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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Oct 06. 2021

우리 집 엄청 넓었네요

잘운잘(잘먹고운동하고잘듣고)

  오늘도 어제처럼 비가 내립니다. 아니, 내리는 척하는 것 같습니다. 뭐 급한 일 없으면, 본관과 신관 정도의 거리는,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될 듯하네요. 비가 오는 날,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출근하기 싫다'입니다. 어? 이건 사실 해가 쨍쨍해도 그렇네요. 두 번째로 드는 생각이 '오늘 달리기 못하겠네'입니다. 오해 마세요. 중독은 아닙니다. 그냥 나이가 하나, 둘 들면서, 아내와 같이 '운동' 같이 하는, 재미가 더 커진 정도이지 싶어요. 걷고 나면 달리고 싶기도 하니까요, 가끔은.  


  어제도 퇴근 준비를 하는데 아내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그 무렵 전화는 '저녁은?'이지요, 보통. 어제도 그랬습니다. 그냥 고맙기만 하지요. 어제는 우리 따님께서 짜장면을 드시고 싶다고 전합니다. 비 오는 날 해물파전 같은, 느끼한 밀가루가 원래 당기니까요. 언젠가, 비 오는 날 파전이 당기는 이유에 대한 글을 읽었던 게 기억나네요. 그것도 과학적인 이유. 비가 오면 조금은 우울해지잖아요. 햇살에 만들어지는 호르몬이 부족해져서. 그런데, 밀가루 속에 들어 있는 성분이 일시적으로 우리 몸속에서 탄수화물 대사율을 높여서 우울감을 줄여주는 호르몬 분비가 일시적으로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오래전에 한 선배가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짜장면 하고 커피가 맛이 없어지면, 먹고 싶지 않았지만 몸이 아픈 거다'라고. 확신에 차서 이야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말의 진위여부를 떠나서, 자꾸 생각이 납니다. 살다 보니. 아내의 전화에 '언제나 콜!', '좋지'를 외쳤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에, '홍콩반점' 포장지를 들고 있는 라이더를 만났습니다. 역시, 우리 집 거였습니다. 제가 받아서 올라갔지요.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평소에 더 선호하는 짜장면은 물론, 어제는 짬뽕도 국물이 예술이더군요. 결국, 밀가루를 멀리 하려는 아내와 말만 하고 양은 적은 딸 덕분에 남은 음식이 모두 제 뱃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다들 아시죠? 우리 여러 번 경험해 봤잖아요? 그렇게 쓸어 먹고, 소파에 앉는 순간, 그날 저녁은 끝입니다. 슬슬 졸리지요. 그득한 내장 덕분에 더욱 그렇습니다. 소화시키는 방법은 자는 게 제일이니까요. 순간 갈등을 하는데, 창밖에는 계속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나갈 수는 없고, 어떡할까 하는데, 아내는 거실을 왔다 갔다 하기 시작하더군요. 아! 현명합니다. 밥도 먹고, 운동도 했다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동시에 회복하는 중입니다. 엉덩이가 살짝 소파를 스치다 반동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저도 따라 움직였습니다. 스쿼트할 때 실내에서 신는 운동화까지 착용하고. 처음에는 확장된 거실을 왔다 갔다 했습니다. 아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듯이. 제 뒤로는 우리 집 타닥이-반려견입니다. 이름은 코코인데, 타다닥거리며 제 침대로 아침마다 뛰어오르는 게 알람 소리 같아 저 혼자 부르는 이름입니다-는 내 뒤를 쫓아다닙니다. 


  안방으로, 작은방으로, 문간방으로, 안방 옆 베란다로 돌아 들어 걸었습니다. 모든 방 문과,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바람은 불지 않아 들이치지는 않더군요. 그냥 젖어 있는 바람을 느끼면서 그렇게 구석구석 천천히 한참을 걸었습니다. 아내는 여전히 거실을 앞뒤로 왔다 갔다 합니다. 창밖의 비도 여전합니다. 그러다 보니 왼쪽 손목에 매달린 워치가 '지잉'하고 울립니다. 운동을 감지했다네요. '오! 이런 기능도 있었군' 했습니다. 늘 먼저 세팅을 하고 걷거나 뛰었거든요. 신기했습니다. 10분이 넘어가니까 타닥이도 '왜 저래?' 이러는 표정으로 자기 방석에 올라가 눈만 좌우로 굴립니다. 심박수는 98, 100을 오르락내리락합니다. 그렇게 20분을 더 걸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낮에 움직인 거 포함해서 하루 목표 8천보가 넘었습니다. 운동 시간이 30분을 거뜬히 넘었네요. 그랬습니다. 집에서도 '걷기'가 됩니다. 퇴근 후 집의 또 다른 용도의 발견입니다. 그런 후 자신감 있게 소파에 앉아서, 몸에 반응대로 움직여도 됩니다. 어제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지 하고 잠자리에 아주 일찍 들었습니다. 평소에는 복닥거린 느낌의 우리 집 참 넓다고 생각을 하면서. 기분 좋게 잠에서 깨어보니, 출근해야 할 시간이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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