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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Oct 22. 2023

어제, 점심때 뭐 먹었지?

[읽고 쓰는 일요일] 9_공지영 레시피(공지영)




그저께 아침, 뭐 먹었지? 어제, 점심때는?  누가 물으면, 이따 뭐 먹을까를 고민하다 보면 스스로 자주 묻는 질문이다. 물어도 너무 자주 묻는. 그렇게 자주 깜빡깜빡해도 어김없이 탄단지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을 적절한 비율로 일정 간격으로 일정량을 섭취해야 살 수 있다. 영양섭취. 충전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충전 방식이다. 그 이후에야 인간은 인간다운, 인간적인, 사람 같은, 이성과 감성이 조화된 생명체가 될 수 있다. 뭐 먹을까?. 지상 최대의 난제이자 언제나 행복해지는 고민이다. 난 일부러 한 사흘 전 아침부터 먹었던 메뉴까지 더듬어 기억하는 연습 아닌, 연습을 한다. 


기억력 연습이기도 하지만 일상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뭐 먹지를 기억하다 보면 먹을 때 상황이나 함께 했던 이들이 떠올라 기억하고, 기록하기 좋기 때문이다. 동시에 누구나 먹는 것도 다 반복적이고 비슷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정한 주기로. 먹어 본 게 더 맛있고 더 편안하다. 내 몸이 좋게 기억하는 것이기 때문에. 특별한 일정이나 출장이 아니었다면 자신의 지난 사흘 동안 누구와 무엇을 먹었는가를 돌이켜 보라. 출퇴근하는 과정의 사흘을. 그게 내가 누구와 가장 많은 에너지를 공유하면서, 어떤 패턴을 지향하면서 살고 있는지를 간단하게 보여주는 여러 지표 중 중요한 하나의 지표가 된다.

   

그런데 무엇을 먹는 건 어떤 기준으로 결정되는 걸까. 계절적인 특성, 개인적인 식성, 누구와 함께 결정해야 하는 필요성, 알레르기 반응 여부, 한정적인 예산, 아니면 이런 기준들이 몽땅 한방에 날아가고 괜찮을 만큼 편안하고 행복해지는 그. 사. 람. 의 결심. 다 좋다. 어떤 기준으로 무엇을 먹던. 왜. 일단 먹는 거니까. 만난 거니까. 함께 할 수 있는 거니까. 여기서부터는 퀴즈다. 지금 제시하는 레시피를 보고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의 이름표를 한번 연결해 보시라. 그리고 그 이유를 한 줄 정도로 써 보시길. 단, 옆에 있는 책 목록을 펼쳐 보는 건 반칙이다. 나의 감정이 어떤 통로를 통해 거기에 가 닿는지 나 혼자 살펴보는 희열을 느껴볼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가 버릴 테니까.  


자, 그럼 저자가, 자기 마음대로 제시한 것을 내가 고쳐 쓴 음식이름표는 다음 총 일곱 가지다. '모든 게 잘못된 것같이 느껴지는 날', '세상이 개떡같이 보일 때', '속이 갑갑하고 느끼할 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받아들이기 위해', '가끔 누나가 있었으면 할 때', '몸도 마음도 아픈데 혼자이고 싶지 않을 때'. '그때를 단박에 훌훌 털어내고 싶을 때'. 


레시피1_두부탕

주먹 2분의 1 크기를 쇠고기(부위 상관없음)를 새끼손톱만하게 자른 후 – 냄비에 참기름을 두르고 볶아 – 국그릇 두 대접 정도의 물을 넣어(쌀뜨물이 있다면 환상적) - 물이 끌으면 두부를 먹고 싶은 양만큼 넣고 – 다진 파 약간, 마늘 반 티스푼 넣고 – 새우젓으로 간 맞춘 후 – 후추 살짝 


레시피2_김치비빔국수

물을 끓이면서 – 꼭 짠 김치를 작은 주먹 정도만큼(2인분) 송송 썰은 후 – 간장 두 숟가락, 설탕 한두 숟가락, 참기름 맘대로, 깨 맘대로 부어 섞어놓기 – 물이 끓으면 국수를 넣고 기다리다가 물이 끓어 넘치려고 하면 종이컵 하나 정도로 찬물 붓기 – 다시 끓으면 1분 정도 후에 – 재빨리 국수를 찬물에 담가 씻기 / + 오이 채, 달걀 반쪽 / + 액젓으로 간하기 


