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새벽이 나에게 거는 속삭임] 5
걱정하지 마. 겁먹지 마. 대부분의 사람은 너처럼 자기중심적이야. 이기적이야. 자기 생각이 우선이야. 그러는 건 나이에 관계없어. 성별에 관계없어. 그게 우리 모두의 본성이야. 물론 그 본성의 속도감도, 기준도 다르고. 매일 만나게 되는 게 비와 바람이 가진 본성의 향연장인 거야. 자기 본성을 지키려는 투쟁의 장. 내면에서부터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은 사실 위험해. 자신은 괜찮지만 자신을 둘러싼,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의 입장에서 봐봐. 그 존재들의 인생 장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내 사람, 그 사람은 내 사람이다에 해당되는 그 사람이 내면부터 이타적이라면.
일단, 갈등에 대한 정의가 비와 바람이 달라. 비는 본성에 타자의 본성이 엉켜있어 서로 떼어내기 어려운 상태, 즉 풀기 어려워 그냥 (포기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같이 살아가야 하는 상태로 봐. 온몸으로 다 받아들여 충분히 젖어야 한다고. 타인 수용성이야. 비가 주로 택하는 방식은 타임아웃이야. 회피지. 일단 그 상황을, 자리를 피하고 다음을 도모하는 거야. 하지만 도모하지 않아. 대부분. 그러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지. 대부분. 그리고는 스스로 위로해. 난 괜찮은, 소중한, 없어서는 안 될 비라고.
바람은 섣부르게 포기하고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해. 일단은 자기 본성을 지키기 위해 대립해야 한다고 봐. 이 과정에서 서로가 자기주장을 하게 될 텐데, 그 과정이 아주 중요하다고 보는 거지. 인간답게 살면서 인간처럼 살면서 인간적으로 살아낼 수 있도록. 자기 주장성이야. (어느 작가의 표현처럼) 이끌든가, 따르든가, 꺼지든가 야. 비가 때로는 부러워하는 독단성이지. 하지만 바람의 독단성은 미끼야. 대부분. 적절한 기브 앤 테이크를 위한. 두 개 줄 테니, 두 개 양보해를 위한 타협 전의 전초전. 주로 공식적인 권위가 우월하다고 바람 스스로가 판단한 경우에 더 자주 발동시키는 전략이지.
하지만 비도 바람도 같은 전략을 가지고도 있어. 바로, 오랜 경험이야. 이렇게도 내려보고, 저렇게도 불어봤던 그 데이터. 모든 데이터는 과거로부터 오지. 점심 먹고 나면 오전도 과거로 이어지는 출구를 닫아버리니까. 그렇게 비와 바람은 자기만의 빅데이터를 가지고 있어. 비와 바람이 수십억 년 동안의 과거에서 얻은 빅데이터가 말해주는 건 딱 하나야. 살 궁리, 이왕이면 잘 살 궁리를 하는 자기만의 전략을 찾아야 한다는 것. 불나방이 되지는 말라는 것. 그렇게 다 타버려도 세상은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더 잘 굴러갈 거라는 것을.
많은 이들이 언제부터인가 비와 바람에게 조언을 구하고 있어. 너도 얼른 준비해 봐. 비와 바람에 숨어 있는 빅데이터가 어마어마하거든. 거기에 비하면 너와 나는 글쎄, 거대하고 위대하다 뻐기지만 실상은 우주먼지쯤이지 않을까. 물론 너와 나보다 훨씬 먼저, 깊이 있게 그 메시지를 받아 자기 것으로 소화시키면서 살아낸, 살아내고 있는 이들이 주변에 의외로 많아. 어제 산책길에서 너 옆을 스쳐 지나간 그 아저씨, 점심 먹으면서 나와 처음 인사를 했던 그 신입, 자전거로 달리다 우연히 만난 은퇴한 그 선배, 사십 년을 넘게 새벽 도시락을 싸 온 엄마, 내 서재에서 언제나 내가 낯설어하는 세상을 아주 편안하게 만날 수 있게 도와주는 수많은 이들.
