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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Apr 03. 2024

내 인생 지지 특공대

[오늘도 나이쓰] 27

내가 매일 몸을 눕히는 침대는 돌침대다. 이사를 오던 십 년 전 구입해서 이 집에 같이 들어와 산다. 감기 기운이 떨어지지 않던 오래전 어느 날. 장인어른댁 좁다랗게 긴 1인용 싱글 온돌 침대. 어머님 몸을 매일 눕히시는 그 위에서 낮잠을 아주 달게 잔 적이 있었다. 원래 난 낮잠이 없다. 엄마는 당신을 닮아서 그렇다고 한다. 


그날 그 자그마한 돌침대에서 한 시간이나 넘게 골아떨어진 뒤, 몸이 단박에 개운해졌다. 그 모습을 본 어머님 응원과 몸에 열이 많은 아내 덕에 지금 커다란 돌침대가 나의 독차지가 되었다. 따님도 아내도 가끔 감기 기운이 있을 때 와서 눕는다. 


가격으로 따지면 우리 집 물건 중에 넘버 투지만 우리 식구들의 몸과 마음을 실질적으로 힐링하게 해주는 애착 가구이다. 열일곱부터 서른둘 결혼할 때까지 혼자 산 나에게 필수품 중 하나가 전기장판이었다. 기름보일러를 돌리는 대신 추위를 견딜 일석이조의 생필품 중 하나였다. 


그 덕에 온몸이 정전기를 불러일으키는 초전도체가 되고 건성이 되고 피로도가 높아졌다. 예민해질 때만 되면 자주 전기장판 핑계를 대곤 했었다. 지금의 돌침대는 매일 호텔에서 잠을 자는 정도일 거다. 특히, 한겨울보다는 간절기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일교차가 심할 때 더욱 그렇다. 


한여름밤에는 얇은 홑이불 하나 깔고 돌 위에 누워 있으면 뼈가 다 아릴 정도로 시원하다. 돌침대 덕에 몸이 편안해지니 마음이 따라온다는 걸 온몸으로 느낀다. 그 마음에 좋은 생각이 얹힌다는 건 돌침대가 가져다준 덤이다. 


돌침대가 가져다주는 따끈 달콤한 힐링도 이것에 비하면 부족하다. 우리 집에서 진짜 나의 몸-마음-생각의 선순환을 단박에 불러일으키는 가구는 따로 있다. 돌침대 할래 이거 할래 그러면 당연히 이거,라고 선택할 정도인 나의 애착 가구이다. 비용으로는 넘버 쓰리지만 나에게는 넘버 원이다. 


검지와 중지를 붙인 정도 굵기의 튼튼한 하얀색 스틸 바디. 칸칸마다 뻥 뚫려 보는 것만으로 개운한 개방형 디자인. 지금껏 십 년 넘게 늘어지지 않은 선반. 무엇보다 거실 한쪽 아트월을 가득 채운 넉넉한 스케일.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나를 위해 강건하게 버티고 있어 주는 듯한 유일한 물건.  


바로 이사를 오면서 아내와 함께 작심하고 구입한 책장이다. 아내와 둘이 한참 발품을 팔아 찾은 보물이다. 넉넉한 선반 위에 책들이 가득하다. 한두 칸을 제외하면 거의 다 내 책이다. 그 책장 위에는 과거의 내가 다 꽂혀 있다.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나를 위해 언제나 응원해 주고 있다. 


학창 시절 이후 참 오랜만에 밤새워 읽었던, 울렁거리는 이십 대를 다잡아줬던, 십 대와의 싸움의 기술(!)을 가르쳐줬던 책들이다. 지금도 여전히 나의 일거수일투족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들이다. 서너 번 넘게 정리해서 기부를 하고 남긴 것들인데도 가득하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다른 물건들은 흐트러져 있으면 너저분해 보이기까지 하다. 언제 꼭 날 잡고 다 정리해 버릴 거야, 하고 벼르기 일쑤다. 그런데 유독. 나의 책장은 그렇지 않다. 그대로 자연스럽고, 그래서 더 힘이 난다. 완벽한 편애다. 


그런 편애를 받는 내 책장은 마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영화관 스크린 같다. 세상의 온 이야기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자그마한 글씨지만 크나큰 영향을 준 이들. 존재감이 없는 듯 하지만 언제고 내 안에서 되살아나는 그들. 


언제나 내 안의 자그마한 버튼 하나만 누르면 그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 수 있다. 수백 명의 작가들이 나에게 손짓을 한다. 힘을 내라고 격려를 한다. 지금도 괜찮다고 대단하다고 박수를 보낸다. 아무 말 없이 내 어깨를 감싸 쥐고 위로를 건넨다. 


내 어릴 적. 연탄광에 천장이 넘는 연탄을 가득 채워 넣은 뒤 돼지고기에 쌈을 싸 드시던 아버지의 안도의 미소가 내 얼굴에 번지게 만든다. 나를 울게도 웃게도 만들면서 나랑 같이 살아준다. 나를 울게 만들고 웃게 만들어 주는, 말 없는 튼튼한 가족 같다. 


내 최애 가구인 이 책장에는 모든 게 다 있다. 내 인생 모든 게 다 있다. 나를 위해 항상 준비되어 있는 내 인생 지지 특공대들이. 항상 내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내 생각에 덧칠을 하고, 나의 표정을 관찰하는 눈빛을 잃지 않는다. 


무엇보다 나의 신체적 건강이 정신을 만들어 준다는 아주 오래된 미래를 이제야 깨닫고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도록 지혜를 가져다준다. 당장 멈추고 몸먼저 챙기라고 다그친다. 흔들릴 때마다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위로하고 격려한다. 그렇게 사랑받는 법도 사랑하는 법도 일러준다. 


그 덕에 오늘도 난 언제나 그랬듯이 가슴속에 커다란 책장을 다 넣고 다닌다. 그 덕에 단단하게 두 발을 내딛는다. 내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이, 사람이, 자연이 다 나 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무책임하게 방대한 숙제가 아니라는 것을 조금은 더 깨닫는다. 그 덕에 오늘 졸업 사진을 찍으려고 모두 교복을 챙겨 입고 다 나온 아이들의 얼굴 하나하나가 봄꽃보다 훨씬 예쁘게 보이는 걸 꺼다,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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