레시피3_콩나물해장국

쇠고기 불고깃감(또는 등심구이용 고기)을 듬뿍(3~4인분으로 500그램)준비해 한입크기로 썰어 놓은 후 – 중간 크기 이상의 양파 하나를 잘게 썰고 – 큰 냄비에 넣고 집간장(국간장)을 넣고 달달 볶기 – 고기가 거의 익을 무렵 고춧가루 밥숟가락 수북이 넣고 저은 후 – 물 보통 대접 다섯 개 정도 넣기(다시마+멸치 육수면 더 좋고) – 간은 거의 끓고 나서 한번 더 맞추기 – 다진 마늘, 대파 한 뿌리 추가 – 맛이 덜 난다 싶으면 천연 다시마 가루나 맛가루로 간 맞추기 – 콩나물 한 줌 수북히 얹어 우르르 끓여내기(절대 오래 끓이면 안 됨) 


레시피4_찐 고추 멸치 볶음

청양 고추, 지리멸치를 따로 쪄서 - 소금 간, 참기름, 깨소금 솔솔 뿌려 - 조물 조물 무치기


레시피5_꿀바나나

껍질 벗긴 바나나를 세로로 길게 자른 후 – 프라이팬을 중불로 데우고 – 버터를 크게 한 숟가락 떠서 녹인 후 – 프라이팬에 올려 구운 후 – 꿀, 계핏가루 살살 뿌리기 / + 아몬드 슬라이스, 아이스크림 한 숟가락            


레시피6_싱싱 김밥

넓은 접시에 씻어서 물기를 뺀 깻잎을 올리고 – 그 옆에 무순이나 오이 채 썬 것, 적당히 썬 참치 횟감을 놓고 – 종지에 고추냉이나 겨자를 좀 넣고 간장을 살짝 부으면 돼 – 밥을 고슬고슬하게 지어서 뜨거울 때 참기름과 소금 아주 약간(넣는 둥 마는 둥하게_ 넣고 비벼놓아 – 큰 접시를 상 가운데 놓고 각자 나눔 접시를 높으면 돼 – 먼저 김을 접시에 펴고 – 그 위에 깻잎을 올리고 – 그 위에 밥을 놓고 – 참치와 무순 혹은 오이를 얹고 – 고추냉이나 겨자 간장을 티스푼으로 솔솔 뿌린 뒤 – 돌돌 말아먹으면 돼 – 여기에 김치무침, 연어 알, 날치 알, 연어 회도 좋고 – 된장국이 있으면 완벽


레시피7_시금치된장국

냄비에 조갯살 넣고 – 쌀뜨물 받아 적당히 붓고 끓여 – 밥숟가락 넉넉히 하나 정도 된장 풀고 – 소금물에 살짝 데쳐놓은 시금치 넣고 – 파, 마늘 넣고 # 마법의 국물(커다란 냄비에 국물용 멸치 한 줌 넣고 볶기 – 물 붓기 – 손바닥 2개 합친 크기만 한 다시마 두 장 넣고(다시마 없으면 가죽나물) - 무 투도막, 당근 한 조각 넣고 끓이기 – 식힌 후 페트병에 담아 냉장보관 – 간은 소금보다 멸치액젓(까나리 액젓))






오늘, 지금은 어떤 레시피가 나를 이끄는지. 벌써 눈치 챙기셨겠지만, 연결 자체는 사실 의미가 없다. 레시피와 음식 이름표를 연결한 이유가 더 중요하다. 아니, 나만의 음식 이름표를 만들어 보는 거다. 나는 이 책을 두고두고 그렇게 읽어 본다. 그 순간에 나도 작가가 되어 보는 거니까. 그 순간에 오로지 내 감정을 읽어 내고 표현해 보는 거니까. 눈물 대신 두부를 삼키면서 나는 또 그렇게 그때를 지나간다. 분노를 꿀바나나에 콕콕 받아 있는 힘껏 씹어 삼킨다. 엄마가 넉넉히 아내 손에 들려 보낸 찐 고추 멸치 볶음에 온 식구가 일상의 찌꺼기들을 말끔하게 관장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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