뭐 그들이 숨기고 살아서 그렇지, 아니 그 메시지를 나눌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너와 나를 둘러싼 곳곳에 그 실천가들이 있더라고. 나는 그들을 자연의 철학자라고 불러. 비와 바람은 말이 없잖니. 하지만 자연의 철학자들은 정말 운이 좋게도 내 주변에서 그렇게 같이 나와 살아가 줘. 내가 손만 내밀면 언제나 따듯한 온기를 잡아당겨 안아줄 준비가 되어 있어. 손을 내밀지 않아서 그렇지. 손을 내밀어야 할 타이밍을 손 잡아와서 그렇지. 아니, 손을 내밀어야 할까를 스스로 판단하지 못해서 그렇지.
그 메시지의 본질은 하나인 것 같아. 살다 보면 오만가지 고민이 일어나. 일어나는 건 문제가 안되지. 세상 내 마음대로 되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게 더 많다는 걸 잘 아니까. 그런데 그 고민이 고민을 낳고 다시 그 고민이 고민을 낳는 그 과정에 파묻혀 버리는 나를 방치하는 시간이 문제야. 너무 짧아도, 길어도 문제이니까. 그래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라는 거야. 아, 지금 나에게 무슨 생각이 일어나는구나. 오, 이 생각이구나, 아, 저 생각이구나. 이건 눈만 감고, 숨만 제대로 쉬면 볼 수 있다는 거야. 그런데 눈을 감지 않고, 제대로 숨을 쉬지 않기 때문에 일차적인 문제가 생긴다는 거야.
그리고 이 두 번째 메시지가 중요한데, 잘 들어봐. 일단, 아 나한테 이런 생각이 올라오는구나 하고 알아차렸어. 그다음이 중요해. 그런데 먹고살아야 하고, 쉬고도 싶고, 사람답게 살고도 싶은데, 오만이천가지 생각들을 어떻게 다 해결해. 두 가지 일도 동시에 못하는 데. 그래서 그래 이 생각은 좇아 가자, 저 생각은 버리자를 결정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거야. 그러다 보면 나의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거야. 그렇게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거야. 평화로워진 내 마음이 어떤 타이밍에, 어느 정도의 빈도로, 깊이로 오는지 그 루틴을 만들어 보라는 거야.
그래. 어쩌면 세상에는 갈등에서 막 벗어난 사람, 갈등 중인 사람, 곧 갈등할 사람만이 존재한다는 시쳇말이 맞을지도 몰라. 비와 바람은 그렇게 가혹하게 우리를 시험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하지만 말이야. 적어도 내가 나를 바라보는 올해는 달라. 분명히. 일정한 빈도로 적절한 깊이로 걸으면서, 뛰면서, 스트레칭을 하면서, 읽으면서, 쓰면서 그리고 오래 충전하기 전 잠깐 동안 눈을 감으면서 채운 올해 2023년. 일 년 동안 나를 돌아보니 맞아, 맞아. 그러는 동안 내 마음의 평화가 깊어진 건 분명해. 확신해. 과거의 나와는 정말 다르거든. 뭐랄까, 내 마음이 조금 더 아름다워졌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분명 나에게는 갈등이 비와 바람이 내려 주는 기회의 선물이야. 완전 포기와 정면충돌 방지 안전벨트.
2024년에는 나처럼 스스로 조금 더 아름다워졌다고 (착각이더라도 스스로) 생각하는 이들이 너와 나의 주변에 조금 더 많이 졌으면 해. 내년에도 분명 비와 바람은 자신의 본성대로 휘몰아칠 테니까. 뭐, 이제 아주 조금 알게 된 거 잃지 말고, 잊지 말고. 내년에도 매일매일 이렇게 외쳐 보자. 도.리.이.녕!!(오늘도 우리 같이 안녕). 쥐소호토용뱀말양원닭개돼지. 2024년. 어김없이 다시 찾아와 준 나의 해에 (함께 사는) 도리를 아는 이녕처럼 (아름답게 안전하게 같이) 살아보자고(<== 아, 무리순가? 나의 진심만은 알아주면 돼지요~)
♡♡작가님~ 모두. 2024년에도 (글 잘) 쓰고, (마음 잘) 쓰고, (돈 잘) 쓰는 한 해가 되시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