말하는 인생은 타이밍. 어찌하여. 꼭. 다른 것은 빼놓고 굳이. 그게 하필何必, 이다. Why the particular thing of all choices.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 중 가장 '안타까운' 상황.


하필.... 그때 00역에 가지만 않았다면, 어제 00 앞을 지나치지만 않았다면, 몇 년도에 00 학과에 합격하지 않았다면, 하필 바람이 부는 바람에, 그 상황에서 하필 잠이 드는 바람에, 하필 내 바로 전에 취소가 되어서, 지금 연락이 와서, 그때 배가 아파서, 거기에 00 이와 같이 있어서, 합격 통지가 와서, 하필 폰 배터리가 떨어져서...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떤 이에게는, 같은 상황에서도 '하필'이 '마침'으로 수정해도 큰 문제가 없을 때가 있다. 어떤 경우나 기회에 알맞게. 아니 오히려 때마침일 때가 일수도. 그 차이는 선택의 몫이지 싶어 진다. 내 안에 하필을 마침내로 오토리버스 할 수 있는 여유가 차곡차곡 쌓여가는 이들이 주변에 많으면 더더욱 그렇게 잘 따라 배울 수 있지 싶어 진다. 그 주변인중 하나가 어떤 이에게는 내가 될 수도 있으면 더더욱 좋겠고.  


하필과 마침. 일상 속 매 순간 마디마디에서 무엇을 선택할지, 무엇으로 받아들일지는 순전히 나의 몫. 그래서 아무리 봐도 그렇게 하필과 마침의 선택. 그 선택의 연속에서 우리는 우연이란 단어로 인연을 만나는 것 같다. 지금 함께 하는 이(들)가 나에게 하필인지 마침인지가. 



-----(한줄 요약)

오늘안에 하필이 많을 지 마침이 넘칠 지는 선택